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중국이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홍콩 정부가 힘을 보태고 있다. 홍콩은 그동안 반도체 무역 허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왔지만 최근 들어 중국의 반도체 자립에 발 맞춰 반도체 생산 부문의 역량을 강화하고 나선 분위기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홍콩 정부는 지난 2020년 산업구조 불균형을 개편하기 위해 '재공업화(Re-industrialization)' 전략을 발표한 후 최첨단 반도체 소재 및 장비에 대한 연구·개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홍콩 과학기술원(HKSTP)을 통해 과학 기술 혁신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이곳은 홍콩 내 규모가 가장 큰 과학기술 산업단지 중 하나로, 올해 5월 기준 반도체 기업 약 60개 사가 입주해 있다. 또 올해 2월 홍콩 내 첫 혁신 생산단지인 '첨단 제조업센터'의 건설공사를 마치고 2024년부터 윈롱 공업 단지에서 반도체 전문 제조 센터인 '마이크로 전자기술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마이크로 전자기술센터는 반도체 기술 개발, 테스트 및 시제품 생산에 집중한다. 총 면적은 3만6천㎡로, 입주 기업들을 대상으로 클린룸과 위험물 보관창고, 폐기물 처리 시설을 제공할 계획이다.
또 홍콩 정부는 지난 2020년 7월부터 홍콩 내 설립된 기업을 대상으로 스마트 생산라인 도입 또는 생산 자동화를 지원하는 보조금 제도를 도입했다. 반도체를 포함한 혁신 제조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다. 보조금 신청 기업들은 생산 과정에서 IoT, 빅데이터, 인공지능, 머신 학습 등 혁신 기술을 활용한 경우 생산라인당 최대 1천500만 홍콩 달러(약 191만 미 달러)를 지원 받고 있다.
홍콩 정부는 반도체 산업과 관련해 홍콩 미래의 혁신 과학 기술 분야의 추진 방향과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는 '홍콩 혁신 과학 기술 발전 로드맵' 발표도 예고했다. 반도체 등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첨단 생산 라인들을 더 많이 도입하겠다는 것이 내용의 핵심이다. 이 외에 중국계 미국인 과학 기술 인재를 홍콩으로 유치해 향후 10~15년간 반도체 칩의 양산 및 보급화를 촉진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홍콩이 이처럼 나선 것은 최근 중국의 반도체 자립 움직임에 발 맞춘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가속화되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고, 반도체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자 현재 반도체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지난해 반도체 산업을 국가의 '14차 5년 규획'의 전략육성 분야 중 하나로 정하고 대규모 반도체 펀드를 통해 반도체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또 미국의 견제에 맞서 중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1조 위안(약 187조원) 규모의 지원 패키지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및 연구 활동 장려를 취지로 5년에 걸쳐 역대급 규모의 재정 인센티브 패키지를 준비하고 있는 상태로, 이르면 내년 1분기쯤 시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패키지는 보조금 및 세금 공제 중심으로 구성된다. 보조금 대부분은 자국 기업으로부터 반도체 제조 장비를 구매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구매액 20%가 지원될 예정이다. 이에 따른 수혜는 베이팡화창(NAURA), 중웨이(AMEC), 선양신위안(Kingsemi) 등 대형 반도체 제조장비 회사가 누릴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1980~1990년대 홍콩은 웨이퍼 디자인에서부터 반도체 소재 생산까지 탁월하고 세계적인 반도체 생산기술 및 경쟁력을 갖췄었다"며 "그러나 1990년대부터 반도체 생산기업을 포함해 홍콩 내 공장을 보유했던 기업들이 중국 본토로 거점을 옮기며 홍콩의 반도체 산업이 점점 쇠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는 홍콩이 싱가포르처럼 아시아의 반도체 공급망에서 무역 및 유통 허브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전반적인 변화에 발맞춰 홍콩도 최첨단 반도체를 새로운 먹거리로 키워나가며 중국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움직임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콩 정부는 현지 반도체 시장과 관련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지만, 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반도체 칩 설계와 패키지 공정 등 여러 측면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또 일각에선 홍콩이 28㎚ 반도체 소재 분야에 우선 도전한 후 잠재력이 높은 차세대 반도체 또는 AI 관련 기술에 집중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홍콩 과기대학교(HKUST)는 세계 유명 대학과 공동으로 지난 2020년 '액세스(ACCESS, AI Chip Center for Emerging Smart Systems)'을 설립해 메모리 컴퓨팅, 스마트 센서 및 지능형 사물인터넷 등 AI 반도체 응용 분야를 집중 연구했다. 최근에는 홍콩 응용과학기술연구소와 함께 AI 반도체에 대한 연구개발 및 산업화를 추진하기 위한 MOU도 체결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반도체 생산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반도체 설계에서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어 홍콩에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적극 나설 가능성도 높다"며 "비교적 자유로운 IP 제도를 갖고 있는 홍콩을 통해 외국 기업의 반도체 IP 라이선스를 접할 수 있다면 중국 본토 기업의 반도체 생산 과정이 용이해지며 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서비스업을 주요 산업으로 삼아온 홍콩은 불균형적인 산업구조 개선 및 대 중국 본토 반도체 산업 지원 등을 이유로 반도체를 포함한 혁신 기술의 연구개발 분야를 다시 활성화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홍콩이 한국, 대만, 싱가포르와 같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주목 받았던 만큼 향후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더욱 높은 가치를 창출하고 성장할 지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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