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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에너지가 없어요" 이회수 연출가 한마디에 시들했던 '까마귀'도 펄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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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오페라 '까마귀' 2월7~8일 공연 앞두고 막바지 연습 열중

[아이뉴스24 민병무 기자] “맥아리가 없어요. 에너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검은 날개 펴고~’ 이 부분에선 기운이 넘쳐야 해요. 온전히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움직임이 왜 이렇게 둔해요. 설날 맛있는 음식 많이 드셨죠. 밖에 나가서 열량을 불태우고 들어오세요. 자~빨리~빨리~빨리~.”

요즘 말로 카리스마 작렬이다. 오페라 연출가 이회수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또렷했다. 단호했다. 그의 한마디에 풀죽은 노래는 파워를 장착했고 굼뜬 동작도 재빨라졌다. 출연자들은 그의 손가락을 따라 착착 자리를 찾아갔고,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아이돌 그룹의 ‘칼군무’와 닮았다. 이쯤 되면 매직이다. 시들시들한 장면은 금세 활력이 넘쳤다.

이회수 연출가가 2월 7~8일 공연되는 창작 오페라 '까마귀'의 출연자들에게 연기를 코칭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오는 2월 7일(금)과 8일(토)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되는 라벨라오페라단의 창작 오페라 ‘까마귀’. 연출을 맡은 이회수와 출연 성악가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28일 서울 서초동 라벨라오페라단 연습실은 후끈했다. 살짝 스포일러 노릇을 해본다.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100% 출석이다. 엄마 역의 소프라노 강혜명과 최영신, 막내 역을 맡은 테너 서필과 김지민, 누나로 변신하는 소프라노 한은혜와 이정은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번갈아 가며 역할을 소화했다. 또 베이스바리톤 양석진(아빠 역), 바리톤 장성일(형 역), 베이스 전태화(남자 역), 소프라노 홍선진(여자 역) 등도 함께 출연하는 메트오페라합창단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열공모드다. 지휘를 맡은 구모영 역시 음악과 연기의 합을 살펴보며 힘을 보탰다. 다음달 공연에서는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웅장하고 섬세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선사한다.

이회수 연출가가 2월 7~8일 공연되는 창작 오페라 '까마귀'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까마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 창작 레퍼토리 발굴 지원사업인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2019년)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이다. 극작가 고연옥의 희곡 ‘내가 까마귀였을 때’가 원작으로, 작곡가 공혜린의 손끝에서 오페라로 재탄생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한 가족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동반자살을 계획한다. 부모는 너무 어린 다섯 살 막내만큼은 살리고 싶어 놀이공원에 버린다. 하지만 자살은 실패해 애꿎은 막내만 잃어버린다. 그 후 13년이 흐른다. 경찰의 신원조회 과정에서 막내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먹을 것을 보면 무조건 훔치고 빼앗아 ‘까마귀’로 불려온 막내는 자신만 빼놓고 평온한 삶을 살아온 것에 복수라도 하려는 듯 가족에게 날을 세우며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

이회수 연출가가 2월 7~8일 공연되는 창작 오페라 '까마귀' 출연자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이회수 연출가가 2월 7~8일 공연되는 창작 오페라 '까마귀' 출연자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그냥 보기만 해도 흥미진진한데 이 연출가는 옥에 티를 잡아낸다. “서필 선생님. 부르는 아리아가 뒤를 받쳐주는 합창단 노래와 너무 동떨어져 있어요. 하나가 되어야 해요, 하나가. 그리고 일어나고 나올 때 머뭇대지 마세요.” 매의 눈을 번뜩이며 막내의 소매를 이리로 저리로 끈다. 동선 하나하나까지 소홀함 없이 꼼꼼하게 체크한다. 무릎도 같이 꿇고 노래도 같이 부른다. 이 사람 참 대단하다. 가사를 모두 외웠나보다. 어느 배역을 코칭하든 똑같이 아리아를 부르며 팁을 준다. 멀티플레이어다.

이회수 연출가가 2월 7~8일 공연되는 창작 오페라 '까마귀' 출연자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이회수 연출가가 2월 7~8일 공연되는 창작 오페라 '까마귀' 출연자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일반적으로 오페라는 가수가 이탈리아어로 노래하고 관객은 한글 자막을 읽어 스토리를 파악하잖아요. 하지만 이번 ‘까마귀’는 우리말로 부르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관객과 소통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정확한 발음의 전달과 감정의 교류가 중요합니다. 즉 소리의 컬러와 단어가 미세한 감정으로 덧입혀져 객석의 마음을 울리도록 감정연기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연출가 이회수’가 꽃길만 걸은 것은 아니다. 그는 원래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악을 했다. 제대로 노래 한번 배워보겠다며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다보니 이건 뭐지 저건 뭐지 온갖 궁금증이 생겼다. 이전에는 무대를 1차원적으로만 봤는데 어느 순간 위도 보이고 옆도 보이고 또 뒤에 있는 스태프도 보이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어느날 룸메이트 동생이 ‘언니 무대미술 한번 배워보면 어때요. 소질 있는 것 같은데’라며 권유를 했어요. 당연히 콧방귀를 꿨지요. 말도 안된다며 손사래를 쳤어요. ‘내가 이번에 시험 보는데 한번 재미삼아 응시하고 떨어지면 그냥 노래하면 되잖아’ 이렇게 말해서 아무 생각없이 봤는데 덜컥 합격을 했어요.”

창작 오페라 '까마귀' 출연진들이 연습공연을 하고 있다. 위쪽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석진, 최영신, 장성일, 서필, 이정은. [정소희 기자]
양석진, 서필, 장성일, 최영신이 창작 오페라 '까마귀' 연습공연을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오페라 연출의 매력은 무궁무진합니다. 평면적인 악보속의 인물들을 현재로 불러내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연출의 역할입니다. 학생들에게도 이런 말을 자주 하는데 그때마다 설레고 흥분돼요. 캐릭터에 생명을 주는 일! 아 얼마나 멋집니까.”

그는 라벨라오페라단과 현재진행형 환상케미를 뽐내고 있다. 지난 2014년 <라보엠>을 시작으로 <안나 볼레나(2015년)> <안드레아 세니에(2016년)> <가면무도회(2018년)> <마리아 스투아르다(2019년)> 등 굵직한 작품에서 짝을 이뤘다.

“인연을 맺은 지 벌써 7년이 됐네요. 돌이켜보면 제 필모그래피(filmography)에 중요한 작품들을 라벨라와 함께 했어요. <안나 볼레나>와 <마리아 스투아르다>는 국내 초연 압박감 때문에 긴장도 많이 했지만, 이처럼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은 작품을 맡으면 기쁨 아드레날린이 분비됩니다. 어느 연출가든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데 라벨라는 이런 건강한 자극을 주는 고마운 존재죠.”

양석진, 강혜명, 이정은이 창작 오페라 '까마귀' 연습공연을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끈끈한 정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무소불위의 권력’ 때문이다. 이강호 단장은 틀에 박힌 작품이 아니라 도전의식을 북돋워주는 ‘힘든 작품’을 선택해 연출가에게 엄청난 숙제를 안겨 주지만, 그 대가로 무대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다. 이 연출가는 “무대에 관련된 모든 콘셉트, 즉 세트·의상·조명·분장 디자인은 물론이고 배우의 동선 등등 모든 것이 저의 손에 달려있다”라며 “그만큼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 많은 작품을 함께 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믿고 보는 오페라단이라는 별명을 얻은 데는 ‘믿고 맡기는 오페라단’이 비결이었던 셈이다.

서필이 창작 오페라 '까마귀' 연습공연을 하고 있다. [정소희 기자]

한국 오페라 발전 방향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소극장과 대극장 오페라의 아름다운 동행에 '까마귀’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드러냈다.

“젊은이들이 너무 즉각적인 유희에 익숙해져 있어요. 클래식과 오페라는 자세히 보아야 아름다운 장르입니다. 고전은 처음엔 딱딱해서 어렵게 느껴지지만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인문이 그대로 담겨있어요. 오페라 역시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어린 친구들에게 처음부터 인생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면 아마 멀리 도망갈 겁니다. 오페라도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 많고 또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진화합니다. 소극장 무대는 다양한 오페라를 관객이 쉽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상위 단계인 국립과 시립 등 대극장에서는 작품성 있는 오페라로 승부해야 합니다. 즉 다양성과 예술성의 피라미드를 쌓아야 합니다. 그럴려면 일단 ‘까마귀’ 먼저 보는게 정답이죠.(웃음)”

/민병무 기자 min6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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