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윤지혜, 윤선훈 기자]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합류한다. 벤처 1세대인 김 의장과 김 대표가 국내 경제 대표단체인 서울상의에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괴짜 산업'으로 여겨졌던 IT산업이 명실상부 국내 신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는 평가다.
17일 대한상의에 따르면 서울상의는 23일 의원총회를 열고 김 의장과 김 대표,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등 IT업계 인사를 서울상의 부회장으로 신규 임명한다.
서울상의 부회장단에 IT·게임업계 창업자가 이름을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부회장단엔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권영수 LG 부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굵직한 재계 인사와 동화약품·대성산업·DI동일 등 오랜 업력을 자랑하는 백년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서울상의 부회장단 명단에 일부 변화가 있을 예정으로, 김 의장과 김 대표 임명이 추진되고 있다"라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제조업 기반이었던 서울상의 부회장단에 새로 떠오르는 기업들이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 비대면 훈풍 타고 IT산업 韓 주류로 '우뚝'
디지털 경제 전환으로 IT산업 위상이 달라진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수순이란 분석이 주를 이룬다. 더욱이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비대면 수요가 급증하면서 국내 IT업계 기초체력도 탄탄해졌다.
실제 카카오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35% 늘어난 4조1천567억원을 기록하며 연 매출 4조 시대를 열었다. 영업이익은 4천560억원으로 121% 급증했다. 엔씨소프트 역시 연결 기준 매출이 42% 증가한 2조4천162억원, 영업이익은 72% 늘어난 8천248억원을 올리며 사상 최고 기록을 썼다.
이에 따라 국내 대기업 자산 순위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9월 기준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64개 대기업 집단의 자산 변화를 분석한 결과, 카카오는 재계 순위 23위에서 22위에 등극할 전망이다. 네이버는 41위에서 34위로, 넷마블은 47위에서 38위로 퀀텀 점프가 예상된다.
특히 네이버는 자산총액이 10조원을 돌파, 공정위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카카오는 지난 2019년 여기에 포함된 바 있다.
IT업계의 증시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국내 대표 빅테크 기업인 네이버(4위)와 카카오(9위)는 시가총액 10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작년 초만 해도 시총 23위였던 카카오는 비대면 훈풍을 타고 순위가 급등했다. 당시 27위였던 엔씨소프트 역시 SK·SK텔레콤 등을 제치고 현재 18위에 오른 상태다.
한국게임학회장인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 교수는 "IT업계가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기존 산업계에선 IT를 벤처로만 여겼으나, 코로나19 영향으로 이들 기업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중요 파트너란 점을 인정하게 된 것"이라며 "재계 스스로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셈"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부회장단에 게임사만 2곳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 유해산업으로 평가 절하됐던 게임산업이 주류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설명이다. 위 교수는 "그간 게임은 IT와 달리 중독·사행성 이슈 등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컸는데,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IT를 넘어 게임도 하나의 산업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 김범수·김택진 경영철학, 재계 화두로 떠올라
김 의장과 김 대표의 경영철학도 국내 산업계 화두를 던지고 있다.
김 의장은 최근 카카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위원회를 신설하고 ESG 경영을 직접 챙기기로 했다. 카카오만의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표로 4가지 중점 영역을 발표, 이를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카카오임팩트가 사회혁신가 11명을 지원하거나, 카카오가 업계 첫 '알고리즘 윤리 헌장'을 발표하고 전 직원 대상 교육을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나아가 김 의장은 재산 절반을 사회에 기부키로 했다. 김 의장이 보유한 카카오 주식은 약 10조원대로, 그 중 5조원을 기부할 계획이다. 현재 김 의장은 기부 서약을 준비 중이며, 재원 활용 방안에 대해 이달 내 임직원의 중지를 모은다. 국내 재계에서 사재를 털어 조 단위 기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주요 게임업체 중 ESG 경영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 실제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에서 게임사 중 가장 높은 B+ 등급을 받았다. 특히 사회 분야에서 B+등급을 받으며 2년 연속 등급이 올랐고, 지배구조 분야에서도 2019년보다 향상된 A등급을 받았다.
또 엔씨는 주주권리 보호와 이사회 투명성 유지를 위해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중을 높게 유지하고 있다. 사외이사 비율은 70%대로, 김 대표가 유일하게 사내이사 자리에 올랐고 그 외 기타비상무이사 1인, 사외이사 5인으로 구성됐다. 사외이사 구성도 여성·법무·회계 전문가, 수리과학 교수 등으로 다양하다.
내부적으로도 ESG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예로 엔씨는 올 초 기존 감사실을 윤리경영실로 확대 개편하고, 최근 서봉규 전 광주고등검찰청 전주지부 검사를 전무 직급으로 영입했다. 회사 관계자는 "ESG를 전담하는 조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비하고 ESG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감사실을 윤리경영실로 확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 IT업계 목소리, 서울상의 타고 힘 받을까
업계에서는 두 총수의 서울상의 합류로 IT업계 목소리가 힘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IT업계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한국게임산업협회·코리아스타트업협회 등 개별 산업협회를 중심으로 목소리를 내왔으나, 대한상의·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 5단체보다는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IT업계를 향한 규제 칼날은 더 매서워지고 있다. 정부·여당이 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데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통해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예고한 상황이다.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 문제도 심화하고 있어 개별 산업을 넘어 경제계가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IT업계 대표들이 서울상의에 합류한 만큼, 대한상의도 IT업계 이슈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협단체를 넘어 주요 경제단체에서도 IT업계 목소리에 힘을 보태줄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귀띔했다.
반면, IT업계 사회적 책임이 강화된 만큼, 업계 이슈만 대변하긴 어려울 것이란 반론도 있다.
유효상 숭실대 경영대학 교수는 "그동안 IT업계는 '성장기업'의 이미지가 커 이런저런 고충을 토로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위상에 걸맞게 행동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커질 것"이라며 "벤처·스타트업을 넘어 전체 산업을 대변하게 된 만큼, 기존 IT업계 목소리가 힘을 받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윤지혜 기자 jie@inews24.com 윤선훈기자 krel@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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