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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최재천 교수의 '숙론'에 귀 기울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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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이효정 기자] 동물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말을 빌어보자. 최 교수의 관점에선 최근 '숙론(熟論)'이라는 과정이 빠진 채 여러가지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결정되는 형국이다.

그는 지난 6월 초 한 라디오 방송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토론회가 모든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은 일방적인 발표라고 평가했다. 의대 증원 문제를 두고 정부와 의사, 환자가 모여 진솔하게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이 빠졌다고 했다.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 없이 결과만 내민다는 얘기다.

최 교수가 주창하는 숙론은 껄끄러울 수 있는 이해관계자들이 마주 앉아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는 것, 누가 맞느냐가 아닌 무엇이 옳은가를 따지기 위해 치열한 공방도 기꺼이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수많은 서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기반인 전셋집의 보증금을 날려버린 전세사기 해법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최 교수의 논리대로라면 최근 논의되는 '전세사기 특별법'이야말로 숙론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산물 그 자체다.

2022년 하반기부터 지뢰밭처럼 전국 여기저기서 전세 사기가 터졌다. 이후 지난해 전세 사기 특별법이 급하게 마련돼 시행됐다. 정치권에서는 정쟁으로 피해자 지원이 늦어지면 되레 부담이었기에 법을 일단 통과시키고 6개월마다 보완 입법할 수 있도록 단서 조건을 달았다.

그런데 정작 전세 사기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특별법의 효과가 크게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야당안)을 고집하며 밀어붙였고 국토교통부 등 정책 당국은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당시에 논란이 됐던 전세 사기 피해가 사회 문제인지, 피해 지원 시 보이스피싱 등 다른 사기 피해와의 형평성 등 여러 쟁점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 않았다. 야당안이 지난 5월 국회 본회의를 가까스로 넘겼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 후 21대 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그대로 폐기됐다.

이와 맞물려 국토부를 비롯한 관계 기관들은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토론회를 몇 차례 개최했다. 처음 개최된 토론회들은 야당안이 왜 안 되는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이 자리에 전세 사기 피해자는 없었다. 반대로 피해자 단체를 포함한 시민단체가 잇따라 개최하는 토론회장엔 국토부 등 당국 관계자가 없었다. 숙론의 과정이 아닌 일방적 주장만 전개된 셈이다.

국토부는 지난 5월에서야 경매 차익(감정가-낙찰가)을 활용한 정부안을 발표했다. 야당안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당장 시행하기도 어려우니 이미 시행 중인 매입임대 제도를 활용한 정부안이 그나마 현실적이란 취지였다.

정부안 역시 지난해부터 논의의 기회가 있었다면 충분히 더 빨리 나올 수 있었다. 물론 다른 현안이나 대응 이슈가 있었겠지만, 국토부 말마따나 매입임대 제도는 이미 시행 중이니,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면 진즉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나온 정부안 역시 신탁 사기, 깡통 전세 등 사각지대 지원이 부족하단 지적을 받고 있다.

그 사이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고통만 커졌다. 야당안, 정부안 한쪽이 무조건 옳을 순 없다. 피해자 단체에서도 정부안이 종전 대비 진일보한 방안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이해관계자들과 숙론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어떠한 방안을 내놓더라도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고 또 다른 부작용만 발생할 수 있다.

다행히 22대 국회 들어 여러 개정안이 발의되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야당안과 정부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국토부가 대안을 제시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피해자에 대한 논의의 물꼬도 트였다.

긴 시간이 주어진다고 논의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난 전세 사기 피해의 해결책을 위해 '숙론'에 적극 임해야 할 때다.

/이효정 기자(hyo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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