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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反카르텔 정부와 과학기술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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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연구개발(R&D)사업을 '이권 카르텔'로 규정했다. 지난달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의 보고를 받은 뒤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면서다.

지난 4일 열린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도 '이권 카르텔 타파'를 언급하며 "과학기술 혁신을 가로막는 정부 R&D 나눠먹기 등 기득권 세력의 부당 이득을 제로 베이스에서 검토해 낱낱이 걷어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년도 R&D 예산안은 작성시한인 6월30일을 넘겨 전면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윤 대통령은 신임 차관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에서는 "우리 정부는 반(反)카르텔 정부"라며 “약탈적인 이권 카르텔을 발견하면 과감하게 맞서 싸워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일련의 발언을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과기부와 과학기술계 전체를 국가연구개발예산을 나눠먹는 카르텔로 인식한 듯싶다.

과학기술계는 폭탄을 맞은 분위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대상으로 지목돼 곤욕을 치러야 했던 공공연구기관들도 '카르텔'이라는 새로운 혐의에 망연자실한 표정이다.

카르텔은 경제용어다. 소수의 이익집단이 담합해 가격을 조정하거나 다른 사업자의 진입을 막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카르텔을 적발하고 시장이 공정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할 일이다. 소수 기득권의 불공정 행위를 막는다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문제는 사전적 의미로든 발언의 취지를 넒게 해석하든 과학기술계에 카르텔이라 부를 만한 일이 있는지 여부이지만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과학기술계의 혁신을 위한 키워드로 이해해도 본질을 너무 왜곡한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척결한다며 애먼 '일타강사'를 드잡는 일이 과학계에서도 벌어질까?

윤 대통령은 R&D 카르텔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31조 R&D 예산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한다"고 했다. 대통령의 발언에 이어 감사원이 착수한 '국가연구개발사업 과제선정 및 관리실태' 감사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R&D예산을 많이 쓰는 모든 부처의 연구관리기관 전체가 대상으로 올랐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국가연구개발사업 전체를 카르텔로 지목한 셈이다.

과학기술정책은 어렵다. 윤 정부가 3대 개혁 대상으로 정한 노동, 교육, 연금 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루기 어렵기로는 그에 못지 않다는 것은 여러 정부의 정책실패에서도 방증된다. 국민의 혈세를 투입한다는 '공공성'에 세계적인 연구성과를 요구하는 '수월성'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책은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만큼 양면적이다. 과학기술투자에는 돈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격려를 받다가도, 쓸 데 없는 연구에 내 세금이 줄줄 새고 있다는 비난을 한 몸에 받는 곳이 과학기술계다. 수월성을 너무 강조하면 보편성이 희생되고, 경제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면 기초과학자들의 설 곳이 사라진다. 그래서 전문가들이 이를 잘 '나누는' 일이 R&D 예산 배분·조정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이런 양면성은 드러난다.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로는 "효과 분석 없이 추진된 예산, 돈을 썼는데 아무런 효과도 나타나지 않는, 왜 썼는지 모르는 그런 예산들"을 지목했다. 하지만 바로 이어서 투자를 집중할 분야를 이야기할 때는 "단기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과감한 투자를 추진하고, 책임자에 권한과 독립성을 부여하고, 성공 가능성에 구애받지 않고, 과감한 도전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추상적 구호로 정책을 설명하면 이렇게 모순되는 이야기를 동시에 할 수 밖에 없는 게 과학기술정책의 어려움이다. 자칫 '내로남불'이 되기 십상이다.

병든 곳이 있으면 정확한 진단에 의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연구부정은 처벌하면 되고 연구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무엇이 카르텔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과학계 전체를 카르텔로 몰아세워서는 얻을 게 없다.

신임 조성경 과기부 1차관은 취임 인사말에서 "단순히 제도를 조금 고치고 예산을 조정하는 것으로 이 엄중한 시기를 넘어설 순 없다. 혁신을 넘어 혁명적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용기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빼 든 칼이 병든 곳만 깔끔하게 도려낼 수 있기를 바란다.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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