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우리은행 영업점 직원의 비밀번호 임의변경 사건에 대한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금전적인 피해가 확인된 게 없는 만큼, 중징계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이번 사안은 일부 영업점의 '일탈'이라고 보긴 어렵다. 은행권 전반에 퍼진 성과 중심의 영업점평가지표에서 나온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재발 방지가 되려면 보다 고객보호를 강화하는 쪽으로 평가지표가 개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16일 오후 '우리은행 영업점 직원의 고객 비밀번호 임의변경'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
이 사건은 지난 2018년 우리은행 일부 영업점 직원들이 1년 이상 인터넷 뱅킹에 접속하지 않았던 휴면 고객들의 비밀번호를 동의 없이 변경하면서 시작됐다.
인터넷뱅킹을 처음 사용하면 고객에게 숫자로 조합된 임시 비밀번호가 부여되는데, 이점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활성 계좌를 활성화 시키면 실적이 올라가는 당시 영업점평가지표(KPI)를 악용한 것이다.
우리은행 감사팀은 지난 2018년 중순 이 같은 사실을 적발하고, 그해 10월 금융감독원 경영실태평가 시 해당 사실을 보고했다. 또 해당 건에 대해선 실적 평가에서 제외하고 KPI에서도 문제가 된 내용을 즉시 삭제했다.
금융감독원은 제재심에서 전자금융거래법을 주된 제재 근거로 삼아 징계 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선 고객의 금전적인 피해가 없었다는 점에서 경징계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보다 중요한 건 확실한 재발 방지다. 업계는 이번 사안이 비단 특정 은행의 영업점에서 발생한 일탈이 아니라, 극심한 성과 압박에서 나온 구조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눈에 보여 지는 성과를 중시하는 KPI 구조가 유지되는 한, 은행권 어디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압박을 많이 받는 영업점 직원으로선 자신들을 평가하는 지표인 KPI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라며 "순간 잘못된 판단을 한 건 맞으나, 그렇게 행동하게 한 KPI도 짚어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KPI에 대한 문제가 지적된 건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난해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도 결국 정량지표에 치중된 KPI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깡통 계좌'도 KPI가 만들어낸 폐해다. 지난 2016년 정부는 국민의 금융재산을 늘리겠다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만들었는데, 금융권에 '계좌 수'를 강조한 탓에 모든 영업점이 ISA 계좌 개설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잔액이 1만원밖에 되지 않는 깡통계좌가 수없이 양산됐다. 오직 실적만이 강조되면서, ISA 도입 취지는 무색해졌다.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는 수익을 포기하고서라도 고객 보호 중심으로 KPI를 재편해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사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배상 비용 지출을 막을 수 있을뿐더러, 브랜드 이미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시중 은행의 KPI는 상품을 판매하라고만 했지, 그에 대한 리스크는 고려되지 않았다"라며 "사고가 나면 브랜드 이미지에 타격은 물론이고, 배상 비용도 지출해야하는데, 그에 대한 부분을 돈으로 환산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객 보호를 강조할 경우 눈에 보이는 수익은 크지 않겠지만 리스크 비용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이미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앞으로는 KPI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비중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융사 '웰스파고'는 고객 만족도를 주된 평가 지표로 삼고 있다. 고객 수 평가 시에도 3개월 이상 거래를 유지 중인 '핵심 고객'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은행의 영업점 성과평가 방향성에 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내은행의 실적 위주 KPI 운영은 과당경쟁과 불완전 판매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장기적으로 은행의 건전성 악화, 대규모 소비자 피해 유발, 신뢰도 저하 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영업점 성과평가를 현행 수익성 등 단기실적 지표뿐만 아니라 고객 만족도, 건전성 등 장기성과 지표를 함께 운용함은 물론, 조직의 의사결정 프로세스 등을 개선함으로써 은행의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 보호 중심의 KPI로의 개선 움직임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올해 ▲고위험 상품 판매 비중 50% 이하 ▲주식형·혼합형, 채권형·대체투자 등 펀드 분산판매가 이뤄지도록 KPI를 개편했다. 고객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이다. 우리은행도 올해부터 ▲기존 24개 평가지표를 10개로 대폭 축소 ▲고객 수익률 지표 배점 확대 ▲KPI 목표 반기에서 연간기준으로 부여 등의 내용으로 KPI를 개편했다.
서상혁 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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