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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누구보다 고독할 사람,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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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이균성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감옥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들어갔던 서울구치소 1.9평 독방만이 아닐 수 있다. 그의 삶 자체가 한편으로는 창살 없는 감옥이다. 평생 그를 가둬온 감옥의 이름은 ‘호부무견자(虎父無犬子)’.

‘아비가 범인데 자식이 개일 수 없다.’는 문장은 진실도 진리도 아니다. 범이 개를 낳는 일은 없겠지만, 범 같은 아비가 개 같은 자식을 낳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아니, 사람을 범과 개에 비유하는 자체가 오류다. 비유하는 순간 그 말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그 다섯 글자 폭력의 언어는 허구에 불과하지만, 이 회장은 그것을 진리로 여겨야 했다. 세상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범에 비유했고, 그는 그 범의 후계자였다. 선대의 가업을 이어받아 더 성장시키는 게 자신 책임이어야만 했고, 그래서 그 말은 진리여야만 했으며, 그는 어떻게든 입증해야만 했다. 허구를 진리로 입증해야만 한다면 그 현실은 감옥과 다르지 않다. 이 회장은 그 감옥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고 그걸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왼쪽부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 이건희 선대회장, 이재용 회장. [사진=삼성전자]
왼쪽부터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 이건희 선대회장, 이재용 회장. [사진=삼성전자]

“제가 받아왔던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사회와 나눌 수 있는 참된 기업인으로 인정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재벌 3세로는 태어났지만 선대서 이뤄놓은 우리 회사를 오로지 제 실력과 제 노력으로 더 단단하게 더 강하게 또 가치 있게 만들어서 저 자신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꿈이었고 기업인으로서 목표였습니다.” 이 회장이 2017년 12월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한 말이다.

세상의 일이란 그러나 꼭 ‘실력’과 ‘노력’으로만 되는 건 아니다. “때를 만나서는 천하도 내 뜻과 같더니 운이 다하여 영웅도 어쩔 수 없구나.” 녹두장군 전봉준의 유시(遺詩) 일부다. 꿈꾸는 바가 클수록 결과를 가르는 건 운(運)일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이 입증하고 싶었던 바는 그런데 결국 자신의 ‘실력’이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운명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끊임없이 그의 ‘실력’을 의심한 탓이기도 하다. 닷컴 붐이 절정에 달하던 2000년 33세의 나이에 그가 창업한 인터넷 벤처 지주회사 e삼성과 e삼성인터내셔널의 처참한 실패가 원인이 됐다. 이 회장이 중심이 되고 삼성이 대대적으로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은 실패했고 뒷감당은 계열회사들이 떠맡아야 했다.

이 회장은 그럼에도 세상의 시선을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다. 일화가 있다. 2016년 구속 당시 특별검사 조사를 받기 위해 교도소 밖으로 나갈 때 사복이 아닌 수의(囚衣)을 입겠다고 자청했다. 미결수는 사복과 수의 가운데 선택을 할 수 있다. 삼성 수뇌부의 반대로 결국 사복을 입었지만, 수의를 입겠다고 자청한 것은 세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의 실력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 삼성의 정경유착에 대해 분노한 민심을 교묘히 비켜가기보다 바로 그곳에서부터 새로 출발하는 게 정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법원의 권고대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고, 이를 직접 발표하면서, 두 차례나 허리를 숙여 사과하고, 그 자리에서 4세 경영 승계는 없다고 선언한 것도 '수의 일화'와 다르지 않다. 이 모든 일은 당시 삼성 수뇌부 대부분이 반대했지만 이 회장이 결단한 것이다. 거기엔 꼼수가 없다. 세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른 방법으로 소통하려 한 것이다.

노력을 아무리 한다 해도 중과부적일 때가 있다. 이 회장의 처지가 지금 그렇게 보인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고 있고 올바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만, 세상은 다시 그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금 상황은 2000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중하다. 그때는 실패도 용납될 만한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 벤처사업의 경우 원래 성공 확률이 낮고 실패의 경험을 오히려 자산으로 사주는 사례도 더러 있었다.

챗GPT가 촉발한 반도체 생태계의 대변혁에서 삼성이 낙오된 것은 그러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상당 기간 회복 불능의 상태가 계속될 수 있다. 아이폰이 휴대폰 생태계를 바꿔놓은 뒤 그 구도는 15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삼성이 낙오된 데는 여러 가지 세세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책임은 이 회장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회장이 특단의 대책을 통해 스스로 국면을 빠져나와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이 회장은 지금 누구보다 고독하고 외로울 듯하다. 뼈를 깎는 쇄신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사내 핵심 논의 상대마저 그 대상일 수 있고, 어쩌면 스스로가 그 대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故) 이건희 회장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요약된다. 고 이건희 회장은 범의 권위로 칼자루를 잡아도 됐지만 지금 이재용 회장은 칼자루를 제대로 잡고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이순신의 장검에는 직접 지은 시구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가 적혀 있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는 뜻이다. 이재용 회장의 마음이 그래야 한다. 규율과 팩트를 기반으로 칼을 빼 삼성 전 조직을 혁신으로 붉게 물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그 칼이 자기 자신을 찌를 수도 있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이제 전설로만 남아 현실에서 더는 도와줄 수 없는 두 마리 호랑이가 바라는 바가 그것일 테다.

*이 글은 윤춘호 SBS 논설위원이 쓴 ‘[그 사람] 이재용, 이 사람이 아버지를 이기는 길’에 많이 빚졌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이균성 기자(seren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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