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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플랫폼 규제',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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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이정일 기자] 같은 말이지만 수식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흑기사와 백기사, 하얀 거짓말과 빨간 거짓말이 그렇다. ‘플랫폼’도 마찬가지다. ‘토종 플랫폼’이냐 ‘공룡 플랫폼’이냐. 같은 플랫폼이지만 전자는 ‘우리 것’이라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아무래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후자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규제해야 할 대상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신세가 지금 딱 그렇다. 어떻게 수식하느냐에 따라 이들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발단은 공정거래위원회의 플랫폼 규제다. 공정위는 플랫폼 시장에서 독과점을 막고 경쟁을 촉진한다는 목표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등을 금하는 내용이다. 대상은 네이버와 카카오, 구글과 애플 정도다. ‘경쟁 촉진’이니 ‘반경쟁 금지’니 공정위가 내세운 명분은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명분이 시장을 작동시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 규제가 유럽 디지털시장법(DMA)을 인용했다는 점에서 따져볼 게 많다. 지난 3월 시행된 DMA는 시장 지배적 플랫폼 기업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지정해 규제한다. 현재 게이트키퍼는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삼성전자 등 7곳으로 유럽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게다가 전 세계 연 매출의 최대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정도로 제재 수위가 높다.

이미 애플과 메타가 걸려들었다. 애플은 지난해 매출 3832억9000만 달러의 10%인 383억(53조원)의 벌금을 낼 위기에 놓였다, 페이스북 메타는 최대 134억 달러(약 18조 552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런 상황을 전문가들은 유럽 이기주의로 해석한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디지털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유럽은 미국으로부터 큰 무역 흑자를 얻고 있음에도 디지털 부분에서는 적자를 보고 있다는 점에서 DMA가 EU의 보호주의에서 나온 실질적인 자국 보호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법조계에서도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유럽이 DMA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자국 보호’라는 지적과 ‘돈벌이’라는 비판은 결국 이 질문을 남긴다. DMA를 인용한 정부의 플랫폼 규제가 과연 우리 시장에 적합한 것일까. 귤이 바다를 건너 탱자가 되는 ‘귤화유지’는 아닌가.

또 하나 살펴봐야 할 것은 각국의 플랫폼 정책이 ‘토종 플랫폼’ 보호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자율 규제로 선회했다. 규제 강화가 중국 플랫폼에 이득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중국도 2023년부터 자국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시작했고, 대만은 규제보다 경쟁 촉진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본 역시 ‘통신 시장 활성화를 위한 규제법’을 통해 자국 기업에 대한 간섭을 줄이는 분위기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적인 추세와 동떨어져 있다.

‘K플랫폼 규제의 딜레마’라는 제목의 최근 논문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정혜련 교수(국립경찰대학 법학과)는 논문에서 “국내 토종 기업이 미국 초거대 플랫폼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을 규제할 경우 자국 플랫폼의 성장과 혁신을 저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마존, 애플, 메타 등으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미국과 달리 네이버와 카카오는 ‘공룡’이 아니라는 게 정 교수의 진단이다.

현실이 그렇다. 검색 시장에서 네이버(53.59%)는 구글(40,58%)에 쫓기고, 메신저 시장에서 카카오는 인스타그램 메시지, 페이스북 메신저, 텔레그램에 젊은 층을 뺏기고 있다. 미국 플랫폼의 공세와 중국 플랫폼의 추격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다. 이것이 대한민국 ‘토종 플랫폼’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유럽 이기주의의 DMA를 참고해 우리 플랫폼에 기어이 족쇄를 채워야겠는가. 우리도 미국처럼 자율 규제로, 혹은 중국·일본처럼 규제 완화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정일 기자(jay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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