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국내 제약사들이 미국의 생물보안법 추진을 계기로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CDMO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커지면서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21일 제약 업계에 따르면 휴온스는 최근 CDMO 기업 팬젠의 주식 264만7378주(20.96%)를 취득하기 위한 주식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상대는 팬젠의 기존 최대 주주인 CG인바이츠다. 휴온스는 143억원 상당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으며, 지분 인수계약 종료일은 잔금 지급일인 내달 13일이다.
이번 거래가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휴온스는 기존에 보유한 133만5789주(10.57%)를 포함해 총 398만3167주를 확보하게 되며, 지분율 31.53%로 팬젠의 최대 주주에 오르게 된다. 휴온스는 주식 취득 완료 후 임시주총을 통해 펜젠 경영권을 확보하고 이를 종속회사로 편입할 방침이다.
휴온스의 이번 인수 배경에는 팬젠의 성장성이 작용했다. 팬젠의 올해 3분기 기준 매출액은 4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9% 급성장했다.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3억원, 12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특히 3분기 누적 매출액은 지난해보다 163% 급증한 103억원으로 집계됐다.
팬젠은 빈혈치료제(EPO) 바이오시밀러를 위탁생산(CMO) 방식으로 국내외에 공급해 온 경험이 풍부한 바이오 기업이다. cGMP(미국 의약품 제조 품질관리 기준)급 생산 시설도 갖추고 있어 연구개발부터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성과를 달성해왔다. 특히 만성 신부전 환자를 위해 개발한 EPO 바이오시밀러 '팬포틴'의 상업화에 성공해 국내뿐 아니라 말레이시아 시장에도 수출하고 있다. 2021년에는 팬포틴을 터키 제약사 브이이엠(VEM)에 300만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하기도 했으며, 올해 9월에는 태국에서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휴온스그룹은 자회사 휴온스랩이 개발 중인 '인간 유래 히알루로니다제(이하 히알루로니다제)'로 CDMO 사업에 나설 계획이다. 휴온스랩은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에 히알루로니다제의 특허 심사 등록을 신청해놨으며, 상업화 시 생산 기지로 팬젠의 cGMP 공장을 선정했다. 휴온스 관계자는 "팬젠을 계열사로 편입하고, 그룹 통합 R&D 센터인 동암연구소 역량으로 CDMO 성장동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통 제약사 보령도 CDMO 사업 진출 계획을 알렸다. 회사는 최근 보령파트너스를 대상으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해 1750억원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을 밝혔다. 발행되는 신주는 보통주 1809만7207주이며, 신주 발행가는 주당 9670원이다. 상장 예정일은 이달 29일이다. 보령은 이번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 일부를 CDMO 사업 기반 조성에 사용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공장 및 설비 증설 △공급망·유통망 확장 등에 투자할 계획이다.
보령의 공장 증설 계획에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곳은 항암제를 주요 품목으로 생산 중인 예산공장이다. 예산공장은 지난해 2월 EU-GMP(유럽연합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 인증을 받아 CDMO 사업을 추진할 역량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보령 관계자는 "CDMO 사업 기반 확보를 위해 예산공장 증설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들 기업이 CDMO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는 미국 정부가 강력히 밀고 있는 생물보안법(Biosecure Act)이 한몫했다. 또한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당선되면서 생물보안법 제정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생물보안법은 중국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 제한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안으로, 규제 대상은 우시바이오로직스를 포함한 5개 중국 기업이다. 이들 기업이 미국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은 조 단위를 넘었으며, 미국 124개 기업 중 79%가 1개 이상의 계약을 중국 업체와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물보안법이 시행되면 다수의 미국 기업이 중국 CDMO 기업을 대체할 파트너를 찾아야하는데, 이 자리를 국내 CDMO기업이 메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CDMO 시장의 성장 전망도 밝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CDMO 시장 규모는 196억8000만달러(한화 약 27조3900억원)로 전년 대비 3.5% 증가했으며, 2029년까지 연평균 14.3% 성장해 438억5000만달러(약 61조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생물보안법의 반사이익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다국적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는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강해 미국 CDMO 기업들이 먼저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일본과 인도 또한 CDMO 경쟁력이 매우 높아, 반사이익을 얻기 위해 물밑 작업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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