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롯데하이마트가 공정거래위원회 제재에 일부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해 비상이 걸렸다. 사업 구조상 점포에 파견된 삼성, LG 등 가전업체 사원들이 타사 상품을 팔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공정위에 이어 재판부까지 제재가 합당하다고 나서자 코너에 몰린 분위기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하이마트는 서울고등법원에 공정위 시정명령을 취소할 것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가 최근 패소하자 상고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납품업체 판촉사원의 상품 판매 행위 등과 관련해 법원의 판단을 좀 더 받아 보고 싶다는 판단에서다.
롯데하이마트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제기한 문제점들에 대해 대부분 이미 시정 조치는 완료했다"면서도 "상고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억울(?)한 롯데하이마트…"납품업자들 이익에도 부합"
앞서 공정위는 지난 2020년 12월 롯데하이마트가 납품업체로부터 160억원을 부당하게 받아 지점 회식비 등으로 쓴 점을 두고 제재했다. 1만5천여 명에 이르는 납품업체 종업원을 데려다가 부당하게 사용한 점도 대규모유통업법(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롯데하이마트는 재발 방지 내용의 '시정 명령'과 과징금 10억원의 제재를 받았다. 다만 과징금은 납부했으나 시정명령에 대해선 시정이 가능한 부분을 제외한 일부분에 대해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 2021년 2월 4일에는 행정소송을 걸었다.
롯데하이마트는 파견된 납품업체 판촉직원의 업무 범위에 대한 공정위의 판단을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소비자가 이사, 혼수 준비 등으로 여러 제품을 한꺼번에 구매할 때 수요에 따라 다양한 브랜드의 제품을 구매하다보면 파견 납품업체 판촉 사원들이 단골 유치 및 판매 성공을 위해 자발적으로 타사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예컨대 삼성전자 파견 직원이 자사 냉장고 상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LG전자 TV를 추천, 판매하는 형식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롯데하이마트는 이번 소송에서 이 같은 행위가 납품업자가 납품하는 상품의 판매 및 관리 업무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해당 납품업자 상품의 판매촉진으로 이어져 납품업자들 이익에도 부합해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등의 입장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유통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납품업체와 계약 과정에 종업원 파견과 관련한 내용까지 넣는 경우가 흔해 납품업체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합의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전 양판점 외에 대형마트에서도 이같은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 지난 2020년 11월 롯데마트가 납품업체 종업원 부당 사용 등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행위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408억원을 부과받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대규모유통업법 12조는 파견된 종업원을 해당 납품업체가 납품하는 상품의 판매 및 관리 업무에만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단서조항으로 종업원 파견에 따른 예상 이익과 비용의 내역 및 산출 근거를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작성한 서면에 따라 파견 요청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공정위 편 들어준 재판부…"대규모유통업법 위법"
이에 따라 재판부도 공정위의 편을 들었다. 대규모유통업법 제12조 제1항 단서의 예외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해당 단서는 납품업자와 사전에 서면으로 파견조건에 관한 약정을 맺어야 하고, 파견받은 종업원을 해당 종업원을 고용한 납품업자가 납품하는 상품의 판매 및 관리 업무에 종사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의 종업원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대규모유통업법 제12조 취지에 비추어 볼 때 같은 조 제1항 단서의 예외적 허용 요건을 함부로 확장 해석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파견 종업원들의 교차판매는 개별 납품업자의 이익보다는 롯데하이마트 입장에서의 편익이나 판매 효율성에 더 치중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이어 "제휴서비스는 납품업자와 무관하게 롯데하이마트가 제휴사와 체결한 약정에 따라 취급하는 업무이고 이에 따른 수수료 수입도 롯데하이마트가 취득하고 있다"며 "이 제휴서비스를 (롯데하이마트의 주장처럼) 납품업자가 납품한 상품의 판매 및 관리 업무에 속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대규모유통업법 제12조 제1항 단서의 예외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파견 종업원에게 광범위하게 그러한 업무에 종사하도록 하는 것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롯데하이마트의 편익이나 판매 효율성 제고를 위해 개별 납품업자 또는 종업원의 이익이 희생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더불어 설령 매장에서의 상품판매 현실에 비춰 교차판매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교차판매 범위에 부합하는 공동파견의 형식을 취하거나 사전에 납품업자들로부터 그러한 파견조건에 대한 자발적인 요청이나 동의를 받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 LG 등 가전업체들에 대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지 않다는 롯데하이마트의 주장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가전제품 시장 및 가전 양판점 시장에서의 점유율, 자금력, 운영규모, 소비자 브랜드 인지도, 소비자 집객률, 오프라인 시장 점유율, 거래의존도, 영향력, 유통시장의 구조 측면 등을 고려할 때 롯데하이마트가 우월적 지위에 있다고 봤다.
이 외에 재판부는 롯데하이마트가 판매장려금을 납품업자들로부터 부당 수취한 행위와 납품업자들을 상대로 물류대행 수수료를 소급해 인상한 행위에 대해서도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볼 수 없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재판부의 결정에 공정위는 환영했다. 또 판결 내용을 분석해 향후 제기될 수 있는 대법원 상고심에도 적극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대규모유통업자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것"이라며 "납품업자와 사전에 서면으로 약정하지 않은 종업원의 부당 사용행위와 판매장려금 부당 수취 행위 및 물류대행 수수료 단가 인상분 소급 적용행위는 위법하다고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롯데하이마트 제재에 업계도 '비상'…매출 타격 우려 커
다만 일부 가전 제조업체들은 가전 양판점 운영 구조상 롯데하이마트의 이같은 움직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들이 어떤 제품을 사고 싶어하는 지 점포에 있는 직원들 입장에선 모를 수 있다"며 "방문 고객에게 A사 파견직원이 붙을 지, B사 파견직원이 붙을 지 현장에서 바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A사 직원이 A사 제품만 설명하고 판매하려고 하는 행동은 B사 제품을 구입하려던 고객 입장에선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객이 원치 않는 제품을 직원이 권유하고 설명하게 되면 결국 구매로 연결되지 못해 가전 양판점-제조사-고객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제조사들 역시 서로 제품을 권하고 판매함으로써 같이 매출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손해볼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롯데하이마트도 회사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타사 상품 판매까지 모두 위법으로 간주한 부분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또 법원이 공정위의 손을 들어주면서 가전 양판점 업계 내 타격도 앞으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각 업체별 정직원과 납품업체 종업원 비중이 롯데하이마트가 4대 6, 전자랜드가 6대 4 정도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가 업계 1위 업체를 대상으로만 관련 조사를 벌이면서 이번에 롯데하이마트만 제재를 받게 됐지만 다른 업체들의 운영 구조도 이와 비슷하다"며 "롯데하이마트의 행정소송 결과가 좋지 않아 다른 가전 양판점들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사, 혼수 준비 고객들은 여러 제품을 한꺼번에 구매할 때 자신이 원하는 것에 따라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구매할 경우가 많다"며 "이를 허용하지 않으면 여러 제품을 한 꺼번에 팔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 가전 양판점들이 매출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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