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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 <40> 초고령사회의 돌봄, 지방자치체는 어떻게 준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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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오카현 최남단의 오무타시는 치매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인구 10만 명이 겨우 넘는 소도시인데 고령화율은 37%를 넘는다. 의료·돌봄의 필요가 높아지는 후기고령자의 비율도 20%를 넘는 등 일본 평균에 비해 20년 가까이 고령화가 앞서 있다. 하지만 오무타시는 초고령사회의 그늘을 오히려 지역 활성화의 계기로 전환함으로써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

후쿠오카시에서 열차를 타고 오무타시를 향하는 동안 풍경은 자꾸 과거로 돌아간다. 낡은 역사, 깨진 보도 블럭사이에 무성히 자란 잡초, 교복 차림에 얼굴 가무잡잡한 어린 학생들이 타고 내리다가 도착한 오무타역. 역사 안에는 '불타는 돌'(석탄) 전시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오무타시는 원래 미쓰이그룹의 미이케, 미야하라탄광을 중심으로 번창했던 탄광도시이다.

석탄자원을 배경으로 석탄 화학 공업이 번창할 때에는 인구가 20만 명을 넘었지만 지난 1963년 미이케탄광에서 일어난 대규모 분진폭발사고와 석탄산업의 쇠퇴로 인해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역 앞에서 만난 노인들은 "여기는 죄다 노인들 뿐"이라며 웃는다. 빈 집들이 많이 보이지만 집주인들은 희망을 갖고 '임대' 또는 '매각'이라는 팻말을 걸어뒀다. 건물의 간판을 보니 우메다안과, 다카하시치과 등 상당수가 병원과 약국, 노인시설이다. 실제 오무타시 고용의 50%가 보건의료개호영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마을 전체가 고령자를 돌보면서 고용과 소비가 이뤄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오무타시는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안내를 맡은 다케시타 이치슈씨(오무타시 보건복지부 공무원)는 "지난 달에는 싱가폴 언론에서 취재를 왔다. 한국에서도 여러 번 다녀갔다"라고 전한다. 오무타시가 주목받는 것은 초고령사회의 전진 도시이면서 새로운 지역 발전모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후쿠오카현 최남단의 오무타시는 고령화율은 37%를 넘는다. 사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무타시의 미이케탄광 모습. [사진=조인케어 제공]
일본 후쿠오카현 최남단의 오무타시는 고령화율은 37%를 넘는다. 사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무타시의 미이케탄광 모습. [사진=조인케어 제공]

오무타시의 지역돌봄시스템을 설명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중심케어' (Person-Centered Care)이다. 사람중심케어는 치매나 질병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치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모델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가치와 취향에 따른 '자기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활모델이다. 1990년대 영국 브래포드대학의 톰 킷우드에 의해 시작됐으며 현재는 전 세계에서 장기요양, 치매, 돌봄의 기본적인 철학이자 윤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국, 미국, 호주 등 주요 국가들에서 장기요양 및 치매기본법에서 '사람 중심케어'를 추구해야 할 가치로 명기하고 있다.

오무타시 지역포괄지원센터장을 맡고 있는 우에하라 나오미씨는 '어디에서나' '누구나' '언제나'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만들기가 바로 시가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한다.

치매와 질환을 앓고 있는 A씨가 시설에 들어가기를 거부할 때의 사례를 소개했다. A씨가 살고 있는 집은 150년이 된 고옥이라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험해 주위 사람들이 모두 시설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이 집에서 죽겠다'는 그녀의 의지가 너무 강하다. 지역포괄지원센터의 간호사, 사회복지사등이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궁리했다.

다케시타 이치슈 씨(왼쪽)와 우에하라 나오미 씨가 오무타시의 사람중심케어 보건의료체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다케시타 이치슈 씨(왼쪽)와 우에하라 나오미 씨가 오무타시의 사람중심케어 보건의료체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인케어 제공]

한 가지 방법으로는 헬퍼(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A씨를 위한 기억북을 만드는 것이었다. 집안의 물건들을 사진으로 찍고 그녀의 기억을 글로 정리했다. 남편 물건에 대해 작업하면서 그녀는 오래전 죽은 남편의 이름을 기억해 냈고, 앨범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영양사로 일을 했던 추억을 얘기했다. 이 집에서 요리교실을 열었던 사실도 알게 됐다. 기억북을 완성하면서 그녀가 집에 가진 애착이 정리가 됐는지, A씨는 '마지막 순간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맞고 싶다'며 시설로 옮기는 것에 동의했다.

본인의 생애사,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일, 의료, 돌봄에 대한 희망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는것이 사람중심케어의 방식이다. 그룹홈에서 살고 있는 B씨의 경우는 '일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하였다. 이에 그룹홈에서는 B씨를 위해 작은 카레가게를 만들었다. 카레가게의 사장이 된 그녀는 1주일에 한 번은 직원의 도움을 받아서 입주자들에게 카레를 대접했고 점차 지역 주민들에게 카레를 팔 수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족, 서비스제공기관, 행정, 주변의 이웃들이 함께 노력하자는 것이 오무타시의 방식이다.

오무타시의 성과로 이 곳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퍼져간 '인지증배회모의훈련'을 꼽을 수 있다. 인지증배회모의훈련이란, 지역주민들이 배회하는 치매인들을 도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모의훈련이다. 매년 9월, 가상의 치매노인이 오무타시에 등장하면 시민들은 주어

진 정보를 가지고 길에서 배회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인지증케어연구회에서는 2년 380시간으로 이루어진 사람중심케어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을 만들었다. 사진은 사람중심케어인지증코디네이터 양성 과정을 거치고 있는 모습. [사진=조인케어 제공]
인지증케어연구회에서는 2년 380시간으로 이루어진 사람중심케어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을 만들었다. 사진은 사람중심케어인지증코디네이터 양성 과정을 거치고 있는 모습. [사진=조인케어 제공]

노인을 부담스럽게 여기기 보다 가족과 사회의 소중한 일원으로 껴안기 위해서는 치매, 돌봄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이해가 필요하다. 세대 교류 역시 오무타시가 힘을 기울이는 사람중심케어의 문화이다. 일본의 경우 젊은 사람들이 지역에 남거나 3세대 동거가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조부모의 이상행동들을 보게 된다. 초등 4년생인 시로이치군은 저녁 식사때마다 밥을 앞치마에 숨겨서 몰래 주먹밥을 만들거나, 한 밤중에 자기의 방에 불쑥 들어와 잠을 깨우는 할머니의 행동에 화내지 않는다.

그는 "할머니가 제 나이였을 때 전쟁이 났고 그때 밤마다 공습사이렌이 울리면 온 가족이 방공호에 피신을 해야 했대요. 그래서 주먹밥을 만들어 두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지금 전쟁이 일어났던 때로 돌아갔다고 들었어요. 그러니까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은 가족을 걱정하고 지키려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고 설명한다.

초등학교에서 치매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령자들의 행동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치매에 걸려도 사람은 고유한 인격체라는 점을 깨닫게 될 때 장애인과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몸에 익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사람중심케어의 문화는 가족 또는 지역사회가 치매 및 장애노인을 돌보는 것을 보다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오무타시가 사람중심케어 이념을 바탕으로 지역기반의 돌봄 지원 시스템을 만들게 된 것은 2000년 개호보험시범사업이 도입되면서부터이다. 당시, 오무타시의 개호담당자와 개호사업자 등이 모여서 '오무타시 개호서비스사업자협의회'가 만들어졌다. 사업자간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교류 및 서비스의 질 향상을 꾀했다.

마침 덴마크에서 사람중심케어를 공부한 오오타니 루리코씨가 인지증케어연구회를 만들면서 네트워크가 커졌다. 치매노인에 대한 낙인, 배제를 없애고 이들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것, 이들이 인생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지역에서 자립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민관의 협력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서의 민관협력이란 관에서 소집하는 민관협력이 아니라, 민간이 주도하고 관이 뒷받침하는 민관협력이다.

인지증케어연구회에서는 2년 380시간으로 이루어진 사람중심케어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을 만들었다. 사진은 사람중심케어인지증코디네이터 양성 과정을 거치고 있는 모습. [사진=조인케어 제공]
인지증케어연구회에서는 2년 380시간으로 이루어진 사람중심케어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을 만들었다. 사진은 사람중심케어인지증코디네이터 양성 과정을 거치고 있는 모습. [사진=조인케어 제공]

예를 들어 인지증케어연구회에서는 2년 380시간으로 이루어진 사람중심케어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을 만들었는데, 오무타시에서는 시내의 모든 시설들이 이 교육과정을 이수한 코디네이터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매년 20여 명이 교육에 참가하고 있으며 이때까지 배출한 코디네이터만도 수백 명에 이른다.

이날 필자를 안내한 공무원이나 지역포괄센터장 역시 모두 이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인지증라이프서포트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우메자키 유우키씨는 "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개호복지사, 사회복지사들이 코디네이터과정을 함께 공부하면서 서로 동지가 됩니다. 장기요양 현장에는 고유의 문화가 있어서 혼자서 잘 하려고 해도 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념을 공유하고 서로 자극을 주는 동지가 필요합니다"고 설명한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70대 중반인 그녀는 혼자 사는 90대 노인의 말벗이 되기 위해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오무타시에서 살아서 참 다행이에요. 치매에 걸려도 모두 나를 잘 돌봐줄 테니까요."

오무타시의 고령화율이 인구 10만 명 이상 도시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고 하지만 37%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경북 의성이 40%를 넘어서는 등 지역의 고령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고있다. 시설을 만들고,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더 많은 복지예산을 사용하는 것보다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는 돌봄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해 보인다.

◇김동선 조인케어 대표/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초빙대우교수는 30대에 초고령국가 일본에서 처음 노인문제를 접한 뒤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노인문제전문가로 나섰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을 썼으며 연령주의, 치매케어등을 연구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 현장을 만들기 위해 '사람중심케어실천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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