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원성윤 기자] 전혁림 미술관은 무료다.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기부로 운영된다. 미술관 관계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고인께서 관람료를 받지 말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고인은 생전에도 이익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림을 돈으로 파는 일에 무지하다시피 했다. 그저 미술에만 천착한 인물이었다.
미술관 입구 건물에서부터 그의 그림을 박아놓은 듯했다. 현대미술의 거장 전혁림(1915-2010)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서양화에 심취했다. 그의 그림은 당시에는 인정받지 못하다 예순이 넘어서야 한국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코발트 블루를 사용한 그의 그림은 무척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미술관에는 생전 고인의 그림과 더불어 하루도 물감이 마를 날이 없었던 그의 작업도 사진도 전시돼 있다.
아흔여섯의 나이로 생을 다하기까지 그는 바닥에 앉아 그림을 그리며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故 노무현 대통령이 아낀 그림으로 청와대에 걸린 '통영항'을 비롯해 '새만다라' 등 대작을 남기며 한국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 바다를 푸른색으로 수많은 작품을 완성하며 '코발트블루의 화가'라는 평을 남기게 됐다. 고인의 아들 전영근 화백 역시 아버지의 길을 따라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미술관 3층에는 전영근 화백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조국의 해방 이후 통영에서의 그의 활약도 돋보였다. 1945년 10월, 그는 시인 김춘수, 유치환, 시조시인 김상옥, 극작가 박재성, 작곡가 윤이상, 작곡가 정윤주 등 통영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화예술계청년들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창립했다. 일제 강점기에 잃어버린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회복하자는 취지였다. 걸출한 문인들과 함께야학을 통한 한글 강습과 연극 관람회, 미술 전시회 등을 개최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프랑스 니스에는 앙리 마티스의 생가와 함께 미술관이 마련 돼 있다. 고향서 그의 그림 역시 살아 숨 쉬고 있다. 해마다 관광객들이 그의 생가를 찾으며 니스가 관광 명소로 자리잡는 데 도움을 줬다. 마티스 역시 색채 마술사로 불린다. 야수파로 코발트 블루를 즐겨 썼다. 전혁림이 오버랩되는 건 과한 비교는 아닐 것이다. 그가 사랑했던 통영은 그의 그림과 함께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주말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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