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강지용 기자] 최근 차량용 반도체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로 꼽히는 인텔의 생산 공장을 찾았다. 자동차가 '달리는 컴퓨터'로 진화함에 따라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의 수요가 매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글로벌 주요 시장의 반도체 기술력을 살피고,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다각적인 대응 시나리오를 모색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10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정 회장은 7일(현지시간) 아일랜드 킬데어주 레익슬립에 위치한 인텔의 유럽 내 핵심 기지인 아일랜드 캠퍼스에서 앤 마리 홈즈 인텔 총괄 부사장의 안내를 받으며 '팹24'의 '14나노 핀펫' 공정을 둘러봤다.
'핀펫'은 정보처리 속도와 소비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해 반도체 소자를 3차원 입체구조로 만든 시스템 반도체 기술을 말한다. 팹24에서는 이 기술을 활용해 현대자동차의 표준형 5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제네시스 G90, 기아 EV9의 첨단운전자지원시스템(ADAS)에 탑재되는 CPU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다.
특히 이날 정 회장은 인텔의 팹 운영 현황을 365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원격 운영센터(ROC, Remote Operation Center)에서 인텔의 반도체 생산 및 공급망 관리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ROC는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의 현황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흐름을 직간접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주요 시설이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최근 행보를 두고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가 전기차를 비롯해 자율주행차,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 기반 차량) 등 미래 모빌리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메인 부품이기 때문에 주도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준비로 보고 있다. 요동치고 있는 글로벌 주요 시장의 동향을 현지에서 파악하고, 차량용 반도체의 원활한 수급을 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지난해까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불안 등에 발목이 잡혀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반도체 하나로 글로벌 자동차 생산이 마비됐던 만큼, 협력사의 공급망을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도 생긴 것이다.
2030년 차량용 반도체는 서버·모바일과 함께 3대 반도체 수요처로 올라설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차량용 반도체 매출 규모가 올해 760억2천700만 달러(약 100조2천억원)에서 2028년 1천298억3천500만 달러(약 171조1천200억원)로 커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회장은 올해 초부터 그룹 내 반도체 경쟁력 강화 필요성에 대해 피력해 왔다. 지난 1월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방식 신년회에서 "현재 자동차에 200~300개가량의 반도체 칩이 들어 있다면 레벨4 자율주행 단계에서는 2천개의 반도체 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며 차량용 반도체와 그룹 내 관련 기술 내재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최근 차량용 반도체 스타트업인 보스반도체에 20억원 규모의 후속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지난 6월에는 삼성전자와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손을 맞잡았다. 삼성전자는 현대차 차량에 프리미엄 인포테인먼트(IVI, In-Vehicle Infotainment)용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오토(Exynos Auto) V920'을 공급하기로 했다. 미래차를 위한 첨단 기술인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협력한 것은 처음이다.
이전까지 삼성과 현대차는 과거 수직계열화 시기 현대의 반도체 산업,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 등으로 경쟁 관계였다. 이 탓에 차량 부품업체 하만으로부터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카오디오를 공급받았던 현대차는 삼성전자가 2017년 하만을 인수하자 협력사를 LG전자, 보스(BOSE) 등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2021년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에 디지털 사이드미러용 OLED를 삼성전자가 공급한 것이 협력의 단초가 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들과의 다각적인 협력을 통한 공급망 다변화뿐만 아니라 미래 모빌리티에 적용될 고성능 차량용 반도체 개발 및 기술 역량 내재화를 그룹 차원에서 적극 추진하고 있다"며 "시스템 및 전력 반도체의 핵심 기술을 조기에 내재화해 해당 역량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차세대 고성능 반도체 분야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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