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삼성전자는 지난해 버추얼 아바타인 '지누스마스(G·NUSMAS)'라는 캐릭터를 공개했다. 우주에서 지구로 불시착한 외계인이라는 설정이다.
'지누스마스'란 이름은 삼성(SAMSUNG)의 영문 철자를 거꾸로 나열한 것이다. 지누스마스의 출신지로 소개되는 '나우어스 129' 행성은 삼성전자 본사 주소인 경기 수원시 삼성로 129에서 따왔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나선 것은 그동안 혁신 신제품을 선보일 때마다 네티즌 사이에서 "외계인을 납치해서 개발했다"는 유머가 회자되는 것에서 착안했다. 그 만큼 삼성전자가 혁신적인 제품을 많이 쏟아냈다는 외부의 평가가 녹아든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주요 제품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 1위' 품목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해 왔다. 삼성전자가 개발하고 생산하는 제품 중 10여 개가 세계 시장에서 1위를 달성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품목이 D램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지난 1974년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9년이 지나고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가 1983년 2월 이병철 선대회장의 이른바 '도쿄 선언' 이후 180도 달라졌다. 주위에서 '무모한 도전'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삼성전자는 그해 연말에 세계에서 3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하며 기술력을 과시했다. 1992년에는 세계 최초로 64M D램을 개발하며 삼성전자의 '메모리 천하'의 서막을 알리게 됐다. 이 때부터 삼성전자는 D램 시장에서 세계 1위 자리를 거의 놓치지 않고 있다. 메모리의 또 다른 축인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도 2002년부터 1위 자리를 유지 중이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잇따라 '세계 최초' 기록을 갈아치우는 모습을 보고 업계에선 외계인 직원이 주로 반도체 분야에 근무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내놨다. 폴더블폰 '갤럭시 폴드' 역시 외계인 비유가 나오긴 했지만, 반도체에서 획기적인 기술이 더 많이 나왔다는 점을 대체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삼성전자 반도체는 최근 들어 시장 변화에 잘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최근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는 DDR5 D램 시장뿐 아니라 초거대 인공지능(AI) 모델과 같은 초성능 컴퓨팅에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 제품군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SK하이닉스는 일찌감치 DDR5 시장에서 높은 수율을 조기 달성하면서 현재 서버용 DDR5 D램 대부분을 사실상 공급하고 있다. HBM3 제품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 기업 중 유일하게 대량 양산하고 있는 탓에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면서 시장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에서 50%를 차지하며 1위에 올랐고, 올해는 점유율이 53%로 늘어나며 2위인 삼성전자와 격차를 더 벌릴 것으로 예상됐다.
늘 초격차 기술을 앞세워 '세계 최초', '세계 1위'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에서 어느 순간 '퍼스트 무버'가 아닌 '패스트 팔로워'로 내려 앉은 분위기다. 오너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반도체 사업 확장을 위해 적극 지원한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리더십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이 탓에 반도체 사업부 내에선 지난해 초부터 잡음도 많이 노출되고 있다. '갤럭시S22' 시리즈에 탑재됐던 모바일 AP '엑시노스'의 성능 논란이 일었고, 이후 지난해 6월 반도체 선행기술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조직인 반도체연구소를 중심으로 갑작스런 인사가 단행되기도 했다. 그 해 3분기부터는 '반도체 한파'까지 닥치면서 실적이 고꾸라졌고, 결국 삼성전자 DS부문은 올해 1분기에 4조5천81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최근 '7월 조기 인사설'이 업계에서 돌고 있는 것도 이 영향이 컸다. 삼성전자 출신을 중심으로 중국에 반도체 기술 유출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도 곱씹어 볼 일이다.
혁신이 곧 생존 조건인 환경에서 "외계인을 데려왔다"는 평가는 한낱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푸른 달빛 배경에 하늘을 나는 자전거가 등장했던 영화 'E.T'에 전 세계가 열광했던 것처럼 삼성전자도 그간 보여줬던 '독보적인 혁신' 덕분에 시장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젠 마케팅용으로 외계인을 등장시키는 데 치중할 것이 아니라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연구개발(R&D)과 이를 제품으로 구현한 노력을 다시 보여줄 때다. 리더십 재건을 통해 외계인 같은 존재감을 반도체 시장에서 다시 한 번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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