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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트럼프를 지워나가야 우리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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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고 닷새 만인 11일 우리나라 역대 통상교섭본부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통상교섭본부장은 차관급 정무직공무원이다. 외교와 경제에 두루 능통한 당대 최고 전문가가 맡는 자리다. 이 자리는 역대 정부에 따라 산업부(산업통상자원부) 소속이기도 했고, 외교부(외교통상부) 소속이기도 했다. 수출 산업 비중이 큰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사진=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사진=AP/연합뉴스]

우리나라 경제 외교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닷새 만에 긴급 소집된 것은 사안의 시급성을 말해준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대응하기 곤란한 괴물에 가깝다. 좋게 봐줘야 자기 이익에만 몰두한 거대 패권 국가 정부다. 그 수장은 자신의 편에 유리하고 돈이 되면 무엇이든 할 것처럼 보이는 장사치 출신이다. 취미가 골프다. 우리 대통령은 그와 사귀기 위해 8년 만에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는 말이 들린다.

역대 통상교섭본부장이 이 괴물 정부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좌담회를 개최하면서 내세운 주제는 '미국 新정부 출범, 한국 경제 준비되었는가?'였다. 뉴스를 지켜보는 게 직업이어서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지만 머릿속에 남는 ‘준비’는 골프밖에 없었다. 사실 이 정부만 그런 게 아니다. 좌담회에 나온 역대 통상교섭본부장의 발언을 꼼꼼히 봤지만 옳은 말이기는 해도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진단은 비슷했다. ‘대응하기 곤란한 괴물’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좀 더 외교적인 용어를 사용했을 뿐이다. 산업 분야별로 미칠 수 있는 영향과 바이든 행정부와 달라질 정책 방향에 대해서도 대체적으로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문제는 대응 방안이다. 말로는 이해가 되는데,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우리 정부가 과연 그 괴물 정부와 협상이 가능한 것인지, 그걸 알 길은 없었다.

아이뉴스24는 이미 트럼프 당선이 확정되기 열흘 전에 ‘미국 대선 향방과 한국 경제의 미래’란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당시는 승부가 초박빙으로 예상돼 트럼프로 확정됐을 때보다 진단해야 될 게 더 많았다. 어느 쪽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도 전문가들의 진단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대응 방안은 아무리 귀 기울여 들어도 알 수 없었다. 무지한 탓이겠지만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들렸다.

하나 마나 한 소리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 봤다. 대충 두 가지다. 칼자루를 쥔 자는 괴물이고 우리는 칼날을 잡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사실이 첫 번째 상황이다. 특히 수출 기업이 그 처지에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할 수 없다. 기업이 손해 보면서도 아무 말도 못 한다면 정부가 나서서 대변해야 하는데 우리 기업은 우리 정부가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는 게 두 번째 상황이다.

통상 외교 전략을 함부로 노출할 수 없는 탓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전직 통상교섭본부장은 현직이 아니라서 발언의 책임이 적은 만큼 우리 기업의 아픈 곳을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마땅하지 않나. "트럼프 정부와 신속히 협상해야" “민관의 위기 대응 시스템을 기민하게 운영해야” “다층적 대안을 마련해야”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이게 기업의 아픈 곳을 헤아린 대안이라 할 수 있겠나.

트럼프 2기 행정부를 ‘괴물’이라 표현한 게 좀 과할 수는 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남부럽잖은 소프트파워를 향유하고 있는 우리 국민 보기에 트럼프 2기는 너무 낯설고 뒤떨어져 보일 것이다. 트럼프에게 공개적으로 막대한 선거자금을 지원하고 유세 현장에서 팡팡 뛰며 환호하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자리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을 대입해보라.

상상이 되는가. 그 괴물 정부는 대통령의 아들과 딸과 사위와 또 여러 친족을 행정부 주요 자리에 앉힐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졌다고 군중을 선동해 백악관을 점령하겠다고 나섰던 사람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북한이나 러시아 그리고 중국의 지도자와 무엇이 다른가. 다른 것은 딱 하나뿐이다. 미국이 북한이나 러시아 그리고 중국보다 조금 더 부자 나라이고 그래서 힘이 더 세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8년 만에 골프채를 잡은 까닭은 좋게 보면 트럼프의 마음을 얻는 외교를 하기 위함일 테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쁘게 보면 힘 있는 자한테 무조건 고개를 조아리는 굴종일 테다. 그게 무엇이든 실제로 얻을 게 있다면 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고개마저 조아리고 빼앗기기만 한다면 가슴이 미어지지 않겠는가. 많은 전문가 토론을 보며 답답하게 느껴진 게 그런 까닭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후보에 입후보하기도 했던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WTO 출범 30년 중 가장 큰 위기"라고 진단했다. 수출 중심의 우리 경제는 WTO 체제 덕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살기 위해 괴물의 눈치는 보더라도, 세계가 더 잘 살기 위해 WTO 체제를 거듭나게 하는 데도 신경을 써야 한다. WTO로 트럼프를 지워나가야 우리가 살아갈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이균성 기자(seren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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