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강길홍 기자] "마누라와 자식만 빼놓고 다 바꿔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개최한 사장단 회의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외친 말이다. 신경영 선언은 국내 최대 기업으로 꼽혔던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올라서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당시 이 회장은 미국에서 싸구려 취급을 받는 삼성전자 제품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VTR은 경쟁 제품에 비해 부품은 많으면서도 가격은 오히려 쌌다. 삼성 TV는 미국 베스트바이 매장의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쌓여갔다. 세탁기는 금형이 잘못돼 플라스틱 모서리 부분을 일일이 칼로 잘라내고 공급하는 일이 벌어질 정도로 품질이 형편없었다.
이 회장은 독일 출장을 앞둔 6월 4일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후쿠다 다미오 디자인 고문을 만났다. 후쿠다 고문은 수년째 삼성에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있었지만 삼성의 임원들은 이를 무시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후쿠다 고문에게 '경영과 디자인'이라는 보고서를 받았고, 새벽 5시까지 대화를 나눴다.
이 회장은 프랑크프루트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보고서를 보고 또 보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동안 후쿠다 고문의 각종 조언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회장 역시 품질관리를 거듭 강조했음에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이 회장은 결국 직접 나서기로 결심했다. 1988년 삼성그룹 2대 총수로 취임한 뒤 5년여 동안 이어왔던 은둔을 마무리하고 경영 전면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 회장은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서울에 근무하는 200여명의 중역들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날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이들 앞에서 신경영을 선포했다.
신경영 선언은 삼성이 '양보다 질'을 중요시하게 되는 초석이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원했던 품질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신경영 이후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품질을 강조하는 문화가 피어났지만 현장에서 완전히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이 회장은 휴대전화 화형식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면서 다시 한번 품질 강조했다.
1995년 삼성전자 무선전화기사업부는 제품 출시를 서두르다 불량률이 11.8%까지 높아졌다.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서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사업을 이어갈 수 없다는 위기감도 감돌기 시작했다.
이에 이 회장은 당시 휴대전화를 제조하고 있던 구미사업장을 찾았다. 이 회장은 불량 휴대전화 15만대를 수거해 운동장에 쌓아놓고 2천여명의 임직원이 모두 태워 버렸다. 직원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품질의 중요성을 되새겼다. 이는 삼성이 전 세계 휴대전화 1위 사업자로 올라서는 계기가 됐다.
품질을 앞세운 삼성은 글로벌 시장에서 주요 경쟁자들을 차례로 추월하기 시작했으며 어느새 선두주자로 올라서게 됐다. 이 회장은 반도체, TV,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 주요 사업 분야에서 삼성을 글로벌 1위로 이끌면서 세계적인 경영자로 평가받았다. 신경영은 지금까지도 삼성 경영철학의 바탕이 되고 있다.
한편 이 회장은 신경영 이후에도 창조경영, 마하경영 등을 새로운 화두로 제시하며 삼성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특히 2006년 새로운 경영화두로 제시한 창조경제는 삼성이 글로벌 인재 확보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직전 마지막으로 강조했던 경영철학은 마하경영이다. 추격자로서 선도자로 올라선 삼성은 서서히 한계에 부딪힐 수 있는 만큼 미래 변화의 흐름을 주도할 신기술 개발 등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가 내세우는 '초격차' 역시 마하경영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된다.
강길홍 기자 sliz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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