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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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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5부.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과거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배우 신세경의 싸이언 까페 바리스타 행사 모습. 싸이언은 LG전자 PCS 브랜드로 출발했다 [사진=김현철 기자]
과거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배우 신세경의 싸이언 까페 바리스타 행사 모습. 싸이언은 LG전자 PCS 브랜드로 출발했다 [사진=김현철 기자]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한계도 불가능도 없다. 청년정신을 실천하겠다.”

1997년 7월 15일 경기한국스포랜드.

64세의 한 어르신이 번지점프대에 올랐다. 장장 40m 높이의 번지점프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뛰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이 번지점프대 역시 그랬다. 나이제한은 55세. 하지만 그보다 훌쩍 많은 노인이 무대 위에 오른 셈이다.

“훌쩍.”

하지만 64세 어르신은 번지점프대에서 몸을 던졌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오히려 희열을 줬다. 한국기네스협회는 국내 최고령 번지점프 기록 보유자로 이 어르신을 모셨다.

1997년 당시 PCS 사업권을 획득하고 상용화를 앞둔 시점. 정용문 한솔PCS 대표(사장)의 얘기다. 이 날 정 사장을 따라 도전에 참여한 임직원 34명 전원이 번지점프에 성공했다. 정 사장은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 사전에 신체검사를 받을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 한솔의 청년정신을 보여주겠다는 퍼포먼스였다. 이같은 사례는 당시 국내 이동통신 시장이 얼마나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PCS 조기 상용화 선언…가시밭길 걷는다

1998년 1월 상용화를 목표로한 PCS 기업의 로드맵이 앞당겨졌다. LG텔레콤은 1997년 2월 1일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정부의 지침보다 3개월 더 빠른 10월 상용화를 발표했다. 여건이 다소 미흡하더라고 강행노선을 견지하겠다는 선언이었다. LG텔레콤의 폭탄발언에 한국통신과 한솔 역시 부산하게 움직였다.

막상 10월 상용화를 선언하기는 했으나 그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우선 기지국 확보가 어려웠다. 앞선 이동전화사업자(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가 기지국 노른자를 확보하고 있었고, 국민의 전자파 공해 두려움 확산으로 인해 혐오시설화된 이미지 제고가 필요했다. 또한 막대한 투자비를 감내해야 했다.

이동전화의 경우 800MHz 주파수를 이용했으며, PCS는 1.8GHz 주파수로 보다 높은 대역폭을 활용했다. 주파수 특성상 느리지만 유연한 저주파 대비 고주파는 빠르지만 도달거리가 짧았다. 즉, PCS는 더 많은 기지국이 필요했다. 대략 2~3배 많은 기지국이 요구됐다. 또한 초기 이동통신 기지국의 경우 약 20~30평 가량의 공간이 필요했다. 안테나와 송신기, 축전지와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 냉방장치 등 갖춰야 할 시설이 많았다.

주민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실제 1996년 6월 충남 성거지역에 기지국을 설치하기 위해 나선 신세기통신이 주민 반대로 인해 무산된 사례가 있었다. 한국이동통신 역시도 서울 대치동과 일원동 아파트 밀집지역 기지국 설치 당시 주민 반대로 무산됐으며, 대구 근교에는 철탑까지 세웠음에도 이전 설치해야만 했다.

정보통신부 역시 이 사안의 중요시했다. 전파감리과가 나서 전세계적으로 기지국을 설치하고 있으며, 전자파가 인체 해를 끼친다는 정확한 근거는 없다고 해명했다. 다만, 주민 반발을 피해 이동전화 사업자가 가급적 공동기지국을 운영해달라고 촉구했다.

PCS 사업자는 이같은 어려움을 해소하면서 커버리지를 확보해야 했다. 상용 서비스를 위해 필요한 최소 기지국 수는 1천에서 1천500여개. 상가나 빌딩이 밀접한 도로변 중앙이나 전원공급이 쉬운 곳, 고속통신선이 가까운 곳, 주변보다 더 높은 꼭대기층 등을 공략해야 했다. 물론 이미 유리한 고지들은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 텃밭이라는 난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텔레콤이 조기 상용화 카드를 꺼내자 한국통신프리텔도 3월 20일 사업설명회를 열고 연말 600여명의 직원을 확보하고 영업체계 구축과 전국망 구축에 약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9월까지 전국 주요도시 통신망을 구축해 10월부터 수도권과 부산지역에 시범서비스를 시작, 연말까지 5대 광역시와 전국 73개시를 커버하겠다고 선언했다.

한솔 PCS도 올해 내 1천100여개 기지국을 구축하고 연말까지 700여명의 직원을 모으겠다고 답했다.

과열된 마케팅 경합…끝없이 내려가는 단말가격

정보통신부는 4월 2일 통신서비스 요금 자율화를 골자로 ‘이용약관인가대상 기간통신사업자 고시’를 발표했다. 인가대상 업무와 사업자를 명시적으로 규정해 자율화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 이를 통해 자발적인 요금인하를 유도했다. 이후 5월 인가제를 신고제로 전환시키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상정했다.

그 사이 한국이동통신은 3월 21일 주주총회에서 SK텔레콤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그룹 차원의 기업 이미지 통일작업에 발맞춘 조치였다. 이동통신에서 종합정보통신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PC통신과 무선케이블, 멀티미디어 사업을 추가했다. 고객만족 경영 10대 과제와 7개 비전 슬로건을 채택해 경쟁 역량을 끌어올렸다.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시장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기존 이동전화 사업자에게 새로운 경쟁요소가 발생한 것. 바로 시티폰이었다. 시티폰 사업자인 한국통신과 나래이동통신, 서울이동통신은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근거는 단말 가격. 당시 시티폰 단말가격은 10만원대로 상당히 저렴했다. 가입자 확보에 따른 리베이트 제공으로 인해 마진을 포기한 결과였다.

그러다보니 이동전화 휴대폰의 가격도 내려갔다. 대략 전년대비 20~30% 가량 저렴했다.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이 가입건당 일정액의 리베이트를 주는 제도를 강화하면서 대리점들 역시 마진을 포기하고 판매 경쟁에 나섰다.

가령, 용산전자상가에서 판매하는 삼성 ‘애니콜 200F’의 경우 10만원 가량 적어진 93만원에 판매됐다. 가입보증금 20만원과 가입비 7만원을 고려한다면 실제 휴대폰 가격은 66만원대인 셈이다. ‘애니콜100’ 시리즈는 20만원 이상 떨어져 43만원 수준으로 판매됐다. LG정보통신의 프리웨이 LDP-880 역시 75만원 수준으로 내려갔다.

게다가 SK텔레콤 대비 열세였던 신세기통신은 스팟성 이벤트 진행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4월 프로모션을 개최하고 삼성 애니콜 단말을 30~35만원 선에 판매했다. 5월에도 50~60% 가량 단말을 할인해 출고했다.

자연스럽게 가입자는 크게 증가했다. 부동의 1위인 SK텔레콤은 1997년 3월 가입자 100만명을 돌파했다. 스팟성 프로모션 전략을 구사한 신세계통신은 4월에만 4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했으나 5월에는 무려 10만명이 증가한 50만명을 돌파했다. 3월 20일 서비스를 도입한 시티폰도 1개월도 채 안돼 10만명을 확보했다. 한국통신 5만6천명, 나래이동통신 3만4천명, 서울이동통신 2만명 수준이었다.

시장 과열로 초조해진 곳은 PCS사업자였다. 이동전화와 시티폰 가입자가 늘어난다는 것은 곧 초기 PCS 가입자를 뺏긴 것이나 진 배 없었다.

PCS 사업자는 대외적으로 동맹관계를 형성했다. 공동으로 광고를 집행했다. 당시 PCS 3사의 광고문구는 “안타깝습니다. 몇달만 참으면 차세대 이동통신 PCS를 쓸 수 있는데 그새를 못참으시다니…. 기다려 주십시오-PCS세상”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광고 수위는 점차 높아졌다. 나중에는 기술 품질 논란으로 번졌다. PCS 사업자들은 이동전화 서비스에 대해 폄하하면서 PCS가 더 높은 기술 우위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동전화 사업자 역시 억측이라며 상대방을 비난했다. 이같은 과열경쟁에 정보통신부가 나서 마케팅 담당자를 불러 세우기까지 했다.

대내적으로는 유통망 확보에 힘썼다. 초기 선점이 경쟁의 핵심이었기에 누가 고객 접점에서 가장 많은 가입자를 단숨에 끌어 올리는가가 성패를 좌우했다.

LG텔레콤은 ‘오픈마케팅’ 전략을 채택했다. 전속 대리점 체제를 대신해 단말기 제조업체와 주유소, 편의점, 슈퍼마켓 등을 가입대행점으로 유치했다. LG그룹내 2천700여개 LG정유와 400여개 LG유통 편의점, LG정보통신과 LG전자 유통망을 풀가동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통신프리텔은 대리점 망을 개설하는 한편, 주주사로 입성한 금호와 효성, 대우 등에 조력을 구했다. 1만2천여 주주사의 다양한 유통망을 활용하는 한편, 260개 전화국과 200여개 시티폰 대리점을 모두 총동원했다.

유통망에 다소 열악한 한솔PCS는 전속 대리점 중심의 단일 유통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전국 6곳의 지역본부를 중심으로 최신 영업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전산망을 연결하겠다는 것. 전국 500여개 대리점 개설을 목표로 우수대리점을 육성하겠다는 복안이다.

또한 가입자를 뺏기지 않을 심산으로 이동전화 대비 저렴한 요금제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심하게는 2배 가량 저렴하다는 문구까지 가져왔다.

이에 자극받은 SK텔레콤은 이동전화 보증금과 가입비 인하를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2만원의 보증보험 의무가입시 보증금을 면제하고 가입비를 낮추는 새로운 약정제도를 검토했다. 현재 약정할인제도의 초기 모델인 셈이다. 신세기통신 역시 보증보험제 시행을 고려했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

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

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

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

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

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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