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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15> 시베리아에서 몽골고원으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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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하리라...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보리라"미국 켄터키주에 살던 나딘스테어 할머니가 85세에 쓴 시'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소개되면 널리 알려졌다. 지난1970년대 소년 윤영선도 김찬삼교수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세계여행을 꿈꾼다. 그의 꿈은 바쁜 관료생활로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랬던 그가 고교 졸업 50년만에 꿈을 실천했다. 나딘스테어 할머니의 시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이르기 까지 50일간의 자동차 여정이다. 그는 여행기간동안 멈춤과 느림의 시간속에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태고적 고원의 웅장함을 느꼈다고 한다. 70 나이에 꿈을 이룬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의 횡단기를 연재한다[편집자]

바이칼호에서 달콤한 짧은 휴식을 보내고, 우리는 몽골고원으로 향한다. 7월 초 한여름 서울(북위 37도)에서 출발, 블라디보스토크(북위 43도), 스코보로디노(북위 54도), 바이칼호(북위 52도) 등 고(高)위도 지방 '한대지방'을 통과하여 달려왔다. 이제는 중국의 서안(북위 33도)까지 직선으로 약 3천 킬로를 내려갈 계획이다. 한대기후에서 스텝기후, 반사막기후, 사막기후, 온대기후 등 며칠 동안 많은 기후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오늘은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몽골 국경도시 '다르항', 몽골의 제2 도시로 가야 한다.

화창한 햇볕을 맞으며 아침 8시 바이칼호 숙소를 힘차게 출발한다. 어제 오후 정비소에 맡겨 놓은 O 사장 자동차를 찾기 위해 울란우데(숙소에서 140킬로 떨어짐) 정비소로 향한다. 서울에서 140킬로 떨어진 정비소라면 무척 먼 거리라고 생각하지만, 광대한 대륙성 분위기에 적응한 우리는 가까운 거리로 생각한다.

몽골고원과 고비사막 이동 경로, 빨간 점선의 노란 면적이 고비사막. [사진=윤영선]

정비소 기사는 구멍 난 '터보' 주위를 감싸서 임시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고쳤다고 한다. 어제 O 사장이 경기도 이천 동생에게 전화해서 새 부품 '터보'를 구입, 4일 후 중국 내몽골 국경도시 엘레하오터로 가져오도록 연락을 이미 했다. (자동차 여행은 돈이 많이 든다) 차가 몽골고원을 제대로 통과하는 것이 당면 목표이다.

중국 내몽골 국경에서 서울에서 가져온 새 '터보'로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할 계획이다. 몽골로 출발 전 울란우데 중심지에 있는 레닌 동상을 구경하기 위해 시내로 향한다. 레닌이 1924년 사망 후 후계자 '스탈린'은 레닌 우상화를 위해 소련 연방공화국 내에 수만 개의 레닌 동상을 설치했다고 한다. 1991년 소련연방의 해체 이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울란우데 중앙광장의 레닌 머리동상) 개혁개방 분위기에서 대부분 레닌 동상은 철거되었다.

울란우데 시청 앞에 설치된 레닌의 가분수 불균형한 머리동상은 1991년 철거를 계획했다가 당시 철거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철거를 포기하였는데, 지금은 울란우데의 대표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재미있는 역사의 반전이다. 현재 레닌 시신은 모스크바 붉은광장 레닌묘에 안치되어 있다.

레닌, 중국 모택동, 베트남 호치민, 북한 김일성, 김정일 등 독재자들은 죽어서도 공산주의 체제홍보를 위해 평안한 안식을 못 취하고 전시 중이다. 불쌍한 영혼들이다. 점심은 시내 버거킹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서 근처 공원에서 간단하게 하였다. 미국과 러시아가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미국 햄버거와 코카콜라는 러시아인의 애호식품이다.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경제 제재로 맥도널드 햄버거는 철수했는데 버거킹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울란우데 중앙광장의 레닌 머리동상. [사진=윤영선]

'울란우데'부터 동쪽의 태평양, 사할린섬까지의 영토를 '극동 러시아'로 부른다. 극동 러시아 면적은 약 700만 평방킬로(남한 10만평방킬로)이나, 인구수는 겨우 800만 명이다. 그나마 매년 인구수가 줄어들어서 영토 관리에 위기를 느끼는 지역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연해주 지역은 19세기 중반 청나라로부터 강탈한 영토이고, 사할린 남쪽의 섬들은 일본으로부터 2차세계대전 후에 빼앗은 영토이다. 모스크바로부터 거리가 멀고, 인구수가 줄어들면 미래 이 지역은 지정학적 분쟁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울라우데에서 남쪽으로 넓은 초지로 조성된 스텝지대이다. 이곳 스텝 지역의 중심으로 몽골인들이 신성시하는 셀렝게강이 바이칼호로 흘러 들어간다. 지리학에서 초원 지역은 나무는 띄엄띄엄 자라고 초지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남쪽 몽골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양. 말. 소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 경치를 보면서 자동차 여행의 지루함을 잊고 있다.

브랴트 몽골인들도 몽골공화국 몽골인처럼 티벳 불교를 믿는다. 마을에 조그마한 티벳 불교 사원과 오보(성황당처럼 돌무덩이에 말뚝을 꽂고 형형색색 천을 감아 놓은 장소)가 자주 눈에 띈다. 러시아의 오랜 종교탄압에도 불구하고 잊혔던 과거 종교와 민속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러시아의 남쪽 국경 세관이 있는 국경도시 '캬흐타'까지 260킬로를 달려야 한다. 캬흐타는 1727년 중국과 러시아 간 국경을 확정한 '캬흐타조약'을 체결한 지역인데 오늘 통과한다. 오늘 러시아 남쪽 변방의 세관에 출국 신고를 하고, 몽골공화국의 세관에 입국 신고를 해야 한다. 세관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내심으로 걱정하면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시베리아 대평원은 추운 한대기후이지만 북극해로부터 실려 온 수증기로 인해 여름은 비가 자주 오고, 겨울은 눈이 많이 온다. 강수량이 충분해서 커다란 산림지대와 초원 지대가 형성되어 사람이 거주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북극해로부터 멀리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몽골고원의 남쪽 지역은 비가 적게 오는 반사막, 사막기후로 변하고 있다. 바다는 수억 년 전 생명 탄생의 고향인데, 지금도 수증기를 증발시켜서 육지에 비를 내려줘 인간 생활에 가장 큰 도움을 준다.

우리처럼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영토는 신의 축복을 받은 지역이라는 감사한 생각이 든다. 일 년 중 7, 8월은 사막에도 비가 오는 우기(雨期)라서 이곳 초원은 환상적인 아름다움 자체이다. 고려청자의 비취색 색깔을 닮은 하늘, 연초록색 초원, 지평선 멀리 야트막한 구릉, 하얀 뭉게구름 등 대자연의 아름다운 조화가 여행의 피로를 날려 보낸다. 수백 명이 떼 지어 달려가는 몽골 병사의 말 방울 소리와 함성이 아련히 광야에서 들리는 것 같다. 유목민의 터전이라 농지는 거의 안 보이고,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 초록색 초원뿐이다.

나무가 별로 없는 스텝 지대 초원. [사진=윤영선]

러시아 남쪽 국경 통과를 앞두고, 여행 경비를 각자 1만 불 이내로 분산하여 소지한다. 타국으로 입국하는 국경은 항구의 해관, 대도시의 공항, 국경 변방의 세관 세 종류가 있다. 2주일 전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해관(海官)으로 입국했는데 오늘은 러시아 남쪽에 설치된 육상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공항에서 만나지 않는 군대 초소, 경찰 초소와 출입국기관, 세관 등의 많은 정부 기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번 여행에 이러한 육상국경을 8번 통과해야 하는데 오늘이 첫 번째이다. 가장 먼저 국경으로부터 30여 킬로 후방의 군부대 검문소에서 여권을 검사한다. 군대 초소 앞에 앉아서 무한정 기다린다. 총검을 소지하고 군복을 입은 군인들에게 빨리 처리해달라고

부탁했다가 괘씸죄에 걸릴까 봐 물어보지도 못한다. 40여 분을 기다리니 통과하라고 여권을 돌려준다. 군대 초소를 통과하여 수십 킬로 달려가니 경찰 초소 검문소를 만난다.

이후 캬흐타에 있는 세관에 도착한다. 화물차가 통과하는 라인과 승용차가 통과하는 라인이 각각 다르다. 러시아에서 몽골로 들어가는 화물차들이 길게 줄지어 있는데, 다행히 승용차 라인은 차가 적다. 우리는 승용차 라인에 대기하다가 호명하면 3대씩 입장이 허용된다. 주로 몽골에서 러시아로 쇼핑하러 갔다 다시 몽골로 돌아오는 보따리상들의 승용차이다. 몽골인이 가방을 풀어서 도로에 내려놓고 짐 검사하는 것을 보니, 주로 햄, 소시지, 통조림, 각종 그릇, 의류 등 공산품과 잡화들이다.

우리는 자동차가 무사히 빨리 통관하는 것이 관심사다. 세관 직원들이 자동차가 러시아 입국 당시 신고 서류와 출국 차량이 동일한지 조사한다. 이러한 자동차 확인 과정에 무척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자동차 여행이 만만치 않음을 국경에서 다시 한번 체험한다.

관세법상 자동차는 '휴대품'으로 분류된다. 처음 입국할 때 가져온 차를 중간에 팔거나 다른 차로 바꾸면 아니 된다. 사고가 나서 폐차하게 되면 해당 국가의 '폐차 확인서'를 발급받아서 서울에 가져가야 한다. 우리도 세관 도로 옆 땅바닥에 개인의 가방 짐을 펼쳐 놓고 짐 검사를 한다. 세관 직원이 차량의 본네트, 트렁크, 좌석 밑바닥, 앞좌석 서류함 등 구석구석을 검사한다.

일반적으로 외국으로 나가는 출국심사는 간단히 하고, 자국으로 들어오는 입국심사는 엄격히 하는데, 이곳 러시아 공무원은 출국하는 여행객 짐을 무척 깐깐하게 조사한다. 관료주의의 전형을 경험하고 있다. 러시아 국경에서 자동차 검사 등 통과하는 데 3시간을 길옆에 서서 보냈다. 세관 검사를 끝나면 도보로 짐을 끌고 이동하는데, 마지막으로 러시아 경찰 초소에서 여권검사를 다시 한다.

울란우데 중앙공원에서 햄버거 점심 식사. [사진=윤영선]

양옆에 철책으로 쳐놓은 국경의 완충지대를 100여 미터 걸어서 가면 몽골공화국 입국 신고 장소이다. 역순으로 몽골공화국 입국 신고를 위해 긴 줄을 서야 한다. 몽골 공무원은 한국인에 우호적이고, 한국어를 약간 아는 여직원도 있다. 한국인이 차를 갖고 몽골로 오는 게 처음이라서 호기심으로 여러 가지를 물어본다.

여직원이 연장자인 K 교수의 여권에 기재된 나이를 보고, 연령이 정확한지 질문한다. 몽골에서 70세가 넘으면 매우 고령자인데 쌩쌩하게 자동차여행을 하는 게 놀랍다는 표정이다. 몽골국경에서 자동차 입국 신고, 차량 검사에 1시간 걸렸다. 두 나라 국경 통과에 4시간 걸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밤 9시다. 점심은 햄버거로 약식으로 했는데, 러시아와 몽골의 국경 통과 때문에 저녁 식사를 아직 못 먹고 있다. 국경 근처에 식당이나 편의점도 없다.

국경에서 숙소인 몽골 도시 '다르항'까지 160킬로를 달려야 한다. 캄캄한 밤중에 갈 길은 먼데, 몽골의 도로 형편은 시베리아 못지않게 구멍이 파인 포트홀이 많고, 편도 1차선 좁은 도로이다.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라서 속도 내기도 어렵다. 저녁도 거르고 밤 11시 다르항 호텔에 도착했다. 다르항은 몽골 제2의 도시로 인구수가 10만 명인데, 시내의 모든 식당은 이미 닫았다.

호텔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와서 저녁을 먹으니 새벽 1시다. 국경 통과를 처음 해보니 자동차 여행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체험한다. 문제는 O사장 차가 수리했음에도 언덕길은 잘 못 가고, 평지나 내리막길에 80킬로로 달려가는 수준이다. O 사장 차는 임시방편 운행을 하고 있다. 향후 1천 킬로 이상 몽골고원을 어떻게 통과할지 모두가 걱정이다.

몽골시간 새벽 1시(한국시간 새벽 2시) 서울의 지인, 삼정 KPMG 김교태 회장에 도움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다.

"자동차 수리가 긴급히 필요하다. 몽골 울란바토르의 KPMG 지사장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기사를 통해 정비소를 소개해달라. 식사를 지원해달라. 못 먹어서 영양 보충이 필요하다."

몽골고원 북방의 변방에서 새벽 늦게 잠이 들었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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