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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제2이동통신사 大戰편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사진은 198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교황 요한바오로2세 방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뉴시스]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우여곡절 끝에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경(대한텔레콤)이 선정되기는 했으나 노태우 대통령의 인척 기업에 허가한 불공정 처사라는 국민적 여론과 제6공화국 말기 정치권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노태우 대통령과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사돈지간임을 고려해 선경이 특혜를 입었다는 주장이다. 특혜 시비에 휘말렸기에 선경에 대한 제2이동통신사 선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논리는 당시에도 정확한 근거는 없었으나 ‘사돈’ 이라는 관계와 그 때의 정치적 성향에 맞물려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였다.

다만, 그에 따른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인척관계와 상관없이 사업자 선정 자체가 공정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가령 명문대 총장의 아들이 해당 명문대에 실력이 좋아 수석으로 합격했다고 하더라도 총장 아들이기 때문에 탈락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처사라는 지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선경은 1, 2차 심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기 때문에 실력으로 제2이동통신사업을 거머쥐었을뿐이며, 인척관계는 사실상 이 자리에 낄 수도 없고 고려될 요소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을 벗어나 정치권에서는 ‘특혜 시비’라는 그 현상 하나만으로도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당시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그에 따른 여론의 눈치를 봐야만 했다.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위한 독점에서의 경쟁체제 전환이라는 산업적 목표가 정치화되는 순간이었다.

◆ ‘정보통신산업’ 정치 격랑에 휘말리다

1992년 8월 20일 2차 심사결과가 발표되고 선경이 제2이동통신 사업을 따내자 다음날인 21일부터 ‘특혜 시비’, ‘도덕성 결여’, ‘짜놓은 선정’ 등 언론의 비판적 기사와 칼럼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특히 정치권의 반발이 거셌다. 야권은 물론 여당인 민자당 측도 선경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 확정에 날을 세웠다. ‘6공 최대의 정경유착’이라고 결론내린 정치권은 정기국회에서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의혹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차기 대통령 후보가 유력시된 김영삼 민자당 대표까지도 반대 의사를 공론화하면서 청와대와 여당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확산됐다.

김영삼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은 발표 당일인 8월 20일 오전 고위당직자회의를 긴급 소집해 이동통신사업자 발표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노태우 대통령과의 청와대 주례회동에서도 승복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특혜 논란이 있는 선경을 제2이통사로 확정하게 된다면 여론의 반대에 휘말려 여권 역시 타격을 받을 수 있고, 이 타격은 차기 대선에서 악영향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추측이 커졌다.

야당인 민주당도 이 흐름을 타야 했다. 김대중 민주당 대표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무리한 성정이며, 또 다른 경제파탄의 우려를 낳고 있다며 국민여론과 경제실정을 감안해 사업자 선정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주영 국당 대표도 유감을 표하고 백지화를 주장하면서 차기 정권으로 넘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같은 불복 선언에도 체신부는 의연하게 대응했다. 송언종 체신부 장관은 선정 과정에서 한점의 의혹도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심사한 이상 친인척 관계는 아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대학입시에서 총장 아들이 응시했을 경우 실력이 부족하다면 합격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지만 반대로 실력이 뛰어난데도 불합격 시키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신부는 심사기준 등 허가신청서에 상세히 공개돼 있기 때문에 세간에서 지적하는 선경에 유리한 평가기준 등은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허가업무 추진 중에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을 만난 적도 없으며, 심사 결과를 사전에 청와대에 보고 못했다고 설명했다. 신규 사업자가 선정됐기 때문에 현재 실용시험단계에 있는 통신관련 국산기기의 국산화를 오히려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대한텔레콤을 이끈 선경 역시 특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유공사옥에서 김항덕 유공사장 등 대한텔레콤 컨소시엄 참여업체 16개사 사장단을 배석시킨 가운데 직접 특혜시비와 관련해 정면돌파에 나섰다.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국민께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하고 대한텔레콤이 공적 서비스 기관으로 운영해 이동통신 사업 특혜 문제를 깨끗이 씻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1997년 이후 이익이 발생한다면 국민주 형식의 기업공개 등을 통해 이익을 국민에게 환원하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시에는 개인재산을 털어서라도 그에 상당하는 금액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특혜 논란과 관련해서 국민에게 보다 나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오명을 벗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선경은 1986년부터 그룹회장실에 정보통신전담반을 설치하는 등 일찍부터 정보통신 사업 참여를 준비해 왔고, 선정 과정에서도 경쟁사보다 월등하지 않다면 사업 착수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노 대통령과 정치권의 접촉도 일체 없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특정 정치 인사를 만나지 않을 것이라 선을 그었다.

선정에 따른 부당성이 증명된다면 정부의 어떠한 결정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최 회장은 최악의 경우 사업권을 반납할 수도 있다고 결의했다. 만약 사업자 선정이 연기된다고 하더라도 차기 정권에서도 정보통신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청와대도 특혜 논란에 대해 ‘공정한 심사결과’를 강조하고 나섰다. 여야 합의로 전기통신기본법을 제정했고 그에 따라 사업자를 선정했으며,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야권의 우려를 인정하면서도 한 점의 의혹이라고 있다면 정부가 이렇게 당당할 수 없다고 확언했다. 만약 연기를 결정했다면 더 큰 비난이 노 대통령과 행정부에 쏟아졌을 것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이같은 특혜 논란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어 심사기관 동안에도 체신부로부터 심사와 관련된 어떠한 보고도 받지 않을 정도로 신경을 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혜 논란에 불편했던 이들은 사실상 실제 선정작업에 나선 심사위원들이었다. 심사평가 위원들은 심사과정에서 외압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자신이 맡은 부분 외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평가한 점수 등 전체 심사과정 역시 알 수 없었으며, 심사평가과정에서 의혹을 사지 않도록 신중했다고 회고했다. 모두가 ‘소신 심사’를 주장했으며, 자신들의 명단이 공개되는 것 역시 꺼려하지 않았다.

◆ 당혹스러운 정부와 업계

체신부와 심사위원, 청와대, 선정된 사업자까지 나서 특혜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으나 정치권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난 후 돌연 언론을 통해 선경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자진 반납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민자당의 상당수 의원들이 악화된 당정 -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자당 대표 -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선경이 스스로 사업권을 내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 당시 야권인 민주당과 국민당은 정부 결정의 백지화를 계속해서 주장하는 중이었다.

선경의 컨소시엄인 대한텔레콤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컨소시엄 내 국내 사업자뿐만 아니라 해외 사업자 역시 포함돼 있기 때문. 대한텔레콤은 미국 GTE 10%, 영국 보다폰 6%, 홍콩 허치슨 4%가 참여한 국제 컨소시엄 형태였다.

유공의 지분이 31%로 가장 높기는 하나 나머지 66%의 반발을 견디기에는 부족했다. 특히 국내 정치적 특수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 기업을 상대로 한다면 손해배상사태까지 우려되기에 실무적으로 쉽지 않았다.

체신부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번 결정된 행정조치가 정치권의 압력과 여론에 밀려 뒤집히는 전대미문의 헤프닝으로 기록될 수 있어서다. 정부 공신력 실추뿐만 아니라 재선정에 따른 부담도 가중된다. 무엇보다 체신부는 1980년말부터 정보통신 구조조정에 나서 3년만에 결실을 맺는 상황이었기에 단 몇일 내로 이뤄지는 이같은 조치가 날벼락이었다. 어느 공무원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을까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또한 표정관리를 하기는 했으나 불만스러운건 매한가지였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지배하는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는 우려는 곧 기업이 어떻게 정부 정책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라는 신뢰 문제와도 연결됐다. 게다가 경부고속전철과 LNG 3호선, 영종도 개발사업 등 굵직한 현안들이 진행 중인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이동통신사 선정의 격랑은 멈추지 않았다. 되돌릴 수 없는 강에 등 떠밀려 돌아올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 당시 업계에 따르면 선정된지 나흘이 지난 24일 선경에서 잠정적으로 제2이동통신사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다

대한텔레콤이 제2이동통신사를 접는다고 하더라도 이후 해결해야할 난제 역시 만만치 않았다.

선경 입장에서는 그간 투입했던 비용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도 있었겠으나 컨소시엄에 참가한 업체들을 설득하는 일이 무엇보다 어려웠다. 아울러 자진반납과 백지화에 따른 리스크가 달랐다. 정부가 선정 자체를 백지화한다면 그 책임을 지지 않기는 하나, 자진반납의 경우에는 모든 책임을 선경이 져야 했다.

체신부도 백지화를 선언할 경우 정부 공신력이 실추될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망신을 당해야 했다. 또한 특혜 시비 논란을 인정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또한 선경의 탈락이 곧 2위와 3위 사업자에게 돌아가게 될지 또는 선정 작업을 차기 정부로 넘겨야 할지, 로드맵을 새로 세워야 했다.

이같은 분위기는 제2이동통신사에 도전해 고배를 마신 컨소시엄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동양과 동부는 백지화를 통해 재선정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오롱은 공정한 선정작업을 통해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제철은 새로운 정권이 새로운 심사기준에 의해 적격업체를 선정해야 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순간에도 선경은 외국과 국내 참여업체 15개사와 접촉해 의견수렴을 꾀했다. 다만 업체 대부분이 크게 반발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 법률상 전혀 하자가 없고 심사과정이나 평가기준 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었던 사안을 왜 업체 스스로가 자진반납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외국기업의 경우 피해보상계약 위반 위약금 청구 소송과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불만을 표했다.

다만, 정치권의 바람은 막을 수 없었다. 당시 정치권은 체신부가 나서 선경의 제2이동통신사 자격을 반납받는 절차가 가장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공정한 심사과정을 통해 선정했다는 체신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대안이었다. 결국 정부가 아닌 정치권이 직접 움직였다는게 유력한 후문이다.

손길승 대한텔레콤 대표 [사진=SK텔레콤]

◆ 제2이동통신사 ‘불발’…차기 정권으로

26일 청와대 국무회의. 노태우 대통령이 침통한 얼굴로 이동통신 사태에 유감을 표했다. 가슴 아픈 심정을 각 부처 공직자들에게 잘 전하고 위로와 격려를 해달라고 다독였다. 결국 제2이동통신사 선정이 불발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인 27일 오후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이 서울 을지로 선경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합법적 절차와 공정한 평가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물의가 커 국민 총화합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사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다만, 오해받을 우려가 없는 다음 정권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도 명확히 표명했다.

다시 다음날인 28일 송언종 체신부 장관이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이동전화사업 신규허가대상자의 재선정문제는 다각도로 검토한 끝에 모든 문제를 다음 정부의 결정에 맡기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발표했다.

또한 송언종 체신부 장관을 비롯해 심사에 참여한 중요 인사들이 모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이진설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도 사의를 표했다. 최소한의 잘못도 오해도 없었다는 의미의 사직이었으나 결국 이는 반려됐다.

제2이동통신사 선정과 포기는 단 일주일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1부. 삐삐·카폰…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부. 1세대 통신(1G)…삼통사 라이즈

⑥ 삼통사 비긴즈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부.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⑪ 제2이동통신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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