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강지용 기자]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이 되는 배터리의 세부 지침을 발표하면서 배터리 업계가 빠르게 손익 계산을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 업계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며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미국 측이 일본에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국의 지위를 주면서 일본산 배터리에 큰 혜택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이 미국에 우회 진출을 추진하면서 사실상 중국 측에도 보조금이 열려 미국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미국 재무부가 일본을 핵심광물 원산지 조달국에 포함시킨 것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IRA 세부 지침 발표를 불과 3일 앞두고 일본과 '핵심광물 협정'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EU 등 미국의 배터리 공급망을 한쪽에 집중하지 않고 다변화시키겠다는 전략적 의도로 풀이된다. 결국 한중일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과 FTA 체결국이라는 한국의 강점이 사라진 것이다.
가장 수혜가 예상되는 업체는 테슬라의 오랜 파트너인 파나소닉으로 분석된다. LG에너지솔루션과 파나소닉은 테슬라 납품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IRA 세부 지침 발표 전 파나소닉은 핵심 광물을 일본에서 공급받기 때문에 보조금 7천500 달러 중 절반밖에 받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이 FTA 체결국 지위가 되면서 파나소닉 배터리도 7천500 달러 보조금을 모두 받을 수 있게 됐다. 강력한 파트너 테슬라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미국 시장에서 날개를 단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도 우회하는 방식으로 미국 배터리 시장을 노리고 있다. IRA에 대응하기 위해 CATL은 배터리 기술력만 제공하고, 미국 공장 지분 100%를 현지 업체가 출자하는 방식으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중국 배터리 업체의 기술을 적용한 전기차도 IRA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포드는 지난달 13일(현지 시각) 미시간주에 35억 달러(약 4조4천647억원)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을 건설하면서 중국의 CATL과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미국 미시간 주정부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포드와 중국 CATL의 배터리 합작공장 프로젝트 관련 부지 조성에 쓰일 1억2천300만 달러(약 1천600억원) 규모의 보조금 지급을 승인했다. 이번 결정은 IRA 취지에 배치되는 것으로 중국 업체들의 우회로가 넓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테슬라도 CATL과 미국에 배터리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두 회사의 협력 조건도 포드와 비슷하게 CATL이 배터리 기술을 공유하고, 배터리 생산 법인의 지분은 100% 테슬라가 가지는 조건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CATL의 미국 우회 진출을 부쩍 경계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시장을 등에 업고 급성장한 CATL이 유럽에 이어 북미 시장까지 입지를 넓히면 세계 배터리 패권 경쟁에서 중국에 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4일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2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1위를 지켰지만, CATL이 중국 밖의 시장에서도 가파른 성장세를 유지하며 1위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ATL은 전년 동기보다 무려 79.3% 증가한 8.7GWh로 LG에너지솔루션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CATL을 비롯한 몇몇 중국 업체들은 비중국 시장에서도 높은 성장률을 보이며 중국 내수 시장을 넘어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점차 확대하고 있다"며 "특히 향후 현대차의 신형 코나 전기차 모델에 CATL 배터리가 탑재될 것으로 알려져 비중국 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김병준 전국경제인합회 회장직무대행은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전경련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공동 주최로 열린 웨비나에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한국 기업에 대한 불공평한 대우가 문제가 되고 있다"며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분야에서 한미 양국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시너지를 내고, 첨단기술, 경제동맹으로의 확장이 양국 모두에게 윈윈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지용 기자(jyk80@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