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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강제하겠다더니"…'천덕꾸러기' 종이빨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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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리썬, 11월부터 다시 플라스틱 빨대로 전환…"소비자 불만 고려"
"뚫리지 않아 못 마신다""조금만 지나도 빨대 기능 안 된다" 불만 폭주
작년 11월 규제철회 후 외면 늘어…종이빨대 생산업체 지원 유명무실

[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농심이 11월부터 자사 음료 브랜드 '카프리썬'에 제공되는 빨대를 다시 플라스틱 소재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2월 종이빨대를 적용하기 시작한 후 약 20개월 만입니다.

다시 플라스틱 빨대를 적용한 카프리썬. [사진=농심]
다시 플라스틱 빨대를 적용한 카프리썬. [사진=농심]

환경을 생각해 기껏 바꾸더니 왜 다시 플라스틱 빨대를 쓰는 걸까요. 소비자의 요구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이빨대를 적용한 후 포장지에 구멍을 내기 어렵다는 소비자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네요.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에서 카프리썬 '빨대 꽂기'에 실패한 인증 사진과 글들이 다수 올라오며 일종의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처럼 돌기도 했죠. 빨대 입구를 손가락으로 막아 내부에 공기를 채워야 한다거나, 구멍에 빨대를 대고 손으로 비벼 넣으면 된다, 뚫는다는 느낌이 아닌 끼워 넣는 감각을 살려야 한다는 등 실패 없이 빨대 꽂는 '꿀팁'까지 공유될 정도였습니다. 종이빨대 특유의 냄새와 감촉, 시간이 지날수록 눅눅해지는 현상 등에 대한 불만도 상당했습니다.

농심은 지난해 7월 종이빨대 절단면 각도를 조정하고, 같은 해 11월 표면 처리로 빨대 강도를 보완했으나 소비자 불만을 잠재우긴 역부족이었죠. 설상가상, 판매량까지 감소하기 시작하며 결국 백기를 들게 됩니다. 매년 900만 박스를 유지하던 카프리썬 판매량은 지난해 13%, 올해 3분기까지 추가로 16% 줄었습니다.

국내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가 만든 종이빨대 제품. [사진=리앤비]
국내 종이빨대 제조업체 리앤비가 만든 종이빨대 제품. [사진=리앤비]

종이빨대를 두고 딜레마에 빠진 식품기업은 농심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플라스틱 퇴출 바람이 불며 종이가 대체안으로 주목받았고, 우리 정부 역시 지난 2018년 플라스틱 빨대 등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해 나갈 것을 선언했습니다. 2021년 11월에는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둔 뒤 카페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를 포함한 음료 매장은 물론 주요 식품 회사까지 종이빨대로의 전환을 서두르기 시작합니다. 종이빨대에 대한 소비자 불만은 이때도 상당했지만, 정부가 시그널을 주는 데 따라가지 않을 수 없죠.

문제는 계도기간이 끝나는 시점인 지난해 11월 발생합니다. 정부가 돌연 입장을 선회한 겁니다. 개인카페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플리스틱 빨대 규제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무기한 연장이라니요. 업계와 소상공인들은 정부가 플라스틱 빨대 규제를 사실상 철회했다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간 플라스틱 빨대 대비 비싼 가격과 소비자 불만을 감수하며 종이빨대를 도입한 보람이 사라진 거죠. 자연히 농심처럼 다시 플라스틱 빨대로 복귀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개인카페의 경우 대다수가 다시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는 상황입니다. 종이빨대가 한순간에 천덕꾸러기가 된 셈입니다.

기업과 소비자도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피해자로 볼 수 있겠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종이빨대 제조업체들입니다.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하겠다는 정부 정책을 믿고 설비 투자와 생산에 박차를 가했는데, 정책이 180도 뒤집히면서 대부분 업체가 막대한 타격을 입은 상태입니다. 미리 생산해 둔 물량은 악성재고로 전락했습니다. 스타벅스 등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와 계약을 맺지 못한 중소 업체들은 폐업을 면치 못했습니다.

종이빨대 제조업체 대표 등이 지난해 11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정부가 발표한 플라스틱 빨대 규제 무기한 연기 철회와 종이빨대 제조 및 판매업체의 생존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종이빨대 제조업체 대표 등이 지난해 11월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정부가 발표한 플라스틱 빨대 규제 무기한 연기 철회와 종이빨대 제조 및 판매업체의 생존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종이빨대 업체들의 고충이 알려지자 정부는 "업계가 받을 타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주요 정책을 수정하면서 이에 따른 관련 업계의 예상 피해 범위조차 제대로 추산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뒤늦게 마련한 지원책도 유명무실하다는 것이 최근 국감에서 밝혀졌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가 마련한 △일시적 경영애로자금 △소공인 판로개척지원 △소공인 스마트제조지원 △중소·창업기업 R&D 등 4가지 지원책 중 경영애로자금 지원책에 신청한 업체 2곳을 제외하고는 신청 업체가 전무합니다. 판로개척지원 사업의 경우 판로 개척을 위한 전시회 등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바우처를 지원한다지만, 국내 종이빨대 수요가 막힌 상태에서 실효성이 낮습니다. 영세 업체가 대부분인 터라 중소·창업기업 R&D 지원 사업도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강득구 의원은 "종이빨대 생산업체 지원책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자 보여주기식 행정의 참담한 결과"라며 "이제라도 환경부가 종이빨대 생산업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정책이 무엇인지 목소리를 듣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지원대책을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정책을 실행한 뒤 대안 없이 폐기한 모습을 보여준 정부입니다. 뒤늦게 대책을 마련한다 한들, 종이빨대 업체들에게 과연 보탬이 될 수 있을까요. 아무리 봐도 막막한 그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전다윗 기자(dav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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