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권준영 기자] 국가필수예방접종(NIP)용 예방접종용 백신 500만도즈(1도즈는 1회 접종분) 중 일부가 유통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예방접종 사업이 일시 중단됐다. 자칫 입찰가 수백억원이 허공에 날아갈 상황에 놓인 가운데, 해당 유통 도매상의 책임 문제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백신 유통을 맡은 신성약품 김진문 회장은 "국민께 송구하고 질병관리청의 조사와 향후 대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23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문제 백신 물량은 정부가 입찰로 확보한 1259만명분(도즈) 중 22일 접종을 위해 풀린 500만도즈 가운데 일부다. 백신이 의료기관에 공급되는 과정 중 냉장온도가 유지되지 않았던 것으로 정부는 파악했다. 정부는 일단 전체적인 품질검증을 위해 전체 접종 대상자에 대한 예방접종을 중단한 상태이다. 500만도즈에 대한 품질검증을 진행할 계획으로, 만일 최악의 상황으로 전부 폐기처분해야 할 경우 무용지물이 되는 낙찰금 규모는 400억원대에 이른다.
정부가 밝힌 이번 백신 유통 업체는 신성약품이다. 국가 독감백신 무료접종사업의 유일한 유통 의약품도매상으로, 이번에 처음 백신 유통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
신성약품은 이달 초 질병관리청이 실시한 2020~2021 절기 독감 백신 국가조달 입찰에서 낙찰됐다. 낙찰 규모는 약 1259만명분(도즈)으로 1도즈당 8000~9000원, 총 1000억원대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이번에 공급된 500만도즈는 약 400억원 규모가 되는 것이다.
백신이 정상적으로 의료기관에 공급된다면, 독감백신을 접종한 의료기관은 정부에 해당 비용을 청구하고 그 중 공급가를 백신 제조·생산 제약사에 준다.
하지만 물량이 폐기될 경우엔 의료기관이 제약사에 폐기한 규모만큼 줄 돈이 사라지게 된다. 정부가 이를 보상한다면 건보재정이 쓰일 수밖에 없다. 정부는 조사를 통해 신성약품에 대한 약사법 위반 여부를 살피겠다는 방침이다.
약사법 47조에 따르면, 의약품 공급자는 의약품 등의 안전 및 품질 관련 유통관리에 책임이 따른다. 이를 위반할 시에는 1년 이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질병청 관계자는 "신성약품의 위탁을 받은 일부 배송업체가 냉장차를 이용해 백신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백신이 상온에 노출됐다"라며 "정확히 어느정도 물량에 문제가 있는지는 신고 내용과 업체 진술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워 조사를 통해 확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질병청은 신성약품의 백신 공급을 중단하고, 유통과정에서 생긴 문제들에 대해 조사 중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백신 품질검사와 관계부처 합동조사를 통해 신성약품과의 계약지속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신성약품 김진문 회장은 공식입장을 내고 "우선 백신 공급부터 빠르게 정상화한 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분은 질병관리청의 처분을 달게 받겠다"라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김 회장은 백신 배송 과정에서 문제가 된 물류회사를 교체하는 한편 질병관리청에 대처 방안을 설명하겠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이번 사고가 의약품 '콜드체인(cold chain)'의 끝단에서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콜드체인은 제품 생산 단계부터 최종 소비 단계까지 온도에 따라 변형·손상할 가능성이 있는 의약품을 저온 상태로 일정하게 유지하는 유통망을 의미한다.
신성약품 측 설명에 따르면, 신성약품은 제약사에서 백신을 가져와 전량 경기도 김포시의 물류센터에 보관했다. 이때까지는 모든 과정이 적정 온도인 섭씨 2~8℃를 유지했다고 한다.
문제는 배송 과정에서 불거졌다. 신성약품은 일부 물량의 배송을 의약품물류전문기업 S사에 맡겼다. S사는 11t 트럭에 백신을 싣고 신성약품의 김포 물류센터에서 지역 거점에 위치한 S사의 물류센터로 이동했다.
S사 물류센터에 도착한 백신을 지역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S사는 1t 트럭으로 의약품을 배송하는 지역별 물류업체에 재하청을 줬다.
김 회장은 "1t 트럭이 병원에 백신을 배송하는 마지막 콜드체인에서, 일부 백신이 짧은 시간 상온에 노출됐다"라고 했다.
일선 현장에서 나온 '백신을 종이박스로 전달했다'는 문제에 대해선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백신 제조사에서 우리 업체로 백신 수 만병이 올 때도 종이박스 형태로 배달된다. 2~8도로 유지되는 냉장차로 운송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라며 "우리가 종이박스로 납품한 것도 냉장차에 담아 배달했고 병원에 도착해서도 냉매가 든 캐리어에 담아 의료진에 바로 전달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노출되는 건 문제가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회장은 "냉장차가 아닌 일반 트럭으로 운반할 때는 아이스박스에 냉매를 넣어 적정 온도를 유지해 납품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냉장차로 옮길 때) 백신을 아이스박스에 포장하면 오히려 냉매가 녹아 백신이 변질할 가능성이 있다"라며 "종이박스에 백신을 담아 냉장차로 운송하면, 아이스박스로 포장·운송하는 것보다 오히려 온도 유지·측정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신성약품이 올해 처음 백신 유통을 맡아 미숙함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국가접종용 백신 유통을 맡게 된 게 처음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에도 백신 제조사에서 병원으로 백신 민간 유통 사업을 했었다"라고 해명했다.
/권준영 기자 kjykjy@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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