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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무너지는 IT 강국,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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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일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사진=최형일]

한때 대한민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IT 강국이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반도체와 통신기기, 휴대전화 등 하드웨어 중심의 수출은 한국 경제의 심장처럼 힘차게 뛰었다.

삼정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은 세계 시장을 호령했고,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IT 산업은 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무역수지 흑자의 핵심 동력이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디지털 코리아’라 불렀고, 세계는 우리의 혁신을 주목했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에는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2010년대 들어 IT 산업의 위기가 본격화됐다.

정부 주도형 성장 전략의 한계, 기업들의 혁신 부족, 기술 개발과 시장 창출 노력이 정체되면서 성장의 엔진이 식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글로벌 IT 시장의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로 옮겨가는 흐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휴대전화 판매량 세계 1위였지만,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애플에 크게 뒤처졌다.

카카오 키즈 D사와 같은 IT 기업의 몰락, PDA 산업의 쇠퇴는 산업 전반의 불안정성을 상징한다. IT 산업은 반도체, 통신기기 등 일부 품목에 집중 세계 경기변동에 민감하고, 기존 제조업의 IT 투자도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특히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의 확산으로 인해 IT와 소프트웨어 기업들마저 인력 감축의 파고를 맞고 있다.

2025년 맥킨지의 글로벌 설문조사에 따르면, AI 도입으로 향후 3년 내 IT 직종에서 인력 감축을 예상하는 비율이 25%에 달하며, 서비스, 물류, HR 등과 함께 IT 분야도 구조조정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 대표 IT 기업인 KT는 2024년 네트워크 운용 자회사 설립과 함께 최대 5700명 규모의 인력 조정을 발표했고, 엔씨소프트 역시 2025년까지 본사 기준 4000명대 중후반의 인력을 3000명대로 감축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넷마블 등 주요 게임사들도 신작 부진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인력 감축과 조직 슬림화를 단행하고 있다. 이처럼 소프트웨어 산업 특유의 인력 중심 구조에도 불구하고, AI와 자동화의 발전, 글로벌 경쟁 심화로 인한 비용 절감 압박이 대규모 감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통계는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올해 한국 정보통신산업 성장률은 2.0%로, 지난 해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용 ICT 시장은 지난해 39조8930억 원에서 올해 41조2040억 원으로 3.3% 성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IT 투자 비중은 1990년대 후반 8%에서 1999년 4.2%로 급감했다. 산업연구원은 올해 IT 수출 3.5% 증가, 수입 5.5% 증가, 무역수지 421억 달러를 전망하지만, 성장세는 점점 둔화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우리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미국의 IT 투자 비중이 40%를 넘는 것과 대조적이기 때문.

미국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애플, 구글, 아마존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이 혁신을 이끌고 있다. 막대한 R&D 투자, 창업 생태계, 산학협력, 벤처캐피털이 혁신의 토양이 됐다. 미국의 IT 기업들은 클라우드, 인공지능, 반도체 등 주요 분야에서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며, 앞으로도 IT 강국 지위를 유지할 전망이다.

중국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와 정책 지원으로 5G, 인공지능, 전자상거래 등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화웨이, 알리바바, 텐센트 등은 이미 글로벌 무대의 주인공이다. 국가 주도의 IT 정책과 대규모 R&D 투자가 성장의 원동력이며, 선전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릴 만큼 혁신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독일은 산업용 IT와 스마트 팩토리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고, SAP 같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한다. 제조업 기반의 디지털 전환에 성공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반면, 일본은 한때 소니, 샤프, 닌텐도 등으로 IT 강국의 위상을 누렸으나, 글로벌 시장 변화에 뒤처지며 경쟁력을 잃었다. 내수 시장에 안주하고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혁신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다. 샤프는 대만 훙하이정밀에 인수될 위기에 처했고, 소니, 닌텐도 등도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다. IBM 역시 한때 세계를 지배했지만, PC와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의 시장 재편에 따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해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들의 실패는 기술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세계적인 기업도, 국가도 몰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IT 산업은 여전히 6G, AI, IoT, 양자 컴퓨팅 등 신기술 분야에서 선두를 목표로 하고 있다. 6G 표준화와 상용화, AI 반도체 개발, 스마트시티 구축, 디지털 전환 등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AI와 클라우드, 자동화 기술 도입으로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AI와 같은 신기술의 확산은 일자리 감소, 기술 격차 심화, 데이터 주권 문제 등 새로운 도전을 안긴다. 미국, 중국 등 글로벌 빅테크와의 기술 격차, 산업 구조의 불안정성, 소프트웨어 경쟁력 부족은 여전히 큰 과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정부는 올해까지 소프트웨어 인재 41만3000명을 양성하는 대책을 추진 중이지만, 현장에서는 인력 감축과 고용 불안이 동시에 나타나는 이중적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기업들은 AI와 자동화로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숙련된 인력이 대거 이탈하거나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도 반복된다.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할 수 없다. 하드웨어 중심의 성장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 AI, 데이터 등 신성장 동력으로의 전환이 절실하다. 정부와 기업의 혁신, 인재 육성, 글로벌 협력 강화 없이는 IT 강국의 위상은 점점 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일본이나 IBM의 사례처럼 변화에 둔감하면, 한때의 영광은 쉽게 사라질 수 있다.

IT 강국의 자부심을 다시 한 번 되찾기 위해, 우리 모두의 각성과 새로운 도전이 절실하다.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근본적 변화와 용기, 그리고 미래를 향한 집념이 필요하다.

정부는 규제혁신과 R&D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고,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인재 양성과 창업 생태계 조성, 그리고 국제협력 강화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이미 한 번 IT 혁신의 기적을 이뤄낸 경험이 있다. 그 경험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무너지는 IT 강국이라는 우려를, 다시 일어서는 ‘디지털 코리아’의 희망으로 바꿀 때다.

최형일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전) 숭실대 IT대학 학장

(전) 숭실대 정보과학 대학원 원장

(전)컴퓨터사용자협회 고문

*이 기고는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수원=김정수 기자(kjsdm0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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