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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13> 오딧세이 시베리아(바이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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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하리라...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보리라"미국 켄터키주에 살던 나딘스테어 할머니가 85세에 쓴 시'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소개되면 널리 알려졌다. 지난1970년대 소년 윤영선도 김찬삼교수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세계여행을 꿈꾼다. 그의 꿈은 바쁜 관료생활로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랬던 그가 고교 졸업 50년만에 꿈을 실천했다. 나딘스테어 할머니의 시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이르기 까지 50일간의 자동차 여정이다. 그는 여행기간동안 멈춤과 느림의 시간속에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태고적 고원의 웅장함을 느꼈다고 한다. 70 나이에 꿈을 이룬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의 횡단기를 연재한다[편집자]

숙박한 '사강 달리'의 아침 기온은 13도, 상쾌한 날씨이다.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시베리아의 다음 목적지 바이칼호를 향해서 출발한다. 바이칼호에 도착하면 3700킬로 시베리아 대평원을 달려온 셈이다. 도로 상태도 매우 나쁜 편도 1차선(왕복 2차선) 길을 수시로 중앙선을 추월해서 달려왔다.

먼저 바이칼호 근처 140킬로 떨어진 “울란우데”(브랴트공화국 주도)의 정비소에 가야 한다. 오늘은 일요일인데 출발 전 전화해 보니 울란우데 1급 정비소가 일요일에도 정상 영업을 한다고 한다. 우리도 과거 소득이 적을 때 주중 주말 구분 없이 일했던 경험이 생각난다. 울란우데 정비소에 구멍 난 터보 수리에 대해 전화로 예약했다. 터보가 고장 난 O사장 차는 제 속도를 못 내고, 간신히 시속 80여 킬로 저속으로 운행 중이다.

울란우데는 러시아 부랴트 공화국의 주도(州都)(인구 43만)로서 이곳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이 지역은 부랴트족 몽골족이 목축업 생활을 하던 북부 몽골초원이다. 몽골인종이 30%, 40% 점유하고 있다. 부랴트 몽골족은 러시아에 동화되어 몽골어를 잊어 버렸다.

울란우데로 가는 초원의 풍경. [사진=윤영선]

1727년 청나라와 러시아 두 나라가 바이칼호수 등 시베리아 지역의 몽골족 거주지를 러시아에 넘겨주는 국경조약(카흐타 조약) 체결 이후 러시아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현재 독립 시도, 인종 갈등, 몽골 통합 등 소수민족 문제가 없는 지역이다. 시베리아 산림을 벗어나고 있다. 아름다운 목초밭, 초지가 멀리까지 끝없이 펼쳐지고 있다.

연두색 초원, 몇 조각 하얀 구름, 새파란 하늘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을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해도/ 우리 슬퍼하기보다, 차라리/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리 ...'윌리엄 워즈워드 '초원의 빛' 시가 떠오른다.

차창 밖 사진을 찍다가 사진으로 전체 풍경과 분위기를 담을 수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사진 찍기를 포기한다. 사진 찍는 대신 벅찬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로 한다.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초원에는 '모기, 등에, 파리, 벌, 독성이 있는 곤충' 등 우글거려서 들어가면 큰 사고를 당한다.

며칠 전 사진 찍으러 갔다가 물린 곳이 아직도 가려워서 고생하고 있다. 목축업을 하는 농가가 초원에 자주 나타난다. 목재로 지은 주택이 많은데, 규모가 작고, 무척 낡아 보인다. 겨울철 추위와 난방비 절약을 위해 작은 집에 사는 것이다. 모든 목재 집의 지붕 중앙에 굴뚝이 한 개씩 설치되어 있다. '게르'(몽골 천막) 중앙에 설치된 굴뚝처럼 바닥에는 음식 조리와 난방을 겸하는 화덕이 있을 것이다.

집 집마다 마당에 나무울타리로 겨울철 가축을 가둬두는 가축우리가 설치되어 있다. 가축우리 크기에 따라서 가축 수의 많고, 적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름철 방목이 끝나면 건초를 먹이면서 겨울을 보내는 장소이다.

초라한 목조가옥은 과거 서부영화에 나오는 퇴색한 시골 풍경과 무척 닮았다. 러시아는 평원과 초원을 이동하며 생활하는 유목민을 정착 생활하도록 제정러시아부터 소련연방까지 오랫동안 공권력을 투입했다. 유목민들은 정착 생활에 익숙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처음은 크게 저항했다고 한다. 러시아 정부의 정착유도 의도는 정착민들은 통제하기 쉽고, 세금 징수에 편하고, 반란이 발생했을 때 진압이 쉽기 때문이다.

서부영화 같은 목축업 마을 풍경. [사진=윤영선]

특히 카자흐스탄의 넓은 초원에 흩어져 살던 카자흐 유목민은 정부의 강제적인 정착유도에 큰 저항을 하였다. '카자흐' 뜻은 '자유인, 방랑자'의 의미이다. 카자흐인들의 저항을 제압하고 반강제로 정착 생활로 추진하는데 많은 유혈 사태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여름은 초원에 가서 유르트(게르)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나와 미세스 송은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전원풍경에 빠져들면서 신앙인의 '피정(避靜)' 온 느낌이라고 대화한다. 피정(避靜)은 카톨릭 신자들이 평소 살던 집을 떠나서 조용한 수도원이나 오지에 들어가서 묵상하고 기도하고 명상하는 일이다. 불가의 스님도 평소 살던 절에서 떠나 선정(禪靜)을 하기 위해 조용한 암자에서 동안거 (冬安居), 하안거(夏安居) 등 정기적으로 칩거하며 수양한다.

우리도 도시의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시베리아의 대평원을 달리며 피정(避靜)하는 기분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영성을 충만하게 만드는 피정(避靜)의 엔돌핀을 기대하며 달린다. 여행도 리듬을 타야 하는 데 자동차에 또 다른 문제가 생겨서 여행의 흐름이 끊어진다. 나는 SUV 디젤차는 주기적으로 “요소수”을 넣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요소수가 고갈되면 디젤차가 멈춘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리가 탄 차의 요소수가 비어간다고 빨간 경고신호가 계기판에 들어왔는데, 오전 내내 요소수 가게를 못 찾고 있다.

길가에서 자동차에 요수소를 붓고 있는 모습. [사진=윤영선]

급기야 중간에 요소수를 못 구한 채 요소수가 바닥나고, 우리가 탄 차가 도로에 멈춰 섰다. H씨가 윤 군과 함께 요소수 가게를 찾아서 앞으로 무작정 달려간다.

이곳은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지역이다. 요소수를 사러 간 동료와 연락이 안 되니 답답하다. 두 시간여를 길가에 앉아서 요소수를 못 사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80킬로(왕복 160킬로) 달려가서 요소수 가게를 찾았다. 두 시간을 길에서 허비한 다음 요소수를 보충하고 출발한다.

울란우데로 운전해 가는 도로 위에서 러시아 표준 시간이 한 시간 늦춰져서 시간을 다시 조정한다. 서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오늘도 낮을 한 시간을 번 셈이다. 러시아 영토는 광대한 나라로 표준시가 9개이다. 우리는 러시아 이동 중에 표준시간을 세 번째 맞추고 있다. 오후 3시경 울란우데 정비소에 도착했다.

1급 정비소라서 기대가 크다. 마침 직원이 몽골계 직원이다. 외모가 비슷한 우리에게 매우 친절하다. 차를 맡겨 놓고 가라고 한다. 밤사이 수리할 테니 내일 아침 9시에 찾으러 오라고 한다. 우리는 O사장 차를 정비소에 맡겨 두고, 두 대 차에 나누어 타고 바이칼호 숙소로 향한다.

시베리아 코스의 중간 종착지, 바이칼호에 석양 무렵 도착했다. 자동차를 맡기고 바이칼호 숙소로 가는 도중에 슈퍼마켓에 들려서 저녁 식사에 사용할 삼겹살, 러시아 술 보드카, 양파, 당근 등 식자재를 샀다. 노상에서 노지재배 딸기를 팔고 있다. 작고 볼품은 없지만 맛은 먹을 만하다. 저녁 식사 후 디저트용으로 K회장이 노지 딸기 한 박스를 샀다. 숙소는 바이칼호수 백사장 옆에 있는 3층짜리 민박 건물이다.

바이칼호 석양. [사진=윤영선]

석양 무렵 바이칼호에 도착하자 모두 백사장으로 뛰어가면서 만세를 부른다. 모두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미세스 송은 잽싸게 양말을 벗고 호숫물에 발을 담그며 행복해한다.

경상남북도 크기의 호수로 세계에서 제일 큰 민물 호수이다. 나와 미세스 송은 4년 전 추운 겨울 2월에 눈 덮인 자작나무 숲과 얼어붙은 바이칼호를 보러 왔던 추억이 생각난다. 당시 영하 30도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데, 반대로 오늘은 날씨가 일 년 중 가장 좋은 7월 한여름에, 바이칼호에 다시 온 것이다. 감회가 새롭다.

민박집 주인이 지하층 부엌을 저녁 식사 요리에 사용하도록 빌려주었다. 미세스 송, 나, L실장, 윤 군 등 일행이 공동으로 삼겹살 고추장구이를 준비했다. 주방용 칼이 매우 무디어서 고기 자르는데 불편이 있었다. 반찬은 통조림 김치 한 가지이다. 보드카와 삼겹살 구이가 잘 어울린다. 보드카는 맛있는 것으로 3병을 샀다.

지난 1주일 동안의 시베리아 대평원의 피로가 싹 가신다.

민박집 주방에서 러시아 여행객과 건배. [사진=윤영선]

보드카 술잔을 들고, "가자! 이스탄불" "고생 끝, 행복 시작" 여행의 완주와 안전을 염원하는 건배사를 합창한다. 옆자리에 식사하던 러시아 부부가 자기 부인이 오늘 60회 생일이라고 한다. 자연스럽게 합석하여 술도 함께 먹고, '해피 버쓰데이' 생일 축하곡도 부르면서 즐거움을 나눈다. 러시아 사람이 집에서 가져온 과실주를 우리에게 권한다. 러시아 부부와 함께 사진도 찍고 화목한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 남성에 건배사를 부탁하니 "여행할 때 도로에 못과 철 조각이 없기를" 외친다. 러시아인 건배사는 덕담을 나누는 우리와 다르다. 러시아 열악한 도로 사정을 알 수 있는 건배사라고 생각이 든다. 식사는 서울서 가져온 라면을 먹었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민박집이라 아늑한 분위기, 깨끗한 침대 시트, 화장실 수건 등 서구식이다. 미세스 송이 그동안 시베리아의 쿠션이 망가진 침대에서 고생했는데 편하다고 활짝 웃는다.

미세스 송과 밤중에 북반구의 총총한 별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보드카 술기운에 그냥 잠에 빠졌다. 바이칼 호수의 공기는 가볍고 매우 맛있다. 원시의 생명력이 넘치는 바이칼호 호반의 숙소에서 행복한 꿈을 꾸었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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