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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모바일 OS 잡아라, 심비안 하락…안드로이드·iOS 부상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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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10부. 아이폰 쇼크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SKT가 경희대학을 비롯한 10개 대학 캠퍼스에서 안드로이드 로드쇼를 한다. [사진=SK텔레콤]
SKT가 경희대학을 비롯한 10개 대학 캠퍼스에서 안드로이드 로드쇼를 한다. [사진=SK텔레콤]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손 안에 PC로 불리는 스마트폰이 부상하면서 거대한 애플리케이션 생태계가 마련됐다. 이 생태계를 주도할 수 있는 자가 향후 모바일 패권을 쥘 수 있었기에 그에 따른 경쟁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나 애플리케이션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모바일 운영체제(OS)가 중요한 화두로 지목됐다.

그간 휴대폰은 하드웨어(HW)나 소프트웨어(SW)가 임베디드 형태로 돼 있기 때문에 구입과 동시에 고객의 곁을 떠날 때까지 초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독립적인 OS의 출현으로 인해 소위 SW 업데이트가 가능해졌고, 다양한 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데이터 속도가 보다 빨라진 3G 때부터는 속도 제한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대중화에 기여했다.

모바일 운영체제(OS)라 해서 기존 PC와 그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OS를 탑재했는지에 따라 스마트폰 성능이 바뀌고, 이용할 수 있는 앱도 달라졌다. 과거 자판 때문에 특정 제조사를 선택했다면, 스마트폰부터는 OS가 중요한 선택 요소로 활용됐다.

스마트폰 초기 OS는 스마트폰의 별칭으로 쓰일 정도로 중요했다. 안드로이드폰, 아이폰, 블랙베리폰, 심비안폰으로 OS 자체가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불렸다.

현재는 시장 경쟁에서 승리한 애플 iOS나 구글 안드로이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나 초기에는 여러 기업들의 패권경쟁이 끊이지 않았다. 노키아 ‘심비안’과 ‘미고’, 리서치인모션(RIM) ‘블랙베리’, 삼성전자 ‘바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HP ‘웹OS’ 모질라 ‘파이어폭스’, ‘우분투’ 등 셀 수 없이 많은 기업들이 출사표를 내밀었다.

SK텔레콤, 모토로이 공식 출시 [사진=SK텔레콤]
SK텔레콤, 모토로이 공식 출시 [사진=SK텔레콤]

◆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안드로이드'…전세계 '호령'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모바일 운영체제(OS)는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가 전세계 가장 큰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개방성’에 있다. 안드로이드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이같은 특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2005년 7월 미국 캘리포니아. 구글은 작은 소프트웨어(SW) 회사에 불과했던 ‘안드로이드’를 인수한다. 세간에서 안드로이드는 다양한 다국적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몇몇 회사에게도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결과적으로 구글이 품었다.

구글은 2007년 11월 안드로이드를 바탕으로 각 국가 여러 사업자들이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준형 OS 개발을 목표로 오픈 핸드셋 얼라이언스(OHA)를 구성한다. OHA에 참여한 기업들은 화려하다. HTC, 델, 인텔, 모토로라, 퀄컴, T-모바일, 엔비디아, 소니에릭슨, 도시바 등의 해외 업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삼성전자, LG전자도 가세했다. 여러 사업자들의 참여는 곧 안드로이드가 개방형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는 배경을 만들어줬다.

2008년 9월 마침내 결과물이 나온다. 리눅스 OS를 기반으로 한 안드로이드 OS 첫 버전이 배포됐다. 기존 목표대로 오픈소스 활용이 가능했다. 제조사뿐만 아니라 SW 또는 콘텐츠 기업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당시 안드로이드의 마스코트라 할 수 있는 초록색의 로봇 아이콘은 별다른 명칭조차 없어 ‘안드로봇’이나 ‘안드로이드봇’ 등으로 불렸던 때다.

안드로이드 OS를 바탕으로 2008년 10월 22일 세계 최초 첫 안드로이드 휴대폰이 공개됐다. 대만 기업인 HTC가 ‘G1’를 선보이게 된 것. 또한 이 시기에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아이폰OS가 부상했기에 그에 따른 대항마이자 라이벌로 안드로이드 OS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HTC G1을 필두로 여러 제조사들이 안드로이드 기반 휴대폰을 출시했다. 이에 따라 안드로이드 OS 버전도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됐다. 1.0버전으로 시작한 안드로이드 OS는 2011년 10월 19일 버전 4.0까지 빠르게 진화했다.

안드로이드는 1.5버전부터 색다른 코드네임으로 불렸다. 알파벳 순서대로 디저트를 의미한 코드네임이 붙었다. 알파와 베타버전을 거쳐 1.5는 ‘C'로 시작되는 ‘컵케이크(Cup cake)’라 명명됐다.

2009년 4월 공개된 1.5버전은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통화품질이 개선되고 앱 구동 속도도 증가했다. 동영상 녹화뿐만 아니라 유튜브 업로드도 지원됐다. 특히, 컵케이크는 우리나라에서 환영 받았다. ‘한국어’ 지원이 바로 이때부터 실현됐다. 메인화면와 위젯 지원도 1.5버전 부터다.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9월에는 1.6버전인 도넛(Donut)이 공개됐다. 안드로이드 마켓의 기능이 보다 강화됐다. WVGA 해상도를 지원하면서 보다 선명한 디스플레이 장착이 가능했다.

국내 사용자들이 안드로이드 휴대폰을 가장 먼저 마주했을 때 쓰였던 버전은 2.0 이클레어(Eclair) 부터다. 국내 첫 출시된 안드로이드폰은 2.0 기반이었다. 국내 최초 출시 모델은 모토로라의 ‘모토로이’다. 2010년 5월에는 기존보다 2~5배 더 빨라진 2.2 프로요(Froyo)가 등장한다. 내장된 저장공간뿐만 아니라 마이크로SD 외장 카드를 첫 지원했다. USB 테더링도 가능했다.

 

국내서 안드로이드가 대중화된 때는 2.3 버전인 ‘진저브레드(Jingerbread)’를 꼽을 수 있다. 2010년 12월 공개됐다. WXGA 해상도를 지원하면서 태블릿 출현의 배경을 마련하게 됐다. 전력효율성을 향상시키는 한편 근거리 무선통신(NFC) 기능이 추가됐다.

◆ 외면받은 안드로이드…국내 시장 잠식

안드로이드 OS는 국내 제조사들에게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준 플랫폼이다.

다만, 초기부터 우리나라 제조사들의 선택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초라하게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드로이드에 대한 인지도도 부족했고 사용할 수 있는 앱 수도 많지 않았다. 각 국가별로 최적화된 앱들은 우리나라 사정과 다르거나 법과 제도적 미비로 인해 쓸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국내 첫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외산 제조사 몫이었다. 2010년 2월 SK텔레콤은 안드로이드 2.0 이클레어가 적용된 ‘모토로이’를 내놨다. 3.7인치 LCD 디스플레이와 600MHz 모바일 프로세서(AP)를 장착했다.

국내 제조사 중에서는 LG전자가 가장 먼저 안드로이드폰을 출시했다. 1개월 늦은 3월 출시된 ‘안드로원’은 전체적으로 모토로이보다 하드웨어 성능이 낮았다.

안드로이드 대중화 물결은 삼성전자 ‘갤럭시S’가 만들어냈다. 글로벌 시장에서 1천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아이폰 대항마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핵심 단말인 ‘갤럭시S2’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왕자로 군림할 수 있게 했다.

구글은 제조사와 협업해 안드로이드 레퍼런스 구실을 할 수 있는 단말을 출시했다. ‘넥서스’라는 브랜드로 출시했다. 최초 안드로이드폰을 공개한 HTC가 2010년 7월 첫 레퍼런스폰인 ‘넥서스원’을 출시했다. 이후 삼성전자가 ‘넥서스S’를 내놓으면서 안드로이드 중심에 서게된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하면서 3번째 레퍼런스 모델도 모토로라를 통해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여전히 삼성전자(갤럭시 넥서스)가 맡으면서 그 위상을 실감케 했다.

애플 iOS 앱스토어 WWDC [사진=애플]
애플 iOS 앱스토어 WWDC [사진=애플]

◆애플 모바일 생태계 키우다…iOS 굳건

애플의 대표적인 모바일 운영체제는 iOS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같은 명칭으로 불리지 않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애플 역시 모바일 운영체제라는 독립적 사고에서 거리가 있었다. 공식적으로 iOS가 명명된 때는 2010년 6월 8일 개최된 애플세계개발자대회(WWDC) 2010 부터다. 故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가 기조 연설 때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 아이패드에 탑재돼 왔던 아이폰 OS(iPhone OS)를 ‘iOS’라 발표한 게 시초다.

이전까지 ‘iOS’라는 명칭없이 마케팅 차원에서 ‘맥 OS X’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iOS는 애플 PC 운영체제 맥 OS X를 기반으로 설계됐다. 편의상 아이폰에 장착됐다고 해 ‘아이폰(iPhone) OS’라고 불리기도 했다.

iOS는 2007년 6월 29일 맥 OS X 모바일 버전이 발표되면서 시작됐다. 당연히 1세대 아이폰에 적용됐다. 최초 iOS의 가장 큰 강점은 ‘멀티터치’. 조잡한 버튼을 모두 제거한 심플한 ‘원버튼’에 있었다. 멀티터치는 스와이프와 탭, 핀치, 리버스 등 다양한 촉감형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소화했다.

최초 iOS 때는 애플 앱스토어는 없었다. 애플이 제작한 앱만을 설치할 수 있었다. 와이파이를 통해 아이튠즈 뮤직스토어 정도만 이용 가능했다. 이를 두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3번째 혁명”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후 애플의 놀라운 발표가 이어졌다. 2007년 10월 애플은 iOS용 소프트웨어 개발키트(SDK)를 발표했다. iOS SDK는 6개월이 지난 2008년 3월 6일 정식으로 배포를 시작했다. 이 때부터 일반 사용자나 개발자들이 개발한 앱을 고객들이 내려 받을 수 있는 ‘앱스토어’가 탄생하게 된다.

앱스토어의 정책은 파격적이었다. SDK는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했다. 99달러의 등록비를 내면 1년동안 앱스토어에 자신이 개발한 앱을 등록할 수 있었다. 앱 판매에 대한 수익은 개발사와 애플이 각각 7:3 비율로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아무런 장벽없이 앱만 개발에 올리면 그에 따른 수익을 전세계에서 거둘 수 있고, 고정된 비율의 수수료를 책정했다는 것만으로도 개발자는 열광했다. 초기 앱스토어의 앱 수는 500여개에 불과했으나 2011년 약 60만개가 넘는 앱이 등록될 정도로 생태계가 탄탄하게 구성됐다.

2008년 7월 iOS는 2.0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iOS2는 ‘아이폰3G’의 모태가 됐다. 애플의 파격은 이때도 이어졌다. 1세대 아이폰 OS에 대한 무료 업그레이드를 단행했다. 현재 OS 업그레이드는 당연한 사후지원이긴 하나 그 당시는 달랐다. 버전이 바뀌면 새로 사야만 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95’를 쓰는 고객은 버전업을 위해 ‘윈도 98’을 구매해 설치해야 했다. 무료 사후 지원은 그 이전에 없던 사례였다. -아이팟 터치는 9.99달러를 내야했다-

iOS2가 적용된 아이폰3G가 출시되자 한국의 얼리어답터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었다. iOS2부터 한국어가 지원됐다. 국내 출시에 한발 더 다가선 셈이다.

iOS2까지가 집을 짓는 과정이었다면 iO3부터는 본격적으로 손님을 받는 가게로 인테리어가 이뤄진 시기다. 이미 아이폰 판매량은 1천만대를 돌파했으나 이후 더 빠른 판매고를 올렸기 때문. iOS3는 2009년 7월 1일 ‘아이폰3GS’와 함께 공개됐다.

iOS3는 그간 불편했던 점을 최대한 개선했다. 복사 및 붙여두기가 가능했고, MMS도 지원했다. 테더링, 개선된 GPS 기능, 블루투스를 통한 P2P 통신 지원 등 확장성도 강화됐다.

한발 더 나아가 애플은 2010년 4월 태블힛 형태의 ‘아이패드'를 공개했다. 아이패드 크기에 맞는 높은 해상도(1024x768)를 iOS3.2부터 지원했다. 초기 시장에서는 아이폰을 크게 늘려 놨을 뿐 경쟁력은 없다라는 부정적 의견이 주를 이었으나 판매량은 그와는 반대였다.

2010년 6월. 기존보다 100여 개 이상의 새로운 기능이 추가된 iOS4가 발표된다. 이 운영체제는 ‘아이폰4’에 탑재돼 나왔다. 애플 모바일 운영체제의 명칭인 ‘iOS’도 이 때 명명됐다. 국내서는 KT뿐만 아니라 SK텔레콤이 첫 아이폰 도입했을 당시 판매한 제품이다.

iOS4 핵심은 멀티태스킹 기능 추가. 과거 아이폰은 앱을 실행한 후 또 다른 앱을 실행하려면 그 전의 앱을 종료하고 해당 앱을 구동시키는 형태였으나 이 때부터는 여러 앱들을 오고갈 수 있었다. 폴더기능도 추가됐다. 기본 검색 기능도 웹검색과 위키백과 검색이 새롭게 더해졌다. 문자의 바이트 숫자를 나타낼 수 있는 옵션, 사진의 장소 탭, 사파리 브라우저의 업데이트 등 소소한 부분까지 업데이트가 이뤄졌다. 이 때부터 아이팟 터치의 OS 업그레이드도 무료로 풀리게 됐다.  

iOS의 강점은 아이폰과 일체화됐다는데 있다. 개방형인 안드로이드와는 대척점에 있다. 뛰어난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그에 걸맞는 소프트웨어도 핵심 사항이다. 물론 사용자와의 관계망을 형성해주는 UI도 필수다. 하드웨어가 뛰어나다고 해도 이를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프트웨어가 미진하다면 제 역할을 해내기 힘들다. 물론 소프트웨어가 뛰어나다고 해도 사용자가 이를 사용할 때 복잡한 절차로 구현된 UI로 실행시켜

구글 모바일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OS를 가져와서 제조업체가 스마트폰을 만들고, 폰의 두뇌인 CPU는 또 다른 칩셋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등 제각기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일체화나 최적화에 한계가 있다. 애플의 경우에는 비록 하청업체에 제작을 의뢰하지만 설계나 구성, 배치 등은 애플이 도맡아했다. 초기 버벅이는 안드로이드폰을 아이폰 사용자가 측은하게 바라본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폐쇄적인 정책 때문에 초기 앱스토어도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간단하게 아이폰 시리즈를 살펴보면 1세대부터 ‘아이폰4S’까지 모두 3.5인치 디스플레이가 탑재된 것만 살펴보더라도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앱을 개발해 각 디바이스에 맞는 최적화 작업 등과 같은 복잡한 일은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웨이브2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웨이브2 [사진=삼성전자]

◆ 심비안의 몰락…제3의 모바일 OS 찾기

초기 모바일 운영체제(OS)가 애플 iOS와 구글 안드로이드의 경쟁으로 비췰 수 있으나 사실 전통적 강자가 따로 있었다.

기존 강자는 ‘심비안’이었다. PDA를 거쳐 휴대폰에서도 그 명성이 자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글로벌 1위 휴대폰 회사는 노키아였다. 심비안은 2009년 2월 노키아가 인수해 오픈소스화했다. 노키아 휴대폰에 심비안이 탑재되다보니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전체 휴대폰의 무려 60% 수준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내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심비안을 탑재한 휴대폰을 선보였다.

하지만 노키아의 부진과 안드로이드, iOS에 밀리면서 결국 2011년 심비안 포기가 발표됐다. 이후 노키아는 윈도폰 도입을 추진했으나 결과적으로 휴대폰 사업부를 매각할 수밖에 없게 됐다.

캐나다 리서치인모션(RIM) 블랙베리 OS도 주목받는 운영체제였다. 특히 보안에 대한 특수성과 유니크한 쿼티자판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당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블랙베리 역시도 노키아와 마찬가지로 경쟁에 밀려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PC OS 절대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빼놓을 수 없다. 개방형 안드로이드, 폐쇄형 iOS와는 달리 제조사들과의 다양한 라이선스를 맺으면서 여러 스마트폰에 장착됐다. 초기 윈도 CE 계열인 윈도모바일로 휴대폰 시장에 대응했으나 참패했다. 국내서는 옴니아가 윈도모바일6을 탑재한 모델이다.

절치부심한 MS는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2010년 4월 윈도폰7을 공개했다. 9월 16일 개발자도구(SDK)를 배포하고 윈도폰 마켓플레이스를 꾸렸다. 코드네임 망고, 탱고 등 버전업 때마다 다양한 코드네임으로 불렸다. 노키아로부터 휴대폰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결국 경쟁에서 밀려났다.

우리나라 역시 자체 모바일 OS에 대한 열망이 컸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가 개발한 ‘바다’가 꼽힌다. 2009년 10월 10일 공식 발표된 바다 OS는 삼성전자 ‘웨이브’ 브랜드에 적용됐다. 국내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으나 유럽에서는 1천만대 이상이 판매됐다. 무려 MS 윈도폰을 누르고 모바일OS 점유율 4위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11월 인텔 타이젠과 바다 OS가 통합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미국 미영리단체 모질라재단의 파이어폭스가 웹표준 언어인 MTML5 기반으로 모바일 OS를 설계하고 중국 제조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스마트폰을 지원했다. 캐노니컬은 리눅스 기반의 ‘우분투 OS’를 선보였으나 영향력은 적었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

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

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

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

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

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

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

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

6편.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㉜ 3G IMT-2000 향한 첫 항해 시작

㉝ 이동통신 1천만 돌파했으나 ‘풍요속 빈곤’…新 브랜드 ‘SKY’ 탄생

㉞ 스무살의 011 TTL·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묻지마 다쳐

㉟ ‘SK텔레콤+신세기통신’ 인수합병…사상 첫 점유율 낮추기

㊱ '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 인수합병…춘추전국→삼국정립

7편. 3세대 이동통신(IMT-2000)

㊲ ‘SK·한통·LG·하나로’ IMT-2000 도전…춤추는 정부

㊳ 하나로통신 007 작전…’정부·재벌’ 허 찔렸다

㊴ SK텔레콤·한국통신 IMT-2000 입성…LG·하나로 ‘탈락'

㊵ LG텔레콤 vs 하나로통신…동기식 IMT-2000 주인 찾았다

8편. 3G 시대 개막

㊶ IMT-2000 표류…CDMA2000 비상

㊷ 연기 또 연기…3G WCDMA 초라한 등장

㊸ '011·016·019→010 통합' 논란…번호이동 패닉

㊹ 유선망 2위 사업자 ‘파워콤’ 인수전…하나로 vs 데이콤 ‘격돌’

㊺ 휴대인터넷 세상 열겠다…와이브로 출항기

9편. 3G 삼국정립

㊻ SKT ’T 브랜드’ 탄생 vs KTF ”쑈(SHOW)를 하라”

㊼ “악법도 법이다”…LGT IMT-2000 사업권 반납

SK텔레콤, 하나로 품다…유무선 통합 1위 도전

㊾ KT-KTF 합병…이석채 회장 통합KT 시대 개막

㊿ ‘LG 삼콤사’ 텔레콤·데이콤·파워콤 = LGU+ 통합 출범

10편. 아이폰 쇼크

(51) ‘이통사 중앙집권화’…韓 단일 표준 플랫폼 ‘위피’ 몰락

(52) ‘아이폰’…韓 3년을 못봤다

(53)’아이폰' 스마트폰 깨우다…옴니아·베가·옵티머스, 그리고 갤럭시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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