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오경선 기자]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에 대한 논의가 유례없이 장기간 논의 중에 있습니다. 답답한 일입니다."
최근 만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가 갑갑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으로 디폴트옵션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핵심 쟁점에 대해 업권 간 이해관계가 대립하면서 도입이 늦춰지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국내 퇴직연금 수익률은 회사가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 가입자가 직접 운용해야 하는 확정기여형(DC형) 할 것 없이 모두 저조한 실정이다. 작년 기준 5년 장기수익률은 1.85%에 불과하다. 10년 수익률(2.56%) 그나마 2%대다. 하지만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익'이라 할 수 없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과 비교해봐도 처참한 수준이다.
퇴직연금만으로는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저조한 수익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제도가 '디폴트 옵션'이다. 이는 전문적 지식을 갖춘 금융회사가 가입자의 운용 권한을 일임 받아 가입자의 투자 성향에 맞춰 연금자산을 운용해 주는 제도다. 현재 국회에선 DC형에 대한 디폴트 옵션 도입을 놓고 논의 중이다.
하지만 원리금 보장 상품 포함 여부를 놓고 은행·보험업계와 금투업계가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디폴트 옵션의 국회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은행·보험 업계는 디폴트 옵션에 원리금 보장 상품을 포함해 원금 보장을 원하는 가입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로는 원금 손실 우려 등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현재 독점구조의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금투업계 측 시각이다.
은행·보험 업계 역시 디폴트 옵션이 금투업권에만 독점적 권한을 부여하는 편파적 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타 업권에서 한국은 근속연수가 짧아 디폴트 옵션으로 실적배당형 상품을 장기 운용하기엔 적합하지 않고, 제도적으로 중도해지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금투업계는 "법 통과 발목 잡기가 의심된다"고 되받아친다.
선진국인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국민들이 퇴직연금만으로도 풍족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구조적 환경이 마련돼 있다고 한다. 한국은 퇴직연금 수익률이 최근 5년 동안의 최저임금 인상률 평균(7.8%)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금융업권은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 이른 시일 내 퇴직연금 수익률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건설적인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업계의 이전투구가 지속되는 사이 대다수 직장인들의 안정적 노후를 보장해야 할 도끼자루가 썩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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