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승부수와 묘수 또는 악수는 모두 바둑 용어다. 수는 한자로 손(手)을 가리킨다. 바둑 판에 돌 하나를 손으로 놓는다는 의미다. 이들 용어는 상대와 경쟁하며 펼쳐야 하는 전략전술에 많이 차용된다.
승부수는 대개 싸움에서 밀리는 쪽이 결정적인 상황에서 질 것을 각오하고 던지는 전략을 가리킨다. 앞서는 쪽은 승부수를 쓸 필요가 없다. 진행되고 있는 판을 조심해서 잘 관리하기만 하면 승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승부수는 그래서 뒤집기 전략이다. 불리한 상황에서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며 쓰는 전략이다. 결과적으로 이기면 묘수가 되고 지면 악수가 된다. 같은 패배인데도 승부수의 패배를 악수라 하는 까닭은 그 후과가 큰 탓이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영풍-MBK파트너스 측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벌이는 싸움에서 최 회장 측은 처음부터 열세였다. 늘 공격하는 쪽은 영풍-MBK 연합 쪽이고 최 회장 쪽은 이를 막고 생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경영은 최 회장 일가에서 오랫동안 해왔지만 지분은 영풍-MBK 연합 쪽이 앞선 탓이다.
적당히 타협할 수 없다면 언제가는 승부수를 써야 하는 국면이 계속됐다.
승부수는 여러 차례 나왔다. 유상증자는 여러 승부수 가운데 거의 마지막일 수도 있다. 이 수가 최 회장의 사활(死活)을 결정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산다면 묘수가 되는 것이고 죽는다면 악수라는 평가를 받을 거다.
상황이 유리하지 만은 않다. 처음부터 최 회장 측이 영풍-MBK 연합 쪽에 앞섰던 단 하나는 명분이었다. 오랫동안 경영해왔고 기업을 세계 1위로 만든 공로가 충분히 인정됐다. 이 기업의 경영권을 뺏기 위해 공격하는 쪽이 착실한 기업이라기보다 자본 논리에 강한 사모펀드라는 점에서 여론은 최 회장 편이었다. 특히 MBK가 모집한 펀드 가운데 소량이지만 중국 자본도 섞였다는 점에서 더 그랬었다.
최 회장 측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장점이었던 이 불씨를 꺼뜨리면 안 됐다. 여론이 이 명분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승부수인 유상증자는 그러나 이 불씨마저 위태롭게 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동시에 유상증자 절차도 밟았던 것으로 드러나 금융감독원마저 위법성을 의심하게 했다.
공개매수와 거의 동시에 유상증자를 도모하면서 이를 밝히지 않았고, 그 일로 주가는 하한가로 폭락하고, 사실을 숨긴 이유로 위법성에 대해 조사를 받고. 이런 일은 여론의 흐름을 급격히 바꿔놨다. 건실한 기업가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설 곳이 없고,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 라는 여론이 더 높아진 듯하다. 최후의 승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만약 최종 승부에서 진다면 지고도 명예마저 잃어버리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 형국이 아닐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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