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주훈 기자] 국회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둘러싼 여야 신경전이 장기화되고 있다. 표면적으론 대통령 직무 정지 상황에서 권한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느냐라는 논란이지만, 이면에는 '탄핵소추안 심판' 수싸움이 본격화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한 공방이 지속되면서 18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 회동에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회동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헌법재판관 관련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관 관련해선 (인사청문회 특별위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권한대행이 임명해야 하는) 원칙은 분명하기 때문에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궐위냐 사고냐' 대통령 상태 두고 '갑론을박'
현재 여야는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임명이 가능한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헌법에는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 범위와 관련해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쟁점으로 부상한 것은 '헌법 71조' 해석이다. 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하여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정했다. 이 때문에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현재 상황을 대통령의 '궐위'로 봐야 하는지, '사고'로 판단해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의힘은 현재 대통령의 상태가 궐위는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까진 '직무 정지'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은 임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법리적으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궐위 시에는 가능하지만, 사고 시에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반면, 민주당은 이를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번 헌법재판관 선출은 국회 몫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은 수동적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논란을 두고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각자 주장의 근거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시 쏟아냈던 과거 발언을 꺼내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민주당의 발언과 황교안 권한대행의 사례를 근거로 들고 있다. 추미애·박범계 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퇴임에 따른 후임자 임명과 관련해 권한대행은 임명 권한이 없다고 주장했다. 황 권한대행이 이선애 재판관 임명을 헌재의 탄핵 인용 이후에 처리한 것도 국민의힘이 제시하는 근거 중 하나다.
여야, '박근혜 탄핵심판' 때는 반대 해석
반면 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시점부터 대통령 권한대행 조건인 '사고 상태'가 됐다고 보고 있다. 당은 이 논란에서 입장을 바꾼 것은 오히려 국민의힘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해서도 국회의 인사 청문 절차가 마무리되면 즉시 임명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지난 2017년 2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위원이었던 권 원내대표는 당시 '황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권한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헌법재판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형식적인 임명권이기 때문에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대통령이 아닌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장이나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는 것이 대다수 헌법학자들의 의견"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박범계 의원도 당시 자신의 트위터(현재 'X')에 "황교안 대행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 법리적으로도 그렇고 이미 정치적 사안으로 부상했기에 더욱 경계한다. 탄핵결정을 미루려는 꼼수라고 본다"고 말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추 의원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경우는 권한대행의 임명거부가 위헌이 된다"면서 "공석인 국회추천 3인의 재판관에 대한 임명은 권한대행의 의무일 뿐"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전날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법률적 주장이라기보단 정치적 주장에 가까웠다"고 주워담았다.
국회의장 "실질적 임명 권한은 국회가 가져"
논란이 장기화되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국회에서 선출한 3인은 대통령의 형식적 임명을 받을 뿐, 실질적 권한은 국회에 있다"고 중재에 나섰다. 우 의장은 국회 입법조사처와 헌재의 해석을 들어 "국회의 선출 및 대법원장의 지명, 헌법재판관의 경우 대통령 임명권은 형식적인 권한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 변호인단 자문을 맡고 있는 석동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석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윤 대통령은 탄핵소추가 된 상태일 뿐, 헌재의 탄핵가부 결정이 나기 전이기 때문에 엄연히 현직 대통령 신분"이라면서 "현직 대통령이 존재하는 이상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인사권까지 대리 행사할 수 없다는 논거에서 볼 때, 과거 황 권한대행의 임명 사례는 인용할 사례가 못 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국회는 이미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인청특위)를 구성해 오는 23·24일 이틀간 청문회를 진행하기로 확정했다. 국민의힘은 불참 의사를 드러냈지만, 야당은 청문회를 강행할 것이라는 의지를 드러냈다. 결국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은 예정된 수순이다.
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한 권한대행은 고심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총리 탄핵' 카드를 쥔 채, 농업 4법,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 등 법안 수용과 헌법재판관 임명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러 해석과 논란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다"고 결론을 유보했다.
"6인보다 9인이 탄핵 인용 가능성 높아"
정치권에선 헌법재판관 임명권에 대한 여야 공방이 탄핵심판 수싸움의 전초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 등 공무원에 대한 탄핵은 헌법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으로 인용된다. 현재 헌재는 6인 체제로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착수한 만큼, 인용되기 위해선 전원이 찬성을 해야 한다.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의힘 입장에선 6인 중 한 명만 반대하면 '탄핵 역풍'을 주도할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9인 체제에서 4명의 반대를 기대하는 것 보다는 현재 체제에서 기대감을 가지는 것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아이뉴스24>와의 통화에서 "헌재가 완전한 구성(9인)으로 재판에 임하는 것이 국민적 신뢰성을 줄 수 있다"면서도 "탄핵은 분명히 인용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6인 체제는 (탄핵 인용에)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9인 체제로 진행되는 것이 안정성도 있고 탄핵 인용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김주훈 기자(jh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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