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재난사고의 골든타임은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재난 상황을 즉시 알리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통신체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과거 우리나라 재난안전통신망은 경찰과 소방, 해경, 지자체 등이 각각 다른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있어 동시 통신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통신망이 일대일 소통이거나 데이터 사용이 불가능하고, 되더라도 적은 량만을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망 고도화 문제가 시급했다.
각각의 재난통신망의 위험도가 극명하게 드러난 때는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사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사고가 일어난 그 때 역시 재난안전통신망 통합화에 대한 움직임이 있었다.
다만, 이렇다할 사업계획이 없었다. 기존 테트라(TETRA) 방식의 사업이 추진되기는 했으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연거푸 탈락했다. 2010년 망 고도화에 따라 와이브로(Wibro)가 다시 물망에 오르기는 했으나 여전히 사업에 대한 예타는 풀리지 않았다.
재난안전통신망은 중요도가 크기는 하나 경제적 실효성이 낮았다. 일반 고객이 쓰고 있는 이동통신 상용망의 경우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망 고도화는 당연히 전제돼야 하는 필수 덕목이다.
하지만 재난망의 경우 경제성이 낮으니 누구도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신망과 같은 장치산업의 특성상 초기 조 단위 투자가 병행돼야 할 정도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선뜻 나서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후 우리나라는 또 한번 슬픔의 바다를 항해해야 했다. 꽃 다운 나이에 바다에서 산화할 수밖에 없었던,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은 다시 한번 추진력을 얻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기는 하나 더 이상의 아픔은 없어야 했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범정부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재난안전통신망 통합화를 이뤄야 한다는 의지에 불탔다.
미래부는 2014년 6월 재난안전통신망 기술방식 결정을 위한 정보제안서를 공개 모집했다. 이 결과 통신망 기술로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테트라’, 토종 데이터 전송 기술인 ‘와이브로’, 기술 검증과 시스템 및 단말 개발에 시의성이 탁월한 ‘LTE’가 최종 확정됐다.
3가지 표준 기술을 들여다본 미래부는 번번히 예타에서 미끄러진 테트라와 와이브로를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시장 규모가 계속해서 축소되고 있었고 기술발전 가능성이 낮다는데 발목을 잡혔다.
또한 전세계적으로 LTE 방식의 재난망이 각광받던 때였다. 관련된 네트워크 장비업체는 기존망을 거두고 신규 망을 포설하는데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LTE가 채택되기를 바랐다. 너나 할 것 없이 PS-LTE의 이점을 알리는데 총력을 다했다. 그간 소극적인 시장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데 따라 망 고도화나 유지보수면에서도 안전성을 기할 수 있게 됐다.
7월 미래부는 2개월간의 재난망 주파수 공급관련 전담 TF를 통해 PS-LTE로 기술방식을 확정했다. 700MHz 주파수 대역을 활용하기로 했다. 재난망 구축 비용으로 1조7천억원에서 2조1천억원을 예측했다. 기술방식 선정과 주파수 공급은 미래부에서,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추진은 행정안전부가 맡았다.
하지만, 당시 700MHz 대역을 두고 지상파와 이통사 갈등이 고조되면서 재난망 주파수 할당 역시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다행히 재난망의 경우 시급성 문제로 우선 분배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최종적으로 718~728MHz 주파수 대역을 업로드로, 773~783MHz 대역을 다운로드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 정부 샅바싸움-업계 대립갈등에 ‘좌불안석’
정부는 정보화전략계획(ISP) 사업자로 LG CNS를 선정하고 사업에 대한 진행상황을 공개, LTE 기반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015년초 재난망 시범 사업을 위한 이통사와 통신장비업체간 눈치싸움도 치열해졌다.
2015년 2월 정부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의 큰 틀을 확정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지역부터 시범 구축에 돌입 2017년까지 3년간 단계적 구축을 발표했다. 총 투자비용 1조7천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했다.
발표 당시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강릉과 평창, 정선에 재난망을 시범 구축하고 2016년에는 9개 시도, 2017년에는 서울, 경기 및 6대 광역시로 확장하기로 했다. 사업자 선정 역시 일괄발주 1개, 영역별 분리발주, 혼합형 분리발주 2개 업체를 선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망구축 사업자 선정방식을 두고 대립각을 세웠다. KT는 시범 사업에서는 일괄 발주를 주장했다. 본 사업에서 여러 사업자가 참여해도 늦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비해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분리 발주를 주장했다. 국가적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다양한 업체가 참여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입찰 방식에서는 부처간 갈등도 야기됐다. 국민안전처는 입찰경쟁을 통해 1, 2위 사업자를 선정해 각 지역에 배분하는 방안을, 조달청은 지역을 나눠 사업자를 선정하는 복수입찰 방식을 주장했다.
결국, 국민안전처는 진통 끝에 2015년 7월 재난망 시범사업과 관련해 제1사업(평창), 제2사업(강릉/정선), 감리용역사업 등 3개 사업으로 나뉜 긴급입찰 형태의 사전공고를 냈다. 일반 공개경쟁 입찰 후 협상에 의한 계약방식으로 사업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기술평가 90%, 가격평가 10% 등 종합평가점수로 협상적격자를 가린다. 협상적격자 중에서 종합평가 점수가 1위인 사업자가 우선협상대상자로 뽑히는 방식이다.
계획과는 다르게 시범사업자 선정은 같은해 10월까지 지연됐다. 결과는 1~2점차로 갈렸다. KT 컨소시엄의 점수는 94.7134점, 93.1655점인 SK텔레콤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LG유플러스만이 고배를 마셨다. 1사업 예산은 대략 340억 수준, 2사업은 82억1천600만원 수준으로 예측됐다.
시범사업은 성공적이었다. 2018년 1월까지 보강사업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행정안전부는 기존 로드맵을 수정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단계적으로 재난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재난망 구축시 투자되는 비용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행안부는 재난망의 목적과 경제성을 고려한 전국 통화권 확보를 위해 '올포원(All-4-one)' 전략을 앞세웠다. 전국 어디서나 4개의 솔루션을 활용해 단일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게 목표다. 기존 무선통신망의 지역별 수요 및 시급성, 노후화 등을 고려해 중부권과 남부권, 수도권 순으로 단계별 구축을 계획했다.
1단계는 2018년 세종, 대전, 충북, 충남, 강릉 등 5개 도시를, 2단계는 2019년 목표로 부산과 대구, 울산, 경북, 경남, 광주, 전북, 전남, 제주 등 9개 시도를 커버한다.
2020년에는 서울과 인천, 경기 등 3개시에 집중한다. 예산은 올해 1천228억원, 내년 3천186억원, 2020년 3천666억원, 이후 운영단계에서 9천202억원을 예상해 총 1조7천282억원을 예상했다.
2018년 8월 23일 행정안전부는 재난안전통신망 사전규격을 나라장터에 공개하고 본사업을 공고했다. 대구지하철의 아픔 이후 무려 15년만에 본격적인 재난망 구축에 발을 뗐다.
◆ 국가재난안전통신망, 첫 발 떼다
2019년 9월 16일 PS-LTE 1단계 준공이 완료됐다. 강원과 대전, 세종, 충남, 충북 중부권 등 계획대로 5개 지역에 구축됐다. 전기안전공사가 전기 안전을, 한국전파관리소가 전파규격과 전파 방해요소 등을 점검하는 준공검사에 돌입했다.
행정안전부는 1단계 성공을 자축하고 재난망 구축 사실을 알리기 위해 2020년 1월 14일 세종시 밀마루전망대에서 LTE 기반 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시연 행사를 개최했다.
PS-LTE 구축 상황에서 초고속 해상무선통신망(LTE-M)과 철도통합무선통신망(LTE-R)에 대한 구축도 병행됐다. 모두 LTE를 활용한 네트워크망이기 때문에 정부는 통합공공망 운영에 힘을 보탰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변수가 생기기는 했으나 재난안전통신망은 계획대로 진행됐다. 2020년 11월 3일 전라와 경상, 제주를 잇는 남부권 재난망 구축이 완료됐다. 남은 지역은 수도권으로 2021년부터 진행을 예고했다.
마침내 2021년 4월 26일 KT와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국가재난안전통신 전국망 개통을 알렸다. PS-LTE 기반으로 전국 국토와 해상을 이었다. 2015년 시범사업 이후 무려 6년만의 쾌거였다. 경찰과 소방, 철도, 지자체 등 8대 분야 333개 국가기관의 무선통신망이 하나로 연결됐다.
5월 14일 행정안전부는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이 최초 거론됐던 대구로 내려와 전국망 가동을 발표했다. 사업 시행 결정 6년 10개월, 실제 통신망 구축에 2년 3개월, 향후 구축비와 운영비 1조5천억원이 투입됐다.
남은 과제는 전국 재난안전통신망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비와 대안 마련이었다. 다양한 재난 상황에서 슬기롭게 응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세워야 했다. 절대로 없어야 하지만 혹시 모를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태원 참사에 희생된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기록합니다. 재난망이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6편.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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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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