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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살 맞은 LG "럭키크림의 기적"…구인회 '품질경영' 덕에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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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금 300만원→연매출 190조원로 '우뚝'…'고객경영' 앞세운 구광모, 미래 성장 가속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 '럭키크림'이 불티나듯 팔렸던 지난 1948년. 당시 완벽하지 못했던 크림통 불량을 잡아내기 위해 LG그룹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회장이 직접 여공들 사이에서 불량품 선별 작업을 진행하자, 동생들은 이를 말리기 시작했다. 동생들은 "그런 거 안 골라내도 럭키크림은 불티나게 팔리니까 사장인 형님은 도매상이나 한 바퀴 돌아보고 온나"라고 말했다. 실제로 '럭키크림'은 기술도 우위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물자가 귀한 시대에 원료를 제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회사 제품이 1타스에 500원인 것에 비해 1천원인데도 날개 돋힌 듯 팔렸다.

하지만 연암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동생들에게 "보래이. 가령 100개 가운데 1개만 불량품이 섞여 있다면 다른 99개도 모두 불량품이나 마찬가진 기라. 아무거나 많이 팔면 장땡이 아니라 한 통을 팔더라도 좋은 물건 팔아서 신용 쌓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그들은 와 모르나"라고 호통쳤다.

구인회 LG 창업회장 [사진=LG그룹]
구인회 LG 창업회장 [사진=LG그룹]

품질과 관련한 연암의 당시 어록은 지금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를 비롯해 LG그룹 전 계열사에 배치된 연암의 흉상 아래에 새겨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품질경영'을 내세운 고(故) 구본무 회장은 지난 2011년 LG전자의 모든 해외법인에 연암의 말이 영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돼 전파되도록 지시했다. 덕분에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이 지난 1947년 자본금 300만원으로 직원 20명과 함께 시작한 락희화학공업은 현재 국내외 26만 명의 직원과 연매출 190조원의 글로벌 기업 LG로 성장했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이날 창립 76주년을 맞았다. LG그룹의 창립기념일이 3월 27일로 지정된 것은 지난 1995년 제3대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고 구본무 회장 때부터다. 구본무 회장은 취임과 함께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면서 창립기념일을 이 때로 정했다.

LG화학 부산 연지동 공장(앞에서 왼쪽부터 구인회 창업회장, 구평회 창업고문, 구자경 명예회장,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사진=LG그룹]
LG화학 부산 연지동 공장(앞에서 왼쪽부터 구인회 창업회장, 구평회 창업고문, 구자경 명예회장, 구자두 LB인베스트먼트 회장) [사진=LG그룹]

LG 창업주인 연암은 지난 1931년 7월 진주에서 '구인회상점'의 문을 열었다. 값을 깎아주지 않는 장사꾼으로 유명했지만, 포목의 자를 속이지 않아 고객들의 '신용'은 두터웠다.

구 회장은 포목을 비수기에 싸게 사들였다가 성수기에 비싸게 팔아 이윤을 올리며 상점을 운영했다. 1936년 대홍수 뒤의 풍작에 따른 포목 경기의 상승을 예견하고 쌀 200가마 값에 해당하는 거금 1만원을 빌려 포목을 사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후 풍년의 호경기로 포목이 잘 팔려 구 회장은 많은 이익을 남겼다.

연암이 소상인적 기업가에서 탈피해 근대적 기업가가 된 것은 지난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다. 해방의 감격과 소용돌이 속에서 연암은 재빨리 그 해 9월 부산으로 이주해 서대신동에 있는 적산가옥을 구매한 후 자리를 잡았다. 11월에는 무역업을 주로하는 조선흥업사를 설립했고, 1946년 2월에는 화장품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화장품 판매업에 성공한 연암은 크림을 직접 생산하기로 결심하고, 지난 1947년 1월 LG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해 '럭키표크림'을 생산했다. 이는 LG 역사의 시발점이 됐다.

구인회 LG 창업회장 [사진=LG전자]
구인회 LG 창업회장 [사진=LG전자]

LG는 그동안 화학·에너지, 전자·정보통신, 금융, 서비스 등 산업전반에 걸쳐 한국경제를 선도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 속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왔다. 또 불모지였던 화학산업과 전자산업을 일구어낸 개척자로도 평가받고 있다.

특히 지난 1958년 설립된 금성사는 국산 라디오와 전화기, 흑백TV, 세탁기 등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2004년에는 세계 최초로 42인치 TFT LCD를 개발하고 2006년에는 2천600mAh급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처음으로 생산했다. 올레드(OLED) TV도 LG가 보유한 '세계 최초' 목록 중 하나다. 또 플렉서블 와이어와 배터리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등 산업 역사와 함께 성장했다.

구인회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1970년 1월부터 1995년 2월까지 만 25년 동안 제2대 LG 회장으로 재임한 고 구자경 회장은 오랜 기간 현장에서 쌓은 역량과 자신감을 십분 발휘해 LG의 도약을 이끌었다.

구자경 전 LG그룹 명예회장 [사진=LG그룹]
구자경 전 LG그룹 명예회장 [사진=LG그룹]

구자경 회장은 개척정신과 연구개발이라는 두 경영이념을 진일보시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 인화단결 정신을 '인간 존중의 경영'으로 발전시켰다. 주력사업인 전자와 화학 부문은 부품소재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원천 기술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뤘다.

덕분에 구자경 회장 재임 기간 동안 LG 매출은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성장했고, 종업원은 2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증가했다.

구본무 회장은 조부 구인회 창업회장과 부친 구자경 회장이 다져놓은 사업 기반 위에 전자·화학·통신 3대 사업축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경영 혁신과 신규 사업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 2017년 말 기준 매출 160조원, 임직원수 21만여 명의 명실상부한 글로벌 LG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과감하고 집요한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은 한 발 앞서 미래를 준비하는 LG의 저력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 특히 구본무 회장이 새롭게 강조한 '일등 LG'는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지속적으로 시장을 선도해 나가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것으로 평가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 [사진=LG그룹]
구본무 LG그룹 회장 [사진=LG그룹]

현재 LG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광모 회장은 최근 '선택과 집중' 전략을 앞세워 미래 준비에 본격 나선 모습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모바일 사업에 이어 올해 태양광 사업을 정리한 대신, 로봇·전장·AI와 함께 블록체인·의료기기 등 신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2018년 취임 후 '실용주의'를 강조한 구 회장의 의중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구광모 회장은 '고객 중심 경영'에도 힘을 쏟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2019년 회장 취임 후 발표한 첫 신년사를 통해 LG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고객가치 실천'을 제시한 후 줄곧 임직원들에게 이를 강조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해 75주년 창립기념일에 사내 방송을 통해 방영된 기념 영상 '우리, LG인이었습니다'에서 "지난 75년, LG의 여정에는 늘 한결같은 고객과 우리 LG인들의 도전이 있었다"며 "앞으로도 고객과 LG의 더 가치 있는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자"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올해는 별도의 행사를 열거나 메시지를 내지 않기로 했다. 대신 LG는 2013년부터 창립기념일 행사를 대신해 4월 둘째주 금요일을 전 계열사 공동 휴무일로 지정하고, 주말까지 사흘간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해 공동 휴무일은 4월 14일이다.

재계 관계자는 "LG뿐 아니라 다른 그룹들도 각 계열사별로 창립기념일이 달라 그룹 전체에서 일괄적으로 진행하는 행사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며 "그룹 창립기념일이라고 별도로 쉬는 곳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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