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을 취재하는 김서온 기자가 현장에서 부닥친 생생한 내용을 요약(summary)해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지하철 4호선과 2호선이 지나는 서울 대표 환승 메카 사당역을 지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때는 2년 전인 2021년입니다. 일을 마치고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는데요, 제가 타고 얼마 되지 않아 교복을 입은 고1~2학년쯤 돼 보이는 남학생 4명이 탑승했습니다.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에 귀엽고 발랄한 모습이 저의 이목을 집중시켰고요. 제 앞좌석에 앉은 터라 아이들의 이야길 듣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 같았습니다. 서울로 수학여행을 오면 자유시간도 준다고 하네요.
제가 아직도 이들을 기억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사당고가차도를 타면 2개 동 규모, 맨 꼭대기에 우주선 모양의 조형물이 있는 한 주상복합아파트를 지나게 되는데요, 갑자기 무리 중 한 학생이 이 아파트를 보더니 큰 소리로 나머지 3명의 친구에게 "저 아파트 좀 봐"라고 가리키자 나머지 3명의 학생도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연신 "우와~!" 하고 감탄을 쏟아냈습니다.
고가도로가 끝날 때쯤이면 구축 래미안 아파트가 왼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탄식을 쏟아내던 4명의 시선이 이 아파트로 옮겨갔네요. "저 아파트도 좋아 보인다", "저런 데는 얼마 할까?", "10억은 넘지 않을까?" 등 쉴 새 없이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부동산 스몰톡'이 이어졌습니다. 평범한 외관을 갖춘 래미안 단지에도 놀라는 것을 보고 "지방에도 화려한 외관의 아파트가 많은데, 그 정도인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저 조잘조잘 대화가 귀엽게만 느껴졌습니다.
학생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던 그 아파트는 지난달 전용 103㎡가 17억1천만원(5층)에 중개 거래됐습니다. 2년 전 당시엔 동일면적대 매물이 17억원(2층), 19억8천만원(21층)에 팔렸습니다. 10억으로는 매입이 어렵습니다. 현재 호가는 19억8천만원~20억원대에 책정돼 시장에 나와 있습니다. 2년 새 매매가의 큰 변화는 없었지만, 20억짜리 매물이 조만간 새 주인을 찾게 된면 2년 전 신고가를 경신하게 됩니다.
사당역 주상복합에서부터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한 친구가 나머지에 "우리도 나중에 돈 벌어서 저런 아파트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마침 그 친구들을 버스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쯤 민주노동연구원이 흥미롭지만, 썩 유쾌하진 않은 보고서를 하나 냈습니다. 그 친구의 질문에 참고 답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지난 2021년 10월 민주노동연구원은 가구주 성별 저축가능액으로 서울아파트를 매입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산출했습니다.
'가구주 성별·종사상지위별 소득 및 재무상태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가구는 지난 2020년 12월 당시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10억4천299만원)를 모으려면 같은 해 기준 저축가능액(2천427만원)을 43년간 꼬박 모아야 했고, 여성 가구의 경우는 저축가능액(969만원)을 107.6년간 모아야 가능하네요.
지역을 넓히고 기준을 낮춰 지난 2020년 12월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6억4천216만원)을 모으기 위한 소요 기간을 계산해 보면, 남성 가구는 26.5년으로 은퇴 전까지 꾸준히 저축하면 수도권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성 가구는 수도권 아파트로 기준을 낮춰도 66.2년이 필요하네요. 물론 부부가 맞벌이로 힘을 더하고, 저축액을 늘린다면 기간을 더 단축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요즘 갓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은 얼마나 돈을 버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15~29세) 부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10명 중 6명 이상은 첫 월급으로 200만원 미만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부동산 침체기에도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난 2021년 10억원에서 올해 12억원으로 2년 새 2억이 올랐습니다. 첫 월급으로 200만원 미만을 받는 청년은 2년 전 10명 중 7명이었다면, 2년 후인 현재는 10명 중 6명으로 고작 1명이 더 줄어든 셈이네요.
물론 물려받을 수십억원대 이상의 아파트가 있는 혹은 살 수 있는 소위 금수저 집안일 수도 있고, (합법적인 바운더리 안에서) 일찍이 자수성가해 수십억원대의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는 부를 쌓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통계, 평균적인 월급과 직장인으로서는 2년 전이나 2년 후나 평균 매매가격 기준 서울 아파트 마련을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참을 서울 아파트에 감탄하며 제 귀와 눈을 사로잡았던 4명의 10대 소년은 저와 같은 곳에 내렸는데요, "여기 꼭 오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이 한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지켜봤더니 피규어와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지인 국제전자센터 회전문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뛰었던 것입니다.
불현듯 떠오른 민주노동연구원 보고서와 웬만한 서울 아파트값은 외우고 다녔을 때라 불과 몇 분 전엔 "벌써 학생들이 부동산 얘길 하네" 싶어 다소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는데, 신나게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조이스 메이나드(Joyce Maynard)는 '좋은 집이란 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어야 한다(A good home must be made, not bought)'고 했습니다. 신축 브랜드 아파트, 깔끔하게 리모델링 된 역세권 아파트, 커튼월룩의 화려한 외관과 문주 그리고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아파트, 해외 유명 고가 가전·가구가 풀옵션으로 들어간 하이엔드 아파트 당연히 좋습니다.
'내 집 마련', '물질적 풍요'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그러나 좋은 집의 기준도, 좋은 집을 만드는 것도 모두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당역을 지나칠 때마다 떠오르는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차마 그때는 전하지 못했던 소박한 진심이 닿길 기원합니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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