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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음식] 만인의 디저트 딸기, 처음엔 관상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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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김동현 기자] 본격적인 딸기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겨울과 봄을 아우르는 과일인 딸기는 이맘때가 되면 곳곳에서 축제 주인공이 되고 각종 뷔페 등에서도 딸기를 활용한 스페셜 메뉴를 등장한다. 일상에서도 이미 딸기는 와플, 케이크, 티라미수, 음료 등 다양한 디저트의 필수재료가 된 지 오래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이처럼 우리 식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딸기는 본래 식용이 아닌 관상용에 불과했다. 지금의 딸기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딸기가 아닌 18세기 초 칠레와 북미지역 딸기를 교배시켜 재배한 결과물이다. 유럽에서 식용 딸기가 대량 보급된 것은 300년도 되지 않았고 우리나라 역시 20세기 초반에서야 딸기가 보급됐다.

식용 딸기는 지난 1714년 프랑스 식물학자인 아메데 프랑수아 프레지에가 칠레 야생 딸기 종자 일부를 프랑스에 가지고 오면서 시작됐다. 프레지에는 딸기에 관한 책을 내는 등 딸기 보급에 앞장섰고 이후 다른 식물학자들의 여러 도전 끝에 50년 뒤인 1764년 최초의 식용 딸기가 탄생하게 됐다.

아메데 프랑수아 프리지에 중령.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아메데 프랑수아 프리지에 중령. [사진=네이버 지식백과]

그 때문에 프레지에는 식용 딸기의 아버지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 프레지에가 딸기 종자를 프랑스에 가져오게 된 배경은 따로 있었다. 그는 실제 식물학자가 아닌 루이 14세의 지령을 받고 칠레에 스파이로 잠입한 육군 중령이었다.

당시 칠레는 스페인 식민지였으며 스페인의 국왕은 루이 14세의 손자인 펠리페 5세였다. 루이 14세는 스페인의 왕권을 보호함으로써 스페인에 대한 자국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칠레에 식물학자 사절단으로 위장한 스파이들을 보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스파이로 잠입한 프레지에는 파견 지역에서 야생 딸기를 관찰하는 척하며 지역 군사 규모와 동향 등을 본국으로 보냈다. 프레지에의 수첩에는 딸기와 관련된 정보들이 가득했지만 주요 군사정보 역시 암호화돼 프랑스로 보내졌다. 2년간의 첩자 활동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온 프레지에는 루이 14세로부터 금화 1천 냥을 받는 등 공로를 인정받았다.

프레지에는 이후 잠입 활동을 위해 조사한 딸기에 대해 흥미를 느껴 식용 딸기 재배를 시도했고 이것이 시발점이 돼 지금의 딸기가 탄생한 것이다. 루이 14세의 정치적 목적, 프레지에의 치밀한 스파이 활동과 의외의 학구열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는 딸기를 디저트가 아닌 화분에서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동현 기자(rlaehd3657@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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