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인생 궤적이 대개 비슷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첨단 분야인 만큼 대학시절부터 이 분야 전공자가 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인터넷 사업의 경우 더 그렇다. 인터넷 사업이란 것이 기껏해야 10년 미만의 역사를 가진 만큼 대기업 출신의 CEO를 제외하면 대개 대학 IT 전공자들이 재학 중이나 졸업 후 회사를 차린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유명 인터넷 기업의 CEO 가운데 30대와 20대가 주류인 점이 이를 반영한다.
그런 점에서 엔터테인먼트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는 인포렉스의 박진(50) 사장은 여러 모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다. 우선 150명 규모의 적지 않은 이 회사가 서울이 아니라 광주에 있다는 사실부터가 이채롭다.
무엇보다 박 사장의 경우 이쪽 업계에서는 '환갑이 지났다'고 표현될 만큼 노장인 점에 눈길이 끌린다. 변화무쌍한 트렌드를 따라 잡는 게 닷컴 사업의 핵심적 경쟁 요소라 할 때 50대는 좀 무거운 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는 승승장구 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박 사장은 넉넉치 않은 집안의 5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한국 사회에서 50대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전형적인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그에게도 '돈벌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가 20대일 때 유행했던 돈벌이는 중동의 건설 특수였다. 그 또한 여기에 합류했다. 군대를 갓 제대한 해인 1977년 풍운의 꿈을 안고 쿠웨이트 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다.

박 사장은 그 때를 회상하며 눈가를 살짝 적시는 듯 하였다.
"군대를 갓 제대했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잡부'였다. 그렇게 2년간 쿠웨이트에서 닥치는 대로 허드렛일을 하며 지냈다."
귀국 후 박 사장은 잡부로 모은 돈을 밑천으로 '유리 사업'을 시작했다.
유리 사업은 그의 청장년기를 오롯하게 쏟아부는 사업이었다. 무려 22년이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22년동안 열심히 한 우물을 파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 손목을 자유롭게 쓸 수 없을 정도로 큰 사고였다.
하지만 박 사장은 절망하지 않았다. "내겐 슬퍼하거나 좌절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삶과 사업에 대한 불굴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 때 박 사장은 유리 사업을 접고, 곱창구이 집을 차렸다. 당시만 해도 광주에서는 곱창구이 집이 드물었다고 한다. 감칠 맛 나는 곱창과 소주 한 잔에 매료된 손님들 덕분에 곱창집은 나날이 번창하였다.
그런데도 왠지 박 사장은 곱창구이 사업으로는 양이 안찼다. 유리 사업과 같은 규모 있는 사업에 대한 '갈증'을 떨쳐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전국에 PC방과 함께 초고속 인터넷이 확산될 즈음, 박 사장은 인터넷 기반 사업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느꼈다고 한다.
곧바로 곱창집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박 사장은 1999년 인포렉스를 설립, 웹 에이전시 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40대 중반까지 접어들도록 오프라인에서 일을 하다 인터넷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을 법 하지만, 박 사장은 "정말 어려운 것이 있었다면 사업을 접었을 것"이라며 "문제가 노출되기 전에 미리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비즈니스 감각을 내비친다.
박 사장이 일찍이 점 찍어둔 사업은 웹 에이전시가 아니라 채팅·미팅 사이트였다. "인터넷 시대에 길거리에서 모르는 이성에게 말을 걸어 데이트를 하는, 이른바 '헌팅'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굳게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조금 열고, 모르는 이성과 자유롭게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박 사장이 곧바로 채팅·미팅 분야에 뛰어들지 않았던 것은 유료 결제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인터넷=공짜'란 사고가 만연해 있던 그 당시에도 박 사장은 철저하게 유료 모델을 고민했던 것.
그러다가 2000년 말부터 휴대폰 결제 체계가 도입되면서 인터넷에서 본격적으로 소액 결제가 가능해지자, 박 사장은 '이 때다' 생각하고 성인 전용 미팅·채팅 사이트 '클럽5678'을 오픈했다.
"'성인', '미팅'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어 불순해 보이지만, 이곳처럼 건전한 채팅 사이트도 드물 것이다. 원조교제? 성인끼리 만나는데 무슨 원조교제 인가?"
성인 채팅 사이트하면 왠지 원조교제, 탈선의 장소로 인식되기 쉽지만, 박 사장은 철저히 그러한 요소들을 없애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성인인증은 필수적이었고, 누구든 광고나 음란성 글, 욕설 등을 올리는 이들은 곧바로 이용정지나 강제탈퇴 조치를 내렸다. 사이트 관리하는 직원들을 여러 명 두고 메일이나 게시판의 문의사항에 대해선 99% 답변해주기도 했다.

이와 함께 채팅 사업의 초기 단계였던 그 당시부터 누가 프로필을 봤는지 알려주는 기능, 쪽지 보내기, 게임, 아바타 등을 적절히 도입하며 성장을 거듭해 현재 회원수 240만 명의 건실한 사이트로 키워냈다.
"아프리카에서도 코카콜라 하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코카콜라처럼 세계인이 누구나 함께 대화하고 즐길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고 싶다."
이제 박 사장은 세계를 무대로 하는 엔터테인먼트 포털 사업을 시작했다.
"초창기의 인터넷은 국경이 없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자국어로 다른 나라 사람과 의사소통 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은 마련되지 못했다. 아시아든 아프리카든 유럽이든 각자 자기네 언어로 통용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을 때, 인터넷은 진정 국경 없는 자유지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박 사장은 이를 목표로 지난 18일 엔터테인먼트 포털 '시즈모닷컴'을 오픈 했고, 다국 언어를 연동해줄 수 있는 기술 개발에도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박 사장은 "인포렉스는 아직까지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하는 단계"라며 "벌써부터 대형 포털 사이트들과 경쟁할 생각도 없을뿐더러, 그러고 싶어도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클럽5678'이 한 두 명씩의 이용자를 꾸준히 모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용자들의 성향을 살피고 만족을 극대화시켜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올라가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후원을 해주는 것도 아닌 만큼 대규모 프로모션으로 회원을 싹 끌어오는 전략을 펼치지는 않겠다는 것.
그러나 20년 이상 사업가로 승부수를 던져온 기질이 어디 갈까. 박 사장은 "내년부터 집중적으로 마케팅을 벌여 엔터테인먼트 포털 세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올 안에 직원 수를 150여 명까지 늘여 본격적으로 인터넷 사업을 펼치겠다는 박 사장은, 지방에 있다보니 우수 인력을 채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그는 회사를 서울로 옮길 생각은 없냐는 질문에 "다들 서울가면 지방은 어쩌겠는가. 그냥 광주에서 열심히 해보겠다"며 소박하고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권해주기자 postma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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