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인 입춘(2월 3일)이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을 염원하지만, 요즈음 정국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처럼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위태로움이 감돈다.
다수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후 구속기소되면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적대적 공생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나라를 정상화할 새로운 정치 지형이 조속히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두 사람 간 ‘제2의 적대적 공생’이 되살아나는 양상이어서 당혹스럽다. 윤 대통령 집권 내내 이어졌던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극한 대립이 더욱 격화되고, 나라 전체가 심각한 상처를 입으면서 국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적대적 공생은 대한민국에 큰 불행을 안겼다. 서로 간의 적대감이 깊어지면서, 극한 대결이 이어졌고, 그 속에서 대화와 타협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독재정권 시절 김영삼·김대중 양 김은 비록 치열하게 경쟁하는 정치적 라이벌이었지만 대의에 충실하여 한국 민주주의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과도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런 혼란과 극단적 대립을 가져온 데 가장 큰 책임은 윤 대통령에게 있다. 집권 이후, 이 대표를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범죄자 취급을 하면서 독선적 국정운영을 이어갔다.
이 대표 역시 정치적 생존을 위해 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집중공격하며 윤 정권과 사생결단식으로 격렬하게 맞섰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방어에 민주당과 국회가 활용되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다. 또한 국무위원 탄핵이나 예산 일방 삭감 등으로 강한 대립각을 세워 첨예한 대결국면이 이어졌다.
윤석열의 탄핵은 이재명의 정치력 시험대
서로가 상대의 존재로 인해 위기에서 벗어나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아야 했다. 한 경기도 소상공인 단체 관계자는 “국민이 정말 지쳐 있다. 그런데도 여야는 내로남불만 반복하고 있다. 경제가 최악인데,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싸움질만 한다”며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신을 토로했다.
윤 대통령이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정치적 자멸의 수순으로 들어섰지만, 이 대표는 계엄과 탄핵 정국에서 안정적으로 수습하는 능력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공직선거법 2심 재판을 의식한 듯 조급함을 드러냈고, 박찬대 원내대표 등 측근들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발언 등 과도한 대응으로 실망과 우려를 안겨주었다.
이 틈을 타서 국민의힘과 보수세력은 더욱 강하게 결집하고 있으며 ‘이재명 불가론’과 함께 그에 대한 비호감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옥중에서 탄핵인용을 전제로 한 국민의힘의 조기대선 움직임에 대해 불쾌감을 전달하며 탄핵기각 후 복귀를 꿈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 연휴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반대 여론이 40%대 (MBC·케이스텟 40%,아시아투데이·한국여론평판연구소 45%)에 이를 정도로 추세가 심상치 않다. 반면 민주당 지지율은 국민의힘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답보 상태를 보였고, 이 대표의 지지율은 여야를 통틀어 1위이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안심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런 위기상황이지만 일부 친명 핵심 의원들은 “민주당에 다른 대안이 있느냐”며 이 대표의 대선후보 선출을 기정사실화 한다. 시대정신이자 탄핵의 완성인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당내 후보 경쟁이 필요한 데 절박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당연히 비명그룹은 당내 다른 후보들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이 대표 일극체제의 한계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더구나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결과가 3월 중 나올 경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당내 분란이 증폭될 수 있다. 일각에서 “민주당이 후보없이 대선을 치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당 지도부나 친명 핵심들은 이 대표의 눈치만 보느라 공개적으로 거론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 해도 나라가 과연 지금보다 나아질 것인가에 대해 다수 국민이 회의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탄핵정국에서 이 대표의 30%대 지지율이 이를 입증한다. 또한 윤 대통령 시절 드러난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와 적대적 양당 구조를 혁파하기 위한 개헌 논의에도 소극적이어서 정치개혁 의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이 대표의 그간 행태를 볼 때 진영으로 갈가리 찢긴 국민대통합을 해낼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민주당의 잠룡들, 판을 새로 짤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야권의 잠룡들이 조심스레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부겸 전 총리, 김경수 전 지사,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두관·박용진 전 의원 등이 이 대표 일극체제를 비판하고 있다. 비록 탄핵 정국 때문에 적극적인 행보는 어렵다 해도, 단순히 이 대표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라를 어떻게 정상화하고, 미래 비전과 가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면 판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야권 잠룡들이 지금처럼 소극적으로 움직인다면 찻잔 속 미풍에 그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불신이 극에 달한 정치판을 갈아엎는 혁명적 자세로 나선다면 민심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
프랑스 대통령이 되기 전 에마뉘엘 마크롱이나 독일 대안당의 알리체 바이델 대표처럼 기존 정치 질서를 전면 혁파하고, 국민이 원하는 정치·사회 대개혁을 이끌어낼 결기와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마크롱과 바이델은 기존 정치 질서가 더 이상 국민적 요구를 수용하지 못할 때, 과감한 기득권 타파와 참신한 의제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판을 갈아엎는’ 근본적 혁신이 가능하려면, 마크롱·바이델 처럼 과감한 구상과 도전적 리더십을 갖춘 인물이 나와야 한다. 낡은 공생의 틀에 안주하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구태와 분열의 정치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판을 새롭게 짤 의지와 실천력을 갖춘 지도자가 앞장서야 한다. 국민도 그런 리더가 있다면 기꺼이 힘을 실어줄 것이다.
긴 겨울을 지나 다시 움트는 새싹처럼 낡은 정치의 굴레를 벗기고 고단한 국민의 삶을 과감하게 바꿀 결단과 통합의 새 길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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