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고정삼 기자] 동원산업과 동원엔터프라이즈의 합병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성난 소액주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소액주주들은 합병비율이 불공정하게 산정된 만큼 한국거래소가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우회상장을 승인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회원들과 동원산업 소액주주들은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집회를 열고 "동원산업이 투자자들을 무시하고 오너 일가에게 유리한 합병을 강행하고 있다"며 "한국거래소는 동원산업에 투자한 주주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반드시 우회상장을 기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를 주도한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거래소는 동원엔터프라이즈의 우회상장 신청서를 반려해야 한다"며 "물적분할 사태를 비롯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일상다반사로 발생하는 대주주의 소액주주 재산권 침해 행위가 종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동원산업은 비상장 지주회사인 동원엔터프라이즈를 1대 3.838553의 비율로 흡수합병한다고 지난 7일 공시하면서 소액주주들의 비판에 직면했다. 외부평가기관의 평가의견서에 따르면 지난해 순이익 1천692억원을 올린 동원산업의 기준주가는 24만8천961원, 기업가치는 9천156억원으로 평가됐다. 특히 동원산업 측은 기준주가가 자산가치(38만2천140원)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데도 기준주가를 적용해 합병가액을 산정했다.
반면 지난해 순이익 569억원에 불과한 동원엔터프라이즈의 기준주가는 19만1천130원으로 기업가치는 2조2천346억원에 달한다. 동원산업의 기업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고, 동원엔터프라이즈는 고평가된 상황에서 합병이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집회에 참여한 이모씨(50대·남)는 "사회지도층 인사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는 못할 망정 동원산업 자녀의 지분을 늘리기 위해 개인 주주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합병을 추진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다른 참가자인 조모(50대·남)씨도 "미국에서는 합병이 진행되면 전문 컨설턴트들이 회사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고, 합병가액이 적당한지 등을 주주들에게 설명하는 작업을 거치는데, 우리나라는 이런 절차가 아예 없다"며 "이건 마치 내가 5억원짜리 집에 살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공인중개사가 찾아와서 집을 3억원에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토로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현행 제도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는 합병비율 산정 기준을 공정가치가 아닌 시장가로 규정하고 있어 인위적인 주가 누르기 등 최대주주에 유리하도록 합병비율이 산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정 대표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에는 기준주가가 자산가치보다 낮을 경우 자산가치로 합병가액을 산정할 수 있는데도, 강행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오너와 경영진들이 이를 악용해 합병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꼬집었다.
다른 참가자도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상법은 아주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상장사의 가치평가를 시장가가 아닌 공정가치로 평가해야 한다고 본다"며 "시가로 평가하는 게 얼핏 보면 시장에서 여러 사람의 거래를 통해 형성된 가격이라 공정할 것 같지만, 회사와 관련된 악재를 흘리는 등 대주주의 의도에 따라 회사 가치가 저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동원산업의 이번 합병은 도둑질과 다름없다"며 "이 같은 악의적 행동을 한 대주주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는 등 입법기관이 하루 빨리 법 개정에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와 관련한 거래소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기업간 합병비율은 거래소의 우회상장 심사 대상이 아니란 설명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거래소의 우회상장 심사 대상에는 재무요건, 감사의견, 소송계류 사항 등이 해당하고, 합병비율은 (심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합병비율은 외부평가기관에 의해 이미 공정하게 이뤄졌어야 한다"며 "(합병비율이) 실제 공정하게 산정됐는지는 금융감독원에서 심사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정삼 기자(js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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