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진성 기자]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정치권, 게임 산업계, 학계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확실한 인과관계 없이 제도화가 이뤄질 경우, 게임은 물론 e스포츠, 콘텐츠 산업 전반에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와 강유정·조승래 의원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게임이용장애 도입, 왜 반대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왼쪽부터)김정태 동양대 교수, 김동은 메제웍스 대표, 백주선 법무법인 대율 대표변호사, 황희두 게임특위 공동위원장, 강유정 의원(게임특위 공동위원장), 이민석 연세대 연구교수, 남윤승 OGN 대표,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한승용 PS애널리틱스 최고전략책임자가 기념촬영했다 [사진=게임기자단]](https://image.inews24.com/v1/6c7a80b4c71723.jpg)
28일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는 '게임이용장애 왜 반대하는가'를 주제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게임 이용자, 산업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문제를 진단하고 문화산업에 미칠 영향을 짚기 위해 마련됐다. 발제자로는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백주선 법무법인 대율 대표 변호사, 김동은 메제웍스 대표, 이민석 연세대학교 연구교수 등이 참여했다.
앞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제표준질병분류(ICD) 11판에 반영했다. 이에 국내 정부는 2019년 국무조정실 주도로 민관협의체를 꾸리고, 국내 질병분류 체계인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게임이용장애를 등재 여부를 논의해왔다. 민관협의체가 도입을 결정하면 게임 질병코드는 오는 2031년 시행되는 KCD 10차 개정안에 반영된다.
하지만 등재여부를 결정해야하는 2025년 현재까지도 문화산업계와 정신의학계,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 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며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게임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게임이용장애 도입은 확실한 인과관계 검증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질병코드가 등재될 경우 문화·산업 전반에 되돌릴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년 논의해도 실질적 성과 없어…제도 도입 정당성 의심"
토론회에서는 게임이용장애의 기본 개념부터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은 "게임을 과도하게 이용한다고 해서 일상생활 기능이 저하되는지, 단순 몰입인지 구분이 불가능하다"며 "게임 과다 이용은 심리적 결핍의 결과일 수 있는데, 이를 억제하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주제가 20년 넘게 논의됐음에도 실질적 치료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소장은 "그동안 게임이용장애로 치료에 성공한 사례를 찾지 못했다"며 "제도 도입 정당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법적·사회적 부작용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백주선 법무법인 대율 변호사는 "진단 기준이 모호하고 자의적 해석 가능성이 높은 상태에서 질병코드를 부여하면, 낙인 효과와 과잉 치료, 취업·병역·보험 등에서 광범위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순한 지원 의도라도 질병코드를 부여하는 순간 사회적인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게임을 마약이나 도박 중독처럼 취급하는 것은 과도하다고도 꼬집었다. 백 변호사는 "병적행위와 일상적 몰입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문화적·연령적 차이도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고 있다"며 "의료적 치료나 약물 처방을 중심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교육과 상담 중심의 대안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스포츠와 콘텐츠 산업 기반 붕괴 우려…"제2의 페이커 못나온다"
게임 질병화가 현실화될 경우, e스포츠와 콘텐츠 산업 기반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이민석 연세대 연구교수는 "대한민국 e스포츠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 산업"이라며 "게임이 질병으로 지정되면 스폰서십 수익 구조가 붕괴하고 산업 생태계 전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유소년 육성 시스템 붕괴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육성 시스템이 무너지면, 더 이상의 페이커 같은 스타 선수는 등장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게임 과몰입 현상을 무조건 게임 자체 문제로 보는 접근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이 교수는 "게임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며 "청소년 과몰입 현상은 심리적·사회적 결핍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는데, 게임을 질병으로 규정하면 이같은 구조적 문제를 가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남윤승 OGN 대표는 과거 만화산업 탄압 사례를 언급하며 게임 산업에 미칠 부작용을 경고했다. 그는 "1970년대 정병섭 군 사건 이후, 58개 만화 출판사 등록이 취소되고 2만여권의 만화책이 압수됐으며 방송 만화영화의 90%가 종영됐다"며 "당시 만화가 청소년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산업 전체가 붕괴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하면 광고 시장 위축, 창작 위축, 방송 편성 축소 등 게임 미디어 생태계 전반이 똑같은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무협지, 만화, 음악 등도 기성세대에 의해 중독의 원흉으로 몰렸던 사례가 있다. 게임만 골라 규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확률형 아이템 등 도박적 요소는 규제해야 하지만, 게임 자체를 문제 삼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진성 기자(js421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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