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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8> 오딧세이 시베리아(하비롭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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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하리라...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보리라"미국 켄터키주에 살던 나딘스테어 할머니가 85세에 쓴 시'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은 9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에 소개되면 널리 알려졌다. 지난1970년대 소년 윤영선도 김찬삼교수의 세계일주 여행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세계여행을 꿈꾼다. 그의 꿈은 바쁜 관료생활로 하염없이 미뤄졌다. 그랬던 그가 고교 졸업 50년만에 꿈을 실천했다. 나딘스테어 할머니의 시가 큰 힘이 됐다고 한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작해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이르기 까지 50일간의 자동차 여정이다. 그는 여행기간동안 멈춤과 느림의 시간속에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태고적 고원의 웅장함을 느꼈다고 한다. 70 나이에 꿈을 이룬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의 횡단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하바롭스크는 위도가 북위 48도(서울 37도)이다. 7월 10일 아침 5시 일출, 밤 9시 일몰로 낮은 16시간이다. 이곳은 '아한대 기후'로 온대와 한대기후가 만나는 지역이다. 시내 중심부로 아무르강이 흐른다. 만주어로 아무르강은 '큰 강'의 뜻이다. 중국은 '검은 강' 흑룡강(黑龍江)으로 부른다.

아침에 미세스 송과 아무르강 강변을 산책한다. 평일인데도 낚시 인파가 많다. 강폭이 매우 넓고, 유장하게 시베리아 대평원을 가로질러 흘러간다. 얼음이 얼지 않은 여름철 동안에만 이 강을 통해서 태평양으로 화물선이 다닌다. '아무르강의 물결'이라는 러시아민요가 생각나서 유튜브에서 듣는다. 노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유유히 아무르는 그 물결을 실어 나르네/ 시베리아의 바람이 모두에게 노래를 불러 주네/ 아무르의 타이거 앞에 조용히 찰랑이며/ 취한 듯 물결이 자유롭게 도도하게 흐르네…”

러시아 특유의 쓸쓸함과 민중의 애환이 느껴진다. 시베리아 대평원을 흘러가는 아무르강은 마치 '어머니 강'처럼 포근해 보인다. 아스라이 멀리 보이는 강 건너 땅은 중국영토이다. '황하강, 갠지스강'을 중국, 인도 사람들이 '어머니 강'이라고 부른다. 우리의 어머니 강, 우리의 젖줄은 아마도 서울과 기호지방을 가로지르는 '한강'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아내 송모 씨가 아무르강에서 잡은 무지개송어 낚시꾼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윤영선]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아내 송모 씨가 아무르강에서 잡은 무지개송어 낚시꾼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윤영선]

아무르강은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선이다. 아무르강을 경계로 러시아와 중국 사이 국경분쟁이 근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세계의 G2 강대국은 미국과 중국이다. 17세기 유라시아 대륙의 G2 국가는 청나라와 러시아이다. 두 나라가 아무르강에서 많은 국경분쟁을 하였다.

17세기 '조선, 청 연합군'과 러시아 군대가 전쟁한 지역이 바로 하바롭스크 남쪽에 있다. 조선 효종 때 하바롭스크 남쪽 아무르강에서 두 차례(1차 1654년, 2차 1658년) 전쟁에 참전했다. 청나라 속국이던 조선 효종은 청의 요청으로 260 여명의 군대를 두만강 회령을 넘어 출병했다. 조, 청 연합군이 승리를 거두었고, 조선실록은 '나선정벌(征伐)'로 기록하고 있다. 나선은 한자어로 러시아를 뜻한다. 조선실록의 과장된 정벌(征伐)이라는 용어 대신 '참전' 또는 '파병'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효종은 병자호란 패전 후 볼모로 청나라에 잡혀갔던 왕이다. 왕이 된 효종은 청나라 복수를 위해 북벌(北伐)을 위한 군대양성에 주력했다. 아이러니하게 청나라 북벌을 위해 양성한 조선군이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파병됐다. 임진왜란을 겪은 광해군, 병자호란은 겪은 효종의 국제적 식견과 외교정책은 정반대이다.

광해군은 임란 후 적국인 청나라와 일본에 유연한 실용주의 외교를 했고, 효종은 최강대국 청나라에 복수한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북벌 정책을 펼쳤다. 효종이 죽은 후 후대 왕들도 세계 최대 강대국 청나라와 학술, 문화 분야의 교류조차 끊고 지낸다. 학술, 문화의 교류를 주장하는 '북학파, 실학파'의 의견은 무시된다. 북경을 통해 서구 문물과 과학기술을 배울 기회가 차단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시베리아의 아무르강 전경. [사진=윤영선]
시베리아의 아무르강 전경. [사진=윤영선]

본격적인 시베리아 횡단의 대장정 시작이다. 의욕이 넘치는 원기 왕성한 출발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작은 도시 '벨로고르스크'(인구 5만 명)이다. 북서쪽으로 670킬로를 달려야 한다. 사고가 없는 행복한 하루를 기대한다. 어제에 이어서 강행군 이동이다. 두 시간 운전 후 20분 휴식이고, 약 300킬로 달리고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는다.

러시아는 1991년 15개 독립국으로 분열되었다. 스탈린이 1922년 소련 연방공화국 설립 후 70년 만에 소련연방이 해체된 것이다. 해체 이후 현재의 러시아 면적은 1710만 평방킬로이다. 남한 면적(10만 평방킬로)과 비교할 때 비현실적으로 넓은 영토이다. 대부분 영토는 광대한 시베리아의 대평원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캐나다 영토의 1.7배이다.

러시아는 250년 동안 징기스칸 몽골족의 지배를 받았다. 16세기 중반 몽골 지배에서 벗어난 후 시베리아로 동진정책을 하였다. 초기는 우랄산맥 동쪽 산림지대로 모피를 구하기 위해 동진(東進)하였고 결과적으로 세계 최대 영토 국가가 되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 알래스카를 팔지 않았다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17세기 서유럽의 귀족들 취향은 모피 옷이다. 러시아의 모피 판매 수입이 한때는 국가 수입의 30%를 차지한 적도 있다고 한다. 초행길 운전에 구글맵(map), 위성항법장치 GPS(global position system)의 도움이 매우 크다. 밤중에 작은 도시 뒷골목에 있는 여관을 찾는데 구글맵이 없다면 여행은 불가능할 것이다. 구글이 세계화 시대의 가장 좋은 협력자이다.

GPS 앱 덕분에 현재 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 위도, 경도, 해발고도”를 확인하면서 가기 때문에 초행길 불안감이 적다. 시베리아 대평원의 산속 길은 인터넷이 수시로 끊기고, 구글맵, 국제전화, GPS가 멈춘다. 인터넷이 멈추면 우리는 문명인(文明人)에서 자연인(自然人)이 된다. 인터넷 연결이 끊기는 것이 처음에 불안감을 주었지만, 익숙해지면서 우리를 단순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나와 미세스 송은 L실장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있다. 모하비라는 SUV 차종인데, 차대가 높아서 주변 경치를 보는데 편리하다. 주된 기사 L실장이 피곤해서 교대를 요청하면 보조 기사인 나와 미세스 송이 핸들을 잡는다.

하바롭스크 인근 시베리아 대평원 전경. [사진=윤영선]
하바롭스크 인근 시베리아 대평원 전경. [사진=윤영선]

하바롭스크 지나 200여 킬로 지나 싱안령산맥을 만난다. 높이는 200에서 400미터로 높지 않지만, 산맥을 통과하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린다. 싱안령산맥을 경계로 동쪽은 여진족의 만주평야, 서쪽은 몽골초원의 시작이다. 시베리아 대평원은 동쪽부터 '몽골초원, 카자흐 초원, 남러시아 초원'으로 연결된다.

대초원은 인류 역사를 뒤흔들었던 유목 기마민족 흉노족, 돌궐족, 몽골족의 활동무대이다. 싱안령산맥 지나는 도로변에서 지역주민이 파는 시베리아 야생 꿀 한 병을 샀다. 500미리 물병 야생 꿀 한 병이 우리 돈 6천 원이다. 봄철 3개월 피는 야생화에서 1년에 한 번만 채취하는 꿀이다. 와일드 베리꽃(wild berry), 야생화꽃으로 만든 꿀이다.

운전 중 뜨거운 물에 타 먹기 위해 한 병을 샀는데, 여행 중 감기에 고생할 때 꿀물은 큰 도움을 주었다. 휴게소에서 러시아식 점심을 먹는데, 검은 호밀빵 위에 야생 꿀을 한 스푼씩 얹혀준다. 온화한 맛과 향이 부드럽다. 꿀 한 스푼을 만드는데 벌이 4200번 왕복해야 한다고 한다. 오후 점심 식사 후 '벨로고르스크'로 가는 도중에 러시아 표준시간이 변경된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아내 송모 씨가 벨로고르스크를 향해 운전하고 있다. [사진=윤영선]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아내 송모 씨가 벨로고르스크를 향해 운전하고 있다. [사진=윤영선]

러시아 영토는 동서 길이가 길어 9개의 표준시간이 있는데, 서쪽으로 이동 중 수시로 시계를 풀어서 한 시간을 늦춰야 한다. 작은 영토의 국민은 상상할 수 없는 경험이다. 한 시간 뒤로 시간을 조정했기 때문에 오늘 한 시간만큼 여유시간을 번 셈이다.

오늘 목적지 벨로고르스크 200킬로 못 미쳐서 내 차의 부품인 터보의 연결부분이 빠졌다. 터보는 디젤을 엔진에서 잘 연소시키고,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갑자기 엔진에서 소리가 들리고, 계기판에 경고등이 켜지고, 시커먼 배기가스가 나온다. 운전하던 L실장이 도로 옆에 차를 세우고, 다른 두 대도 함께 멈춘다. 겨우 여행을 시작한 지 3일째 차가 고장 난 것이다.

여행 출발 전 가장 큰 걱정은 자동차가 사막, 고원 등 오지에서 고장 나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L실장은 자동차학과 출신으로 몇 가지 수리 부품을 가져왔다. 도로 옆에서 한 시간 동안 응급조치 후, 내일 정비소에 들리기로 하고 출발한다.

고장 원인은 추월할 때 시속 150, 160킬로 급가속으로 엔진에 부담이 생겼고, 주유소에서 파는 화물차용 디젤은 한국 디젤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질 나쁜 디젤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일행 중에 자동차 전문가가 한 명 있다는 점에 안도감이 든다. 시베리아 오지에서 견인용 렉카차를 무한정 기다린다면 이는 지옥이다. 미세스 송은 길가에서 한 시간 가슴 졸이며 기다리다가, 자동차가 다시 출발하는 것에 안도한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일행의 차가 고장나 일행 중 한 명이 도로 갓길에서 차를 수리하고 있다. [사진=윤영선]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일행의 차가 고장나 일행 중 한 명이 도로 갓길에서 차를 수리하고 있다. [사진=윤영선]

여행 초기부터 겸손하고 조심해야 함을 새삼 느낀다. L실장은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 등 디지털 차는 고장 나면 노상에서 수리가 어렵다. 장거리 대륙여행은 아날로그 차가 더 낫다"고 말한다. 미래 인공지능 시대의 평범한 생활인들이 부딪쳐야 하는 문제의 하나이다. 밤늦게 인구 5만 명이 사는 벨로고르스크에 도착했다.

여관방이 부족해서 2인용 방, 3인용 방 두 개를 구해서 한 방에 3명씩 숙박한다. 화물차 기사를 위한 숙소라서 허름한 시설이다. 차 고장으로 갓길에 오래 멈추고, 편도 1차선(왕복 2차선) 길도 험하고, 긴 하루를 보냈다. 미세스 송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저녁 식사에 러시아 40도 보드카 술을 반주로 먹는다. 미세스 송도 처음 먹는 독한 보드카를 몇 잔 연거푸 마시고, 곧바로 깊은 잠에 빠진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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