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배태호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으로 국내산 전기차 대미 수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정부는 미 당국과의 협상을 최우선으로 하되, WTO(세계무역기구) 제소까지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 대표단이 29일 미국을 방문해 본격적인 협상에 나선다. 한국이 사실상 미국과 중국의 통상 마찰로 인한 최대 피해국으로 부각된 가운데 이번 대표단이 협상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외교부는 미국이 IRA 대응을 위해 정부 대표단이 사흘간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해 미 당국과 협상에 나선다고 29일 밝혔다.
이번에 우리 정부 대표단은 안성일 산업부 신통상질서전략실장과 손웅기 기획재정부 통상현안대책반장, 이미연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 등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 행정부와 의회 주요 인사들과 만나 IRA 법안과 관련한 우려를 전달하는 등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르면 미국 현지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만 연간 최대 7500달러(한화 약 1010만원)의 세액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공제 혜택 대상은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차량 ▲전기차 배터리 핵심 광물 자원(리튬·니켈·코발트·흑연 등)이 미국이나 미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은 국가에서 수출하거나 가공 또는 북미지역에서 재활용된 부분이 일정 비율 이상 ▲전기차 배터리 부품 가운데 북미산 부품이 일정 비율 이상 포함 등 조건을 갖춘 전기차다.
북미 지역 생산 차량이 아닌 경우 공제 혜택이 전혀 주어지지 않아 반드시 이를 충족해야만 보조금 지급 대상이 될 수 있다.
또 생산지 외에도 핵심 광물 자원 비율과 부품 비율 등을 모두 갖춰야만 최종적으로 7500달러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생산지 조건과 광물 자원 비율만 충족 시 3500달러, 생산지 조건과 부품 비율만 충족 시 3500달러 혜택이 주어진다.
당장 한국에서 수출하는 모든 전기차는 국내 생산인 만큼 현재로서는 미국에 전기차를 수출해도 미 정부로부터 단 한 푼의 지원도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현재 현대·기아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105억달러(약 14조원)를 투자해 현지 공장을 짓고 있지만 준공과 실제 가동까지는 수 년이 걸릴 전망이다.
현지 공장이 완성돼도 배터리와 관련한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중국 원자재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7월까지 배터리 핵심 소재인 수산화리튬 수입액의 84.4%를 중국(14억7637만달러)이 차지했다. 코발트나 천연 흑연 역시 중국에서 수입하는 비중이 각각 81%, 89.6%로 높았다.
결국 조지아주에 현지 공장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배터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미국 시장에서의 국산 전기차 가격 경쟁력은 크게 후퇴할 수밖에 없어 한국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 상황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IRA는) 사실은 중국에서 생산하는 핵심 광물이나 배터리 부품을 배제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건데, 현실적으로 이를 맞추는 기업이 현재는 없고, 상당히 오랜 기간 없을 것 같다"라고 말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번에 미국을 방문한 정부 대표단은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해 미 무역대표부(USTR), 재무부, 상무부 등 미 행정부 주요 기관을 모두 만나 우리 측의 우려와 우리 업계 입장, 국내 여론 등을 전달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협의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미 의회에도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대화에 나설 방침이다.
또, 대표단은 미국에 진출한 자동차·배터리 업계와 간담회를 갖고 우리 업계 대응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대표단 방문은 다음 주 예정된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장관회의 참석차 미국 방문에 앞서 사전 협의 차원에서 이뤄진다. 안 본부장의 방미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관련 한미 당국 간 협의를 한층 고위급으로 격상해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다만, 우리 정부 바람대로 미 당국과의 협상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 24일 기자들과의 백브리핑을 통해 "미국의 정치적인 일정상, 전격적으로 처리된 법안이어서 '북미 최종 조립요건'이 즉시 시행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여기에 그는 "만일 유예기간이 있다고 한다면 현대자동차 등 전기차 생산 목적으로 투자한 공장들이 착공 시기를 맞출 수 있을 텐데 미국이 목적성을 갖고 초강수를 둔 것이어서 당장 법 개정이나 완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앞으로의 협상 과정이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배태호 기자(bth@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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