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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배신의 정치'를 국민께서 심판해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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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당선된 후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을 해주셔야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2015년 6월 25일 발언이다. 현직 대통령이 국무총리 이하 장관들을 불러 국정을 논하는 국무회의에서, 그것도 특정 정치인을 겨냥해 '배신자'로 지목하고, 다가올 20대 총선에서 반드시 그를 떨어뜨리라는 지시를, 소속 정당과 의원들과 지지자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진 시절이다. 그런데 그 '배신자'란 누굴 말할까. 다름 아닌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다.

도대체 유승민 원내대표가 무슨 일을 벌였기에 현직 대통령이, 그것도 대통령 본인 소속 정당 의원들이 직접 선출한 원내대표에게, 그토록 무지막지한 메시지를 던졌을까. 발단은 당시 야당과의 '국회법 개정안' 논의 때문이다. 정부의 시행령이 그 상위 법령과 충돌할 경우 입법기관인 국회가 시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였다.

2015년 7월 유승민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자신의 거취 논의를 위해 열린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정부 각 부처들이 A라는 법의 틈새를 B라는 시행령으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꽤 흔하다. 때로는 시행령이 모법의 취지와 정반대로 제정되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을 바로잡을 국회 내 논의는 일견 너무도 당연하게 들린다.

아무튼 여야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국회 상임위원회는 소관 행정부처 기관장이 제출한 시행령을 수정, 변경토록 '요청'할 수 있으며 행정부처 기관장은 이를 '검토해 처리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보고한다"는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내용인즉슨 입법부인 국회가 피감기관인 정부 부처들을 상대로, 명령도 아닌 '요청'을 하면 정부 부처들은 받아들일지 말지 한번 '검토'해 보고 처리한다, 라는 요즘 국회 분위기로는 믿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게 과연 국회가 맞긴 한가 싶을 정도로 소심해 보이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불과 5년 전 얘기지만···.

이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여야 원내대표와 국회의장이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청와대는 역대 대통령 임기 중 좀처럼 보기 어려운 '거부권'을 행사하고 곧바로 국회로 법안을 돌려보냈다. 물론 국회는 그 법안을 재의결할 권한이 있다. 그런데 시도조차 못했다. 왜?

대통령이 직접 여당 원내대표를 콕! 짚어 '배신자'로 부르며 무자비한 정치 보복을 공언했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여당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는 정부 부처의 발목을 잡을 방안을, 다른 사람도 아닌 야당 원내대표와 논의한다는 것은, 적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고 방식에선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사태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겸한 그 옛날 '3김 시대' 제왕들인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때도 없던 일이기도 하다. 졸지에 2015년 대한민국 의회 민주주의는 30년을 거슬러 80년대 신군부 시절로 되돌아갔다. 야당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말할 필요도 없이 여당과, 같은 당 출신 국회의장까지 깡그리 무시한 이같은 청와대의 태도에,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잠깐 고민했을 뿐 아주 흔쾌히 동조했다. 불과 보름 사이 당 지도부와 의원총회는 번갈아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사퇴를 종용, 끝내 관철시켰다. 그는 다음해 공천에서 예정된 수순대로 탈락했고, 끝내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두둔한 쪽은 오히려 야당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대통령의 그 발언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정의당과 함께 비판 성명을 냈다.

새로 선출된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대통령을 '알현'한 자리에서 "민생과 경제를 살리는데 '코피'를 쏟겠다"고 여보란듯 '충성'을 맹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흐뭇'해 하셨다, 는 당시 언론 기사들이 포털을 도배했다. 비판? 감히 누가. 거듭 말하지만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대통령은 그 엄혹한 '메르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마다 '30%'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했으니 과연 선거의 여왕이시다, 라고 언론들은 습관적으로 보도했다. 정말 환상적인 '의회 민주주의' 아닌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예고했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과 주요 혐의도 포함해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회 탄핵안 가결은 2016년 12월 9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직 파면 선고는 그 다음해 3월 10일이다. 서울구치소 수감은 같은 달 31일이니 벌써 4년이 다 돼 간다.

2015년 6월 청와대 국무회의 '배신의 정치' 발언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 [사진=청와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이 뜬금 없는 '사과 예고'를 두고 당내 반발이 만만찮다. 그 반응들과는 별개로 의문이 든다.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의 지난 9년 과거에 대해 김종인 비대위원장 입장에서 무엇을 사과한다는 것인가. 그는 비대위원장으로 당 바깥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며 더구나 '유승민 사태'로 국회가 사달이 난 2015년 연말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했다.

국민의힘은 현 정부와 여당의 검찰개혁, '추·윤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 독재'까지 언급하며 '의회 민주주의 파탄'을 성토하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본인은 "히틀러 치하 독일이 생각난다"고까지 언급하며 여당의 입법 독주를 혹심히 비판하기도 했다. 보수 정당 차원에서 지금의 검찰개혁, 공수처법의 모순과 빈틈은 얼마든 지적하고 비판할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지난 9년에 대해 정말 무엇을 사과한다는 것인지, 그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있긴 한지만큼은 반드시 답변해야 한다. 지난 정부들의 반헌법적,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태와 무수한 정책혼선 및 국정실패를 사과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두 전직 대통령의 법 위반 행위들과 구속 수감으로 인한 사회적 논란에 대해서만 도의적으로 사과한다는 것인지 말이다.

무엇보다 국민의힘은 그 지난 두 정권의 집권 여당이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그 사과 내용이 당시 대통령들의 소속 정당으로서, 과거 국정의 핵심 파트너로서 '의회 민주주의'를 앞장서 파괴한 데 일조한 책임까지 포함하는지 여부를, 김 비대위원장은 물론 국민의힘 다수가 함께 답해야 한다.

그 사과의 형식과 시점은 물론 내용과 논리와 성격이 불명확하기만 한데,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내년 4월 재보선'을 언급하며 사과의 필요성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 메시지가 여전히 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처럼 독선적, 일방적으로 들린다. 국민의힘 내 적잖은 인사들이 지금 그 필요성마저 부인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년 보궐선거 유권자인 서울·부산시민들 나아가 2022년 대선을 앞둔 전국의 유권자들은 그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까. 우리 당은 어쨌든 사과했다, 그러니 이제 정부와 여당을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주셔야 한다는 식이라면 과연 진정성을 느낄 필요가 있긴 할까 의문이다.

/조석근 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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