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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돋보기] '스카이·베가' 팬택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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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에 살펴보는 이동통신 연대기 #22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 1세대(1G)부터 5세대통신(5G) 도입기까지 한눈에 살펴보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연재 중입니다 -

2014년 이동통신 3사의 순차 영업정지 악몽이 끝난 후 팬택은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절치부심해 제작한 신규 스마트폰인 '베가 아이언2'는 출시일이 계획보다 뒤로 밀려 났다. 그 사이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경쟁의 기회마저 박탈 당했다.

"메탈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물질입니다"라는 카피와는 다르게 팬택은 강하지 못했다.

팬택은 초기 LTE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점유율 2위를 수성했다.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팬택은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했다.

사실 팬택은 시작은 미약했다. 지난 1991년 당시 창업주인 박병엽 부회장은 직원 6명과 자본금 4천만원으로 팬택을 설립했다. 1992년 4월 무선호출기 내수 및 수출 판매를 시작했다. 팬택의 첫 제품군인 PP X01 시리즈가 나온 때다. 시작은 작았지만 성과는 대단했다. 같은해 팬택은 매출 28억원을 기록하면서 작은 고추가 맵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무선호출기 시장에서 가능성을 엿본 팬택은 1997년 CDMA 단말기 사업을 시작했다. 사세는 당연히 확대됐다. 같은해 CDMA 이동전화 단말기 생산을 시작한 후 6월 시티폰 CT-2 플러스를 출시했다. 1998년에는 당대 1위인 모토로라와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같은해 'IM-700'을 개발해 세상에 내놨다.

팬택은 2001년 전환기를 맞는다. 당시 팬택보다 규모가 더 컸던 현대큐리텔을 인수한 것. CDMA에 이어 GSM 단말기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후 2005년에는 SK텔레콤이 운영했던 SK텔레텍을 인수하면서, 해외 시장에도 발을 들였다. 소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스카이(SKY)' 브랜드의 탄생을 알린 때이기도 하다.

팬택은 급속한 성장을 이루는데 성공했지만 그에 따른 반발력도 상당했다. 해외 진출을 너무 서두른 탓인지 팬택은 2007년 워크아웃을 맞았다. 부침은 있었지만 팬택은 다시 일어났다. 2011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하기에 이른다. 이 때 팬택은 국내 스마트폰 점유율 2위를 수성하고 있었다.

워크아웃 당시에도 팬택은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2010년 5월 첫 스마트폰 '시리우스'를 SK텔레콤을 통해 출시했다. 89만9천800원의 고가 하이엔드 모델이었다.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한 모델로 3.7인치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와 퀄컴 스냅드래곤 모바일AP를 장착했다.

당시 스마트폰의 유통의 주체는 이통사였다. 그러다보니 제조사에서 나온 모델은 특정 이통사에 단독 출시되거나 타 이통사에서는 그에 맞게 커스텀돼 다른 이름으로 판매됐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갤럭시S'는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됐지만 KT에서는 '갤럭시K', LG유플러스에서는 '갤럭시 U'로 출시됐다. 성능도 다운그레이드됐다.

팬택 '시리우스'도 마찬가지였다. 시리우스는 KT에서는 '이자르'라는 이름으로 LG유플러스에서는 '미라크'라는 이름으로 커스텀돼 판매됐다. 예외적으로 '미라크'는 SK텔레콤에도 도입된 바 있다.

시리우스가 등장한 2010년은 '스카이'에 이은 팬택의 스마트폰 브랜드 '베가'가 탄생한 해이기도 하다. 2010년 7월 30일 SK텔레콤을 통해 '베가'가 세상에 나온다. '베가'는 초기 제품명에 불과했으나 이후 브랜드로 승격된다. CF모델로 배우 차승원을 대동했다. 가격은 92만7천300원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 하이엔드 폰에 정면대결을 펼쳤다.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된 '베가'는 KT와 LG유플러스에 맞춰 '베가 Xpress'라는 이름으로 보급된다.

팬택은 '베가'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승격시키고, 여성 특화 브랜드로 '이자르'를, 보급형 계열은 '미라크'로 잠정 결정한다. 다만, 이 브랜드 라인업은 결국 '베가'로 통합됐다.

2011년 6월 10일 팬택은 삼성전자 갤럭시S, 애플 아이폰4와 대결할 모델로 '베가 레이서'를 내놓는다. 이전과는 다르게 '베가 레이서'는 이통3사에 동시 출시됐다.

당시 국내 최초 듀얼코어 스마트폰이라는 마케팅 전략 포인트와 '레이서'에 집중해 다양한 프로모션을 전개했다. 배우 이병헌을 광고모델로 기용했으며, 콘서트를 열고 경품으로 스포츠카인 페라리를 걸었다. 공격적인 마케팅 투자에 결실도 확실했다. '베가레이서'는 누적판매량 180만대를 달성할 정도로 팬택 내부에서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여줬다.

'베가 레이서'의 성공은 팬택 박병엽 부회장의 결단과 직원들의 포기를 모르는 열정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 때 팬택은 워크아웃을 졸업하게 된다.

박병엽 부회장의 일화는 여럿 있으나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면, 삼성전자가 갤럭시S2를 1.2GHz 클럭속도의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장착한데 대항하기 위해 퀄컴 측을 찾아가 AP 성능 향상을 꾸준히 요구한 사례를 들 수 있다. 당시 퀄컴도 불가능하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팬택의 집념에 두손 들었다는 후문이다. 박 부회장 뿐만 아니라 주요 임원들도 직접 미국 퀄컴 본사를 찾았다.

2011년 7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나란히 4세대통신(4G) 롱텀에볼루션(LTE)를 상용화했다. 팬택도 LTE 스마트폰 준비를 서둘렀다. LG전자보다 근소한 차이로 '베가 LTE'를 SK텔레톰을 통해 먼저 내놨다. 이 때 팬택은 또 다른 차별화를 위해 사용자인터페이스 브랜드로 '플럭스(FLUX)'를 전면에 내세웠다. UX 자체를 브랜드화해 알릴 정도로 자신감이 있었던 시기다.

이 후 SK텔레콤과 KT에는 공용모델인 '베가 LTE M'을, LG유플러스에는 '베가 LTE EX'를 출시했다.

LTE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팬택은 기세를 몰아 2012년 5월 11일 이통3사를 통해 대표 모델은 2세대 '베가 레이서2'를 내놓는다. 퀄컴의 LTE 원칩을 탑재했다. 팬택이 20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대한 공헌을 했다.

팬택은 당시 LG전자와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마케팅 적으로는 LG전자를 언급하기 보다는 1위 업체인 삼성전자를 물고 늘어졌다. 팬택은 '베가레이서2'에 대해 LG전자 옵티머스 LTE2보다 품질면에서 월등함을 강조했다. 삼성전자 '갤럭시S3'와 정면대결해도 손색이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전세계 시장에서 노키아를 제치고 휴대폰 왕좌에 올랐을 때다.

이러한 단면을 보여주는 모델이 '베가 R3'다. 팬택은 베가레이서2가 출시된 해인 2012년 하반기 전략 스마트폰 '베가 R3' 론칭 무대로 삼성전자의 앞마당인 서울 강남 'M스테이지'를 꼽았다.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신제품을 공개했던 전례를 미뤄봤을 때 이례적 행보였다.

'베가 R3'은 당시 한손 사용성을 중시하는 사용자들에게 맞게 UI를 재편하고 고질적인 전력소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으로 '슈퍼 배터리팩'을 도입했다. 대용량 배터리와 초고속 충전기술, 2포트 어댑터를 선보였다. 전력 소모는 낮추면서 충전 속도를 높였다. 베가 R3는 출시 4개월만에 국내 80만대 판매량을 달성했다.

불행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 불현듯 찾아온다.

2013년 팬택의 최고 제품으로 손꼽히는 '베가 아이언'이 출시됐다. 당시 팬택은 늘어나느 부채비율과 줄어드는 판매량, 급락한 영업이익 등이 서서히 겹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던 상태였다.

이와는 달리 '베가 아이언'은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제 역할을 했다. 일체형 메탈 테두리를 도입한 베가 아이언은 수신감도를 떨어뜨린다는 단점과 비용 상승문제, 어려운 가공 방식이라는 허들을 뛰어 넘은 결과물이었다.

당시 팬택의 기술전략본부장인 이준우 부사장은 2년 이상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제품, 획일화된 디자인 속에서 차별화된 디자인, 사용할 수록 가치가 돋보이는 소재를 사용하자는 일념하에 200여 명의 연구인력을 투입, 6개월 간 선행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중간에 품질을 더 높이기 위해 5개월의 추가 개발기간과 200억원의 추가 개발 비용도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5번의 설계 변경, 10번의 디자인 변경이 이뤄졌다. 출시 4개월 전까지만해도 출시 여부조차 불분명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3천 시간의 연구 개발 기간과 3만번의 통화 테스트, 2만번의 품질 테스트, 생산공정 변경까지 단행하며 마침내 '베가 아이언'을 완성해냈다. 베가 아이언의 별명으로 인해 모델로 가수 '백아연'이 나서기도 했다.

혁신적 제품을 내놓긴 했지만 팬택은 해를 넘긴 2014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통3사가 불법 보조금으로 영업정지에 빠지면서 4월 출시 예정이었던 전략 스마트폰 '베가 아이언2' 출시를 뒤로 미뤄야 했다. 그 사이 팬택은 또 다시 워크아웃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팬택은 워크아웃 탈출을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지문인식 기능을 도입한 '베가 LTE-A', 스타일러스 펜을 내장한 '베가 시크릿노트', 사운드 특화 뮤직 스마트폰인 '베가 시크릿업'을 차례로 선보였다. 팬택만의 아이덴티티가 물씬 풍기는 신모델이었다.

팬택은 2014년 8월 19일 법정관리가 시작되면서 회생절차를 밟았다. 팬택은 기존 사용자들을 위해 서비스센터를 정상 운영했다.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도 꾸준하게 진행했다. 내외부적으로 팬택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다만, 현실은 냉혹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팬택은 마지막 '스완송'을 부른다. '베가 팝업 노트'를 어렵게 출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결국 팬택은 또 다른 주인에게 넘겨졌다.

2015년 11월 26일 팬택은 법정관리 15개월만에 기업회생절차를 마치고 같은해 12월 1일 신설법인 팬택이 공식 출범했다. '아임백'을 출시하면서 부활을 꿈꿨던 팬택은 많은 염원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추억만은 남긴 상황이다.

[연재] 한눈에 살펴보는 이동통신 연대기

1부. 카폰·삐삐, '모바일'을 깨우다 2부. 이통 5강 구도 'CDMA·PCS'의 시작 3부. 이통경쟁구도 '5→3강' 고착화 4부. 'IMT2000' 이동통신 '음성→데이터' 전환 5부. 도움닫기 3G 시대 개막, 비운의 '위피' 6부. 아이폰 쇼크, 국내 이통판을 뒤엎다7부. 3G 폰삼국지 '갤럭시·옵티머스· 베가'8부. 이통3사 LTE 도입기 "주파수가 뭐길래"9부. SKT로 촉발된 3G 데이터 무제한10부. LTE 초기 스마트폰 시장 '퀄컴 천하'11부. '승자의 저주' 부른 1차 주파수 경매12부. 4G LTE 도입 초기, 서비스 '빅뱅'13부. 'LTE=대화면' 트렌드 중심에 선 '갤노트'14부. LTE 1년, 주파수 제2고속도로 개통15부. 음성통화도 HD 시대…VoLTE 도입16부. 이통3사 'LTE-A' 도입…주파수를 묶다17부. 역대 가장 복잡했던 '2차 주파수 경매'18부. 과열 마케팅 논란 '광대역 LTE-A'19부. 2배 빠른 LTE-A, 킬러콘텐츠 고심20부. LTE 1년만에…스마트폰 3강 체제 확립21부. '2014 악몽'…이통3사 순차 영업정지'
김문기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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