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병수 기자] |주인 없는 은행? 많은 은행에서 존재하는 주인의식 |신한금융과 다른 은행들의 오너십은 비교할 수 없다 |식민 在日 설움 이겨낸 강한 결속력의 집단지도체제
![신한은행 현판 [사진=신한금융]](https://image.inews24.com/v1/5c0789682e2d2c.jpg)
보통, 은행엔 주인이 없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공공재' 발언도 이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금융업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방은행의 경우 예전엔 단일 대주주가 10%, 지금은 15%(의결권)를 가질 수 있다. 지분율이 충분하진 않지만, 오너십을 행사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주식시장에 상장한 금융회사의 지분이 잘게 쪼개져 있어서다.
옛 부산은행(현 BNK금융)은 롯데가 지배하고 있다. 현재도 BNK금융 지분 10% 안팎을 가지고 있다. 수년 전까지도 이사회에 신동빈 회장의 대리인이 대주주 자격으로 이사회에 참여했다. 경남은행도 예전엔 효성그룹의 컨트롤을 받았다. JB금융의 모태인 전북은행은 삼양사가 오너다. 삼양사는 광주은행을 인수·합병해 JB금융으로 키웠다. 최근 십수년간 JB금융 성장은 삼양사 오너의 인척인 김한 전 회장이 주도했다.
우리나라 첫 지방은행인 대구은행도 다르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도일은(一都一銀) 정책으로 성공한 대기업의 오너는 자랑스럽게 고향의 지역은행에 출자했다. 삼성생명도 4%를 넘지 않는 선에서 DGB금융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에 흡수된 옛 한미은행도 국내 대기업들과 미국 BOA(Bank of America)가 공동으로 설립한 한미 합작 은행이었다.
![신한은행 현판 [사진=신한금융]](https://image.inews24.com/v1/0a6ca42851c62f.jpg)
하나금융의 모태인 한국투자금융(短資社)도 대기업들이 만든 금융회사다. 대기업들은 한투금융이 은행으로 전환(1991년 7월)할 때도 대부분 보유 주식을 유지했다. 은행 전환 후 첫 하나은행장이 우리나라 금융의 산증인 고 윤병철(1937년~2016년 10월 14일) 씨다. 윤 행장은 1960년 농협은행(현 농협)에서 출발해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거쳐 1991년부터 하나은행장을 10년 동안 했다.
고인의 커리어를 보면 한투금융이 어떻게 국내 대기업과 연결되는지, 은행장을 장기 집권하게 됐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KEB하나은행이 쓰는 사람 모양의 로고도 고인이 채택했다. 고인이 1996년에 발간한 '하나가 없으면 둘도 없다'는 저서와 회고록 '금융은 사람이다'를 보면, 대기업의 지원을 받아 대한민국 금융인으로 한 획을 그은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고인과 함께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이끈 또 한 명의 거목이 신한은행 라응찬 회장이다. 윤 행장보다 나이는 한 살 적지만, 농협은행엔 1년 먼저 들어갔다. 대구은행을 거쳐 라 회장도 제일투자금융(단자사)에 몸을 던졌다. 제일투금은 재일교포 이희건(1917년 6월 29일~2011년 3월 21일)) 씨가 오사카흥은 이사장에 취임(1956년)한 후 우리나라에 진출한 첫 금융회사다.
이후 1982년 재일 한인들이 100% 출자해 만든 것이 신한은행이다. 우리나라의 첫 순수 민영 은행이다. 당시 이희건 회장과 함께한 재일 한인은 341명. 이 회장은 341명을 대표해 신한은행의 창업주 역할을 맡았다. 신한은행이 설립되면서 은행에 합류한 라 회장은 윤 행장과 함께 1991년부터 은행장의 길을 걸었다.
![신한은행 현판 [사진=신한금융]](https://image.inews24.com/v1/2980c15e92f700.jpg)
![신한은행 현판 [사진=신한금융]](https://image.inews24.com/v1/6b415bc48adb5a.jpg)
![신한은행 현판 [사진=신한금융]](https://image.inews24.com/v1/7925696643abcc.jpg)
신한금융은 현재 KB금융과 치열하게 1위 자리를 다투고 있다. 오너십도 국내 금융그룹 중에서 가장 선명하다. 식민시대에, 일본에 터를 잡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지배국에서 받았던 설움이 뒤엉킨,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뿌리 의식이다. 당시 교포들이 고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가방에 현찰 250억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들어와 출자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협정에도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가 분명치 않았던 시기다. 그런데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번 돈을 싸 짊어지고 나가니 일본으로선 곱게 볼 일이 아니다. 외화 밀반출 논란을 겪는 우여곡절 끝에 외교적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조용히 덮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징용으로 끌려간 한을 뒤로하고 고국에 은행을 설립해 경제 재건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동포들의 일념이 없었다면, 다른 대형은행 직원들의 눈총을 받으며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구루마(수레:일본어 잔재라는 주장과 순수 우리말이라는 주장이 맞선 단어)를 끌며 영업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금융의 오너십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게 신한은행은 우리나라 금융계에서 초록 새싹을 틔웠다.
[막전막후 글 싣는 순서]
①새 대한민국 은행 '新韓'의 재림
②다시 확인하는 오너십
③반복된 위기의 실체도 오너십
④최영휘 경질과 한동우 등판
⑤기회인가? 위기인가?(끝)
/김병수 기자(bskim@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