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80대 노부모에게 네남매의 양육을 떠넘기고, 이것도 모자라 자녀들의 기초생활 수급비까지 가로챈 친부에 대해 법원이 친권 일부를 박탈했다.
21일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조영민 판사는 A씨가 자신의 아들이자 손자 손녀 친부인 B씨를 상대로 낸 친권상실 및 미성년후견인 선임 청구소송에서 "B의 미성년 자녀들에 대한 친권 중 법률행위 대리권 및 재산관리권을 상실한다"고 판결했다. 또 미성년후견인으로 자녀들의 고모를 선임했다.
슬하에 5남매를 둔 B씨는 아내가 병으로 사망하자 재혼했다. 아직 철이 없었던 아이들은 계모를 '아줌마'라고 불렀고, 이를 못마땅해 한 계모는 아이들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B씨는 이를 그냥 보기만 하다가 상황이 심각해지자 경남의 한 군 소재지에 살고 있던 아버지 A씨에게 5남매 중 아직 미성년자인 4남매를 떠맡겼다. A씨 부부는 얼마 안 되는 국민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초·중·고교에 다니는 미성년 손자녀 4명이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돼 매달 현금 160만원과 쌀 40㎏을 지원받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느날 4남매 중 맏이인 여고생 딸이 기초수급비가 들어오지 않는 것을 알게 됐다. 확인 결과 아버지 B씨가 딸의 은행계좌를 폐쇄하고 자신이 만든 계좌로 기초수급비를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A씨가 지방자치단체에 지원금 중단을 요청하고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청해 B씨 상대로 소송을 냈다.
B씨는 재판 과정에서 계모의 학대 사실을 부인하는 한편, 수급비 160만원에 대해서는 A씨가 임의로 사용할까봐 인출해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은행계좌 확인 결과 B씨는 이 돈을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판부는 "비록 B가 복리실현에 현저히 반하는 방식으로 친권을 행사하거나 의도적으로 친권을 행사하지 않아 자녀들의 복리를 해치는 등 친권을 남용했다고 보기에는 자료가 부족하나 자녀들의 재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위태롭게 만들었고 그들의 복리를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서 "B의 자녀들에 대한 법률행위의 대리권과 재산관리권의 상실을 선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A씨를 대리해 소송을 수행한 공단 소속 나영현 공익법무관은 "친부모의 친권은 강하게 보호되어야 하지만, 자녀의 보호와 성장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경우 친권을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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