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도서 할인폭을 10%로 규제한 정가제가 끝내 '인터넷'을 잡았다. 인터넷서점들의 성장률이 정가제 시행 1년만에 10%대로 주저앉은 것. 오히려 매출이 줄어든 곳도 있다. 시행전 100%를 웃돌았던 성장률을 감안하면 '초토화'수준이다.
경기침체까지 겹쳐 인터넷서점 매출이 2년전 수준으로 퇴행하는 기현상까지 빚고있다.
예스24는 지난해 총 114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당초 세웠던 목표 1천600억원은 물론 2002년 매출 1천200억원에도 못미치는 수준. 2002년까지 160%에 달하는 매출 성장률을 보였던 예스24는 올해는 매출 목표도 1천232억원으로 다소 소극적으로 잡았다. 3년째 매출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알라딘, 모닝365, 인터넷교보 등 주요 인터넷서점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닝365는 2002년 170%를 기록했던 성장률이 지난해 25%대로 꺾였다. 당초 100%이상 성장을 기대했던 지난해 매출도 목표인 480억원에 크게 못미치는 300억원에 만족해야 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 목표에도 못미치는 420억원 수준.
알라딘도 지난해 345억원의 매출을 기록, 16% 성장에 머물렀다. 온-오프라인 서점 운영으로 정가제 쇼크가 상대적으로 덜할 것으로 기대됐던 인터넷교보의 성장률도 17%에 불과했다.
정가제에 경기침체까지 겹쳐 후유증은 더 컸다는 해석이다. 더욱이 과도한 할인 규제에 힘입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됐던 수익구조 또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예스24 등 4개사 중 지난해 분기 흑자라도 기록한 곳은 알라딘 한 곳에 불과했다.
할인 대신 마일리지를 늘리고 구간도서의 할인폭을 과거보다 키운 때문이다. 결국 인터넷서점의 할인은 정가제 이전 수준인 30%를 넘나들며 정부 규제를 무색케 했다. 덕분에 수익은 늘지 않고 외형만 줄어든 결과를 초래했다.
◆인터넷 잡으려다 홈쇼핑과 경쟁할 판
정가제는 의외의 결과도 가져왔다. 당초 문화부의 취지는 인터넷서점의 과도한 할인을 규제하고 중소서점의 살길도 함께 열어주겠다는 것. 저가공세를 앞세운 인터넷서점으로 동네서점이 고사위기에 내몰린다는 비난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정가제 도입 이후 종합쇼핑몰과 홈쇼핑이 이익을 챙기는 이변을 낳았다.
인터파크의 경우 전문 인터넷서점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와중에도 200%를 웃도는 성장을 보였다. 2002년 15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 규모가 지난해 423억원으로 껑충 뛰어오른 것. 덕분에 서점 2위 자리는 덤으로 챙겼다.
LG홈쇼핑 등 홈쇼핑들도 책장사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LG홈쇼핑은 지난해 아동도서 판매로만 웬만한 인터넷서점 매출보다 많은 3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에 비해 무려 500% 이상 늘어난 규모다.
인터파크의 경우 무료배송 효과가 컸다. 도서를 미끼상품으로 한 '고객몰이' 전략이 적중한 셈. 또한 고객들이 다양한 경품으로 고객을 유혹하는 홈쇼핑으로 몰려간 결과다.
정가제가 인터넷서점의 발목을 붙잡은 동안 고객들은 가야할 동네서점 대신 할인혜택이 큰 종합쇼핑몰이나 홈쇼핑으로 발길을 돌린 셈이다.
◆ ‘몰라도 너무 모른’ 문화부
정가제 1년의 초라한 성적표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는 평이다. 온/오프라인 서점은 각각 정가제를 '시대를 역행한 악법', '우회할인을 방치한 무용지물'이라며 용도폐기에 한목소리를 내고있다.
실제로 정가제가 시행된 뒤 서점시장 파이는 되레 줄었다는 주장이다. 체감지수는 이전의 70% 수준. 교과서 등 책값은 오히려 올랐다.
모 인터넷서점 대표는 "정부가 내세운 정가제 명분 중 단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다"며 "서점들은 문을 닫고 우회할인에 인터넷서점 수익은 여전히 나쁜데다 고객들마저 외면해 오히려 상황은 더욱 나빠진 꼴"이라고 주장했다.
1년 사이에 서점들의 희비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2002년 100년 전통의 종로서적이 문을 닫은 같은해 교보문고는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 연말 정가제 와중에서 20년 전통의 태평서적이 문을 닫는 상황에서 다른 대형서점은 강남에 1천800평 규모의 서점을 열었다. 이는 국내 서점의 전용면적 평균치 30평(2004 한국서점편람)의 60배에 달하는 규모다.
동네서점 등 오프라인 서점이 부침을 겪는 것은 서점의 대형화와 시장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세대교체'도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문을 닫은 서점자리에는 고급 패밀리레스토랑이 들어섰다. 마음의 양식보다 고급스런 식당을 더 원하는 일반인의 정서도 결과적으로 한몫한 셈이다.
박영례기자 yo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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