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현지 사업 점검을 위해 11박 12일 일정으로 지난 7일 유럽으로 떠났다. '사법 리스크'로 경영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반도체 장비 업체 ASML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로 곧장 달려갔다. 반도체 사업에서 위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유럽 출장을 떠난 날, 공교롭게 윤석열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특강'을 열고 각 부처 장관들에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반도체는 안보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과외 선생을 붙여서라도 반도체에 대해 더 공부해오라"고 장관들에게 주문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반도체 초강국'을 기치로 내세우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각 부처들도 반도체를 정책 핵심 키워드로 내세우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반도체 산업과 관련된 지원책을 내놓은 곳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재정부 등이다.
윤 대통령과 이 부회장 모두 '반도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반도체가 '경제안보'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액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 중요 산업으로,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나선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매개체로도 활용하고 있다. 지난달 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기간 동안 가장 중점적으로 논의됐던 것도 '반도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수장과 재계 1위 기업의 오너가 각자의 자리에서 반도체 산업을 살리고자 함께 나섰지만, 정작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인력이다. '반도체 강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뽑을 인재가 부족하다며 아우성치고 있다.
업계에선 향후 10년간 반도체 인력이 약 3만여 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대만은 10년째 매년 전문 인력 1만 명을 육성하고 있고, 중국은 한 해 20만 명씩 배출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에서 해마다 뽑는 반도체 인력은 1만 명 중 1천400명 정도만 반도체 전공자란 점은 뼈아프다. 특히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석·박사급 인력은 150명가량에 불과하다.
정부는 수도권 인구 집중을 막는다는 이유로 대학 정원을 제한하고 있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40년째 고수하면서도 반도체 산업을 키우겠다고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정부부처가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해 "목숨 걸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이 규제가 없어지지 않는 한 고질적인 반도체 인력난은 해소되지 않는다. 대학들이 학과 정원을 신축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는 것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를 의식한 윤 대통령은 "교육이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인재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며 교육부의 개혁과 혁신, 발상의 전환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허공 속 메아리'에 그치지 않으려면 규제 개혁은 하루라도 빨리 시행돼야 한다. '사람이 미래다'고 외쳤던 어느 기업의 광고 문구처럼 인재 양성을 위한 규제 개혁 없인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도 없다. 관련 부처 실무자들이 망설이는 동안 위기에 놓인 국내 기업들의 반도체 경쟁력은 이미 추월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