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안다솜 수습 기자] "재작년에도 사람이 떠내려가는 걸 봤어요. 도와주고 싶어도 잡을 수가 없어요."
60년째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살고 있는 동네 토박이 A씨(69세)는 한 편의점 앞에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20년 전과 재작년에도 사람들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봤다는 그는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듯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지난 8일. 수도권 전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지하철역이 잠기고 집안으로 물이 들어오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에는 약 123mm의 비가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도림천 산책로의 출입이 통제돼 있다 [사진=안다솜 수습 기자]](https://image.inews24.com/v1/cb09a7ca6bb2f8.jpg)
지난 18일 오후 4시에 방문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은 언제 잠겼었냐는 듯 햇볕이 내리쬈고 도림천의 산책로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충무교 인근 사람들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엔 평화로운 일상이었다.
그러나 도림천 앞 출입 금지 표지가 폭우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산책로에는 아직 치우지 못한 흙더미와 쓰레기가 쌓여있었다. 근처 침수 지역 주민들은 폭우가 온 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주민 A씨는 "여기는 맨날 잠긴다"며 "저번주엔 집 앞에 맨홀이 (수압이) 세니까 혼자 치솟았다"고 말했다.
동방교 근처 빌라 앞에서 만난 B씨는 "물이 빌라 앞 (도보) 턱까지 차서 찰랑거렸다"며 "인근 공장 지하는 물이 들어갔는지 퍼내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집은 다른 곳보다 높아서 화를 면했지만 위험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수해 반복되는데 바뀌지 않아"…서울시 반지하 정책에 반응 '엇갈려'
신림동은 관악산에서 시작되는 도림천 하류 쪽에 있다. 폭우가 내리면 고지대에서 흘러 내려오는 빗물과 도림천의 범람으로 침수 가능성이 큰 지역이다.
실제로 해당 지역은 자주 침수됐다. 2001년 기습적인 폭우로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에 주민들이 동사무소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11년 7월, 2020년 그리고 올해까지 집중호우가 오면 자동차, 냉장고 등 가전제품이 떠내려가는 등의 피해가 계속 발생됐다.
![도림천 산책로의 출입이 통제돼 있다 [사진=안다솜 수습 기자]](https://image.inews24.com/v1/0d19ae39e35ad9.jpg)
침수를 방지하려는 지자체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관악구는 2011년 폭우 이후 피해를 방지하고자 '신림5빗물펌프장'을 신설했다. 2014년에는 서울대 내 버들골, 공대 폭포, 정문 앞 저류조에 빗물 6만5천 톤을 가둘 수 있는 저류조를 가동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강수량에 매번 신림동은 물에 잠겼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의 수해도 반복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땜질식 처방만 해 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최근 폭우로 일가족이 사망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하자 서울시는 근본적인 해결 대책으로 반지하 주택을 없애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 16일 서울시는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를 실시해 반지하 주택의 위치, 침수 위험성 등을 파악하고 임대주택 이주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외에도 258개 노후 공공임대주택 재건축을 통해 임대주택 물량을 확보하고 서울에 있는 반지하 주택 20만 가구를 순차적으로 흡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서울시가 발표한 반지하 정책의 실효성에 관한 신림동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과 경제적인 상황 등을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A씨는 "신림동 근방은 다 반지하가 있는 건물들이고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살고 있다"며 "예산이 많이 들어가긴 하겠지만 뚜렷한 방향성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림동 한 부동산 안에서 만난 주민 C씨는 "아마 이 근처 임대 아파트 등으로 이주시킬 계획인 것 같은데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신림동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D씨는 "(반지하가) 경제적 약자들이 사는 곳인데 해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같은 건물이라도 2층이 월 50만원 정도라면 반지하는 30만원으로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 의도는 좋지만 섣부른 '반지하 일몰제'
지난 10일 서울시는 10~20년 유예기간을 두고 지하·반지하 주택을 없애는 반지하 일몰제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시의 반지하 정책을 두고 전문가들은 반지하가 장기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점엔 동의하지만 대책이 부실하다고 평가했다.
![도림천 산책로의 출입이 통제돼 있다 [사진=안다솜 수습 기자]](https://image.inews24.com/v1/1cf4e365265b3c.jpg)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서울시의 반지하 정책에 관해 "실제로 반지하 주택이 20년 안에 사라지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는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반지하 일몰제 실현을 위해선 현실성 있는 자원배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2010년에도 서울시는 반지하를 앞으로 짓지 않겠다고 했다"며 "문제는 앞으로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존 몇십 년 전에 지어진 주택들이다"라고 설명했다.
'반지하 퇴출' 공언이 대책 없는 주장이라는 지적도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반지하 거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라며 "근본적으로는 주거 이전을 희망하는 분들이 부담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주택들이 시장에 많이 나올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반지하 세대 중 이주 거부 의사를 비친 대부분이 임대료 문제, 이사비 부담 등을 이유로 지상층 주택 이전을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지하 세대가 겪는 경제적인 부담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관건인 셈이다.
정부도 지난 16일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을 통해 9월부터 재해취약주택과 거주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착수하고 연내에 종합 해소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하층 주택은 커뮤니티 시설 등으로 용도 변경을 추진한다. 다만 매입이 어려운 주택은 침수방지시설, 여닫이식 방범창 설치비용 등 지원할 계획이다. 반지하 주택을 아예 없앤다는 서울시 정책과는 차이가 있다.
최은영 소장은 국토부가 내놓은 방안을 두고 "반지하 문제의 핵심은 경제적인 지원인데 서울시는 국토부에 미루고 국토부는 응답하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며 "공공부문에서 어려운 재개발, 재건축보다 주거급여를 높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다솜 수습 기자(cott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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