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2분기에는 정말 반등할 수 있을까요?"
최근 만난 국내 한 반도체 기업 직원은 이 말을 내뱉으며 연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글로벌 반도체 불황으로 각 기업들이 1분기에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데다, 이 영향으로 성과급은커녕 지난해보다 임금인상률도 크게 낮아지고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4조5천8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1년 전(8조4천500억원)과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무려 13조원이 증발하며 적자 전환했다. 반도체 부문에서 분기 적자를 낸 것은 2009년 1분기(7천100억원 적자) 이후 14년 만이다.
매출도 13조7천300억원으로 전년 동기(26조8천700억원)의 절반에 불과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반도체 수요가 감소하면서 제품 가격이 급락한 영향이 컸다.
실제 반도체 가격은 공급 과잉 여파로 원가에 가까운 수준이 됐다. 지난 2021년 9월까지 4.1달러를 유지하던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 1Gx8) 가격은 1월부터 평균 1.81달러로 떨어졌다. 낸드플래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의 평균 고정거래가격도 2021년 7월 4.81달러에서 지난달 3.93달러로 하락했다.
반도체 가격 동향지표인 DXI 지수도 불안한 모습이다. 전월 대비 ▲1월 5% 하락 ▲2월 6.9% 하락 ▲3월 7.7% 하락 등으로 감소폭은 점차 커지고 있다. 반도체 재고는 적정치(4주)의 4배에 육박한 15주 이상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수요 부진, 재고 증가, 가격 하락 등 다운 사이클 속에서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1분기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재고를 보유한 분기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반도체 쇼크'에 전체 영업익 96% ↓…SK, 사상 최악 '적자'
이 영향으로 삼성전자 전체 실적도 참담했다. 실적 버팀목이었던 반도체 사업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면서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5.5% 줄어든 6천402억원에 그쳤다.
삼성전자의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 이하로 주저앉은 것은 2009년 1분기(5천900억원)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이 때문에 LG전자(1조4천974억원)에게 영업이익으로 역전당했는데, 이는 2009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이후 처음이다. IFRS 도입 이전 상황은 양측의 집계 방식 차이로 비교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수요 둔화에 따른 출하 부진과 가격 하락 영향으로 1분기 전체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8.1% 감소한 63조7천454억원에 그쳤다. 매출액이 70조원을 넘어서지 못한 것은 2021년 2분기(63조6천700억원) 이후 처음이다.
메모리 반도체 매출 비중이 90%가 넘는 SK하이닉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26일 발표한 1분기 영업손실은 3조4천23억원에 달해 사상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1조8천984억원)까지 계산하면 반년 동안 무려 5조원의 적자를 낸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올해 1분기에만 반도체 사업에서 기록한 적자 규모는 무려 8조원에 육박한다. 일각에선 메모리 반도체 시황 회복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올해 반도체 적자 규모가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반도체 시장에 대한 전망도 '먹구름'이 잔뜩 낀 분위기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2023년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액은 5천322억 달러(한화 713조원)으로, 전년(5천996억 달러)보다 11.2%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주력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35.3% 움츠러 들 것으로 예상된다.
또 메모리 업계는 올해 과잉 생산과 재고 문제로 인해 평균 판매 가격(ASP)에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이로 인해 메모리 시장 규모는 2023년 923억 달러로 35.3% 감소할 것으로 관측됐다.
올해 D램 매출은 평년과 유사한 공급업체의 비트(bit)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최종 장비 수요 약세와 높은 재고 수준으로 인해 상당한 공급 과잉을 겪으면서 전년보다 39.4% 감소한 476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낸드 매출 역시 32.9% 감소한 389억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 탓에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IT 제품 등의 수요 위축에 메모리 제품 가격이 바닥을 치며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8월부터 8개월 연속 내리막을 걷고 있다. 올해 1분기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줄었다.
◆반도체 한파에 성과급 '0' 전망…기본급 올리기 나선 노조
이 같은 분위기로 인해 반도체 기업 직원들은 근심이 깊다. 올해 상반기까지 업황 침체가 예상되는 만큼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성과급 지급은커녕 지난해보다 연봉 인상률을 크게 낮출 것으로 전망돼서다.
이미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가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을 작년의 절반 수준인 최대 5%로 확정했다는 점에서 다른 반도체 기업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됐다.
TSMC 측은 "올해 평균 임금 인상률은 예년 평균 수준인 3~5%로 복귀했다"며 "직원별 임금 인상 폭은 성과와 직급 등 여러 조건에 따라 다르게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올해 2분기 전체 적자 가능성이 제기된 삼성전자도 이달 초 노사협의회에서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 낮아진 연봉 인상률을 책정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평균 임금을 4.1%(기본 인상률 2%·성과 인상률 2.1%) 올리겠다고 임직원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노조가 사측의 일방적인 결정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지난 21일 사측과 최종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쟁의 행위 준비 수순에 돌입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평균 연봉 인상률은 역대 최고 수준인 9%(기본 인상률 5%·성과 인상률 4%)였다.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1억3천500만원이다.
삼성전자노조는 올해 임금을 최소 6% 이상 올리거나 일시금을 보상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반면, 사측은 경영 환경이 악화된 만큼 작년보다 인상률을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는 올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적자를 낸 데 이어 2분기에는 전체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반도체 불황의 골이 예상보다 길어지는데다 2분기에는 '갤럭시S23' 출시 효과도 떨어질 것으로 판단해서다.
현재까지 2분기 삼성전자의 적자를 예상한 증권사들은 하이투자증권 1조2천860억원, SK증권 6천억원, 이베스트투자증권 4천억원, 삼성증권 2천790억원 등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시장의 전망대로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면, 이는 연결 기준 9천40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었던 2008년 4분기 이후 15년 만이다. 또 분기 실적 발표를 시작한 2000년 3분기 이후 2번째 적자 기록이다.
황민성 삼성증권 연구원은 "1분기 실적은 대규모 반도체 적자를 스마트폰이 대부분 상쇄한 가운데 디스플레이, 가전, 전장에서 소규모 이익을 낸 결과"라며 "신규 스마트폰 효과가 감소하는 2분기는 적자 가능성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만간 노조와 임금 협상을 시작할 예정인 SK하이닉스의 상황도 암담하기는 마찬가지다. 노조는 최근 사측에 임금 협상 일정 조정과 관련해 통보한 상태로, 조만간 양측은 일정 조율에 나설 예정이다.
통상 7월쯤 임금 협상이 완료되는 SK하이닉스는 기술사무직노조의 임금교섭을 위한 상견례 요청에 따라 교섭 일정을 잡고 있다. 지난해 SK하이닉스와 기술사무직노조는 연봉을 전년 대비 5.5% 올리고 추가로 월 10만원의 기준급을 정액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올해는 협상에서 진급 인상·차량유지비 신설 등을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SK하이닉스가 올 상반기에만 7조원이 넘는 적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임금 인상률 역시 지난해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또 올해 하반기 실적이 개선돼 영업손실을 만회할 수도 있지만, 현재 분위기에선 내년에 지급될 올해 성과급도 기대하기 힘든 상태라고 봤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에 분기 단위 영업적자를 냈음에도 기존보다 줄어든 수준인 연봉의 40% 수준을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에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부문 임직원에게 50%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매년 연말 월 기본급의 100%의 성과급을 지급했지만, 지난해 하반기에는 실적 악화를 이유로 성과급을 기존의 절반으로 낮췄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2~3년간 IT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임금을 올려왔지만, 올해는 경기 불황 여파로 임금 인상 속도가 대폭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대부분 경쟁사들의 연봉 등의 수준에 맞춰 임금 인상률 조정에 나선다는 점을 감안하면 각 기업들의 총연봉은 비슷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어 "최근 몇 년간 반도체 시장 호황으로 받았던 고액의 성과급도 올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악화 여파로 내년에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며 "각사 노조들이 임금 개선을 위한 차선책으로 물가상승률(5.1%)을 근거로 임금인상률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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