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강지용 기자] 미국 재무부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전기차 세제 혜택 관련 세부 지침을 발표했다. 앞으로 중국산 배터리 광물이나 부품을 사용한 전기차는 공제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배터리 핵심 광물 공급망에 변화가 불가피해진 가운데, 업계에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투자를 뒷받침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IRA는 전기차 구매에 대해 최대 7천500 달러(약 978만원)의 보조금을 규정하고 있다. 이 보조금을 받으려면 올해부터 배터리 핵심 광물은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최소 40% 이상 조달해야 하고, 부품은 북미 지역에서 50% 이상 생산해야 한다. 한국 업체들은 주로 중국,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에서 광물을 조달하는데 이들 지역은 미국과 FTA를 맺지 않은 곳이라 우려가 제기돼 왔다.
미국 재무부는 이번 세부지침에서 핵심 광물의 경우 추출·가공 중 한 과정에서만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미국 또는 FTA 체결국에서 창출하면 세액공제 요건을 충족한다고 규정했다. 우리 산업부는 "FTA 미체결국에서 광물을 추출했더라도 FTA 체결국에서 가공해 50% 이상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면 보조금 대상이 된다"고 분석했다. 당분간은 한국 배터리 업계가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산 광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우려국가에서 조달 불가"
이번 세부지침에는 보조금 배제 대상이 되는 '우려국가(FEOC)'에 대한 정의와 규제 방식이 담기지 않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이란 등 국가의 모든 기업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 부품은 2024년부터, 핵심 광물은 2025년부터 우려국가에서 조달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은 IRA 규정이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1차 광물인 리튬·니켈 등 주요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는 압도적으로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8대 광물 중 산화코발트·수산화코발트(83.3%), 황산망간·황산코발트(77.6%), 산화리튬·수산화리튬(81.2%), 황산니켈(59%) 등 품목에서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를 1~2년 내 중국 이외의 국가로 공급망을 재편해야 하는 상황이다.
"광물 공급망 다변화" 한국 기업 '발등에 불'
우리 기업들은 지난해 8월 미국의 IRA 시행을 전후로 광물 조달원을 호주,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미국 업체와 탄산리튬, 호주 업체와 천연 흑연 공급 계약을 맺었다. SK온은 호주·칠레 리튬 생산 기업과 잇따라 장기 공급 계약을 맺었다. 포스코홀딩스는 북미에서 생산하고자 하는 점토 리튬의 경제성 확인에 들어갔고, 호주에서 니켈광산 지분 30%를 확보했다.
또 LG화학은 국내 전지 소재 업체 중 처음으로 북미산 리튬 정광을 확보해 주목을 받았다. 미국 광산 업체 피드몬트 리튬과 총 20만톤 규모의 리튬 정광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연간 5만톤씩 4년 동안 공급받기로 했다. 리튬 약 3만톤을 추출할 수 있는 양으로 고성능 전기차 약 50만대에 들어가는 규모다.
에코프로도 계열사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을 통해 경북 포항에서 수산화리튬을 생산 중인데, 올해 증설을 시작했다. 증설이 마무리되면 에코프로이노베이션의 수산화리튬 생산능력은 연간 1만3천 톤에서 2만6천 톤으로 2배 늘어난다. 고려아연과 영풍 등도 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상용화해 리튬을 비롯한 핵심 광물을 추출하기 위한 투자를 진행 중이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미국 전자제품 폐기물 재활용업체 이그니오를 인수하기도 했다.
범정부 차원 구체적·직접적 지원 대책 시급
기업들이 전기차 배터리 주요 광물의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문제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당장 2025년까지 중국산 광물을 대체하는 공급망을 갖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정부와 논의해 단계적인 적용 등을 미국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정만기 한국무역협회 부회장은 "IRA 등을 통한 이러한 미국의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 육성 노력에 더해 EU도 핵심 원자재법(CRMA), 배터리법, 탄소 중립 산업법(NZIA) 등을 통해 역내 배터리 공급망 강화에 나서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 관련 기업들의 전략적 해외투자는 물론 우리 정부의 이 분야 기업들의 R&D와 시설투자 등에 대한 지원 노력을 한층 강화해 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 기업의 요구사항을 미국 측과 추가로 협의할 계획"이라며 "기업들이 생산·투자 세액공제 등도 활용해 수혜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위기가 배터리 업계의 체질 개선이라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원 대책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강지용 기자(jyk8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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