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주요 식품 기업들이 가격 인상 계획을 줄줄이 철회하고 있다. 물가 안정에 동참하라는 정부 압박이 연일 이어지자 눈치 보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먹거리 물가를 잡겠다는 정부 의지가 확고한 만큼 당분간 주요 식품 가격은 현 상태와 엇비슷하게 유지될 전망이다.
하지만 가격인상 요인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여서 언제든 억눌렸던 가격이 한꺼번에 급등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3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오뚜기는 내달 1일부터 '3분카레' 등 카레 제품과 '케첲' 등 소스 제품 등 총 24종의 편의점 가격을 올리기로했다가, 인상 계획이 알려진 지 한나절 만에 철회했다.

최근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한 식품 기업은 오뚜기만이 아니다. 풀무원은 초코그래놀라, 요거톡스타볼, 요거톡초코 필로우 등 요거트 3종의 편의점 가격을 각각 100원씩 올리려던 계획을 거둬들였다. 롯데웰푸드도 햄 제품인 빅팜의 편의점 가격을 기존 2000원에서 2200원으로 10% 인상할 방침이었으나 취소했다.
이들 기업들은 표면적으로 "어려운 경제 환경 상황에서 민생 안정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냈지만, 업계에서는 연일 이어지는 정부 압박에 부담을 느껴 눈치 보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정부는 치솟는 물가를 잡겠다며 식품업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연일 높여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기존 농축산물과 외식 메뉴 19개 품목에 더해 우유·빵·라면·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 9개 품목의 물가 관리 전담자를 추가 지정하고 가격을 수시로 확인하기로 했다. 이른바 '빵 서기관', '라면 사무관' 등을 둬 물가 가중치가 높고 소비자 체감도가 큰 가공식품을 특별 관리한다는 취지다.
정부 관계자들이 주요 식품 기업들을 직접 찾아 물가 안정 정책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잦아졌다. 지난 15일 라면 업계 1위 농심을 방문한 이후 삼양식품, 동서식품, 롯데칠성음료 등을 찾아 물가 안정을 위한 제품 인상 가격 인상 자제 등을 요청했다. 지난 28일에도 정부 관계자들은 빙그레, CJ프레시웨이, 하림 등 식품 기업을 잇따라 방문해 가격 안정을 당부했다.
하지만 식품업계의 이러한 가격 동결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는 정부 압박에 위축되는 모양새지만, 원가 압박 등 근본적 인상 요인이 사라지지 않은 한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억눌린 가격이 한꺼번에 폭등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도 생활에 밀접한 52개 품목에 담당 공무원을 붙여 가격을 통제했었다. 당시에도 일시적으로 물가가 안정되는 듯했지만, 시행 3년 뒤 해당 품목들의 물가지수는 20.42% 올라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상승률(12%)을 훨씬 앞질렀다"고 지적했다.
서용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개별 품목까지 가격을 조정하려는 건 과하다. 불가능하고, 부작용도 크다. 슈링크플레이션 등 최근 식품업계에 만연한 꼼수들 역시 이런 과한 처사로 인해 생긴 부작용이라고 본다"며 "차라리 서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특정 품목들의 가격 동향을 정부가 계속 모니터링하며 발표하는 방향이 낫다. 사회적 압력으로 기업들이 스스로 적정 가격을 찾아가게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으론 식품기업 스스로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기업 탐욕에 의한 물가 상승)'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는 시장 경제 원칙에 맞게 물가를 조정해야 한다. 강제적인 압박은 잘못됐다. 반드시 큰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다만 식품 기업들 역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3.5% 수준에서 인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격탄력성이 낮은 식품 가격을 원재료 상승률보다 더 크게 높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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