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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여행]<2>옛 기억이 또렷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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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증상으로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기억의 사라짐이다. 평소 다니던 길이 생각나지 않고 운전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주변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며, 종국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지 못하게 된다.

가끔 부모님이 치매로 진단받은 경우 가족들은 '우리 어머니는 어릴 때 일은 물론이고 일제 강점기때 배운 노래까지 기억할 정도로 총명하신데 치매일 리가 없다'고 부인한다. 그런데 옛날 일은 깨알같이 기억하지만 최근 일을 망각하는 것이 치매의 특성이다.

우리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는 측두엽의 해마와 전두엽에 넓게 퍼져있는 대뇌피질 등이다. 단기기억은 해마에 잠시 저장됐다가 의식의 창고로 옮겨간다, 몇 년이 지나도 기억해 낼 수 있는 장기기억이 보관되는 장소가 대뇌피질이다. 대뇌피질에서는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기억의 지층을 이룬다.

그런데 치매에 걸리게 되면 해마가 쪼그라들고 대뇌피질이 사라지게 된다. 특히 대뇌피질은 바깥층부터 지워지면서 심층에 쌓인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치매노인의 뇌영상 사진을 보면 뇌의 부피가 줄어들고 주름이 사라져 오그라든 호두처럼 보인다.

예전에 만났던 한 치매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외출을 한 할머니의 입에는 부라보콘이 달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머리빗을 꺼내 몇 줌 남지 않은 할머니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겨준다.

평생 잉꼬부부로 살았던 두 사람이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정성을 외면하며 남처럼 데면데면해한다. 오히려 아버지를 꼭 닮은 큰 아들이 집을 찾아오면 그럴 수 없이 좋아한다. 새색시처럼 볼을 붉히기도 한다며 할아버지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는 지금 할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때의 수줍은 처녀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에게서 치매가 의심될 때에는 기억능력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같은 것을 계속 물어보거나, 중요한 약속이나 날짜를 잊어버린다거나, 친척이나 이웃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물론 나이가 들면 점차 총기가 사라지고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몰라서 찾아 헤매는 건망증을 겪게 된다. 건망증이 심해져 치매에 걸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건망증과 치매는 파란 바나나가 익어서 노란 바나나가 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건망증은 당장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력을 하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건망증은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라면 치매는 아침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다. 건망증은 뇌의 자연스러운 노화이지만 치매는 뇌가 변성해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질환이다.

따라서 모든 기억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다. 치매에 의한 기억상실처럼 보이는 증상들도 간혹 약물 부작용이나 비타민 결핍으로 인한 경우도 있다.

또 알츠하이머가 치매의 대표적인 원인질환이기는 하지만 전두측두엽 치매나 혈관성 치매의 경우 기억문제 보다 다른 행동심리 문제가 초기에 중요 징후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치매의 정확한 진단은 전문의를 통해 확인되어야 할 것이다. 진단은 주로 K-MMSE와 같은 검사지, 환자와 가족과의 면담등을 통해 이루어지며 뇌영상 사진을 통해 최종적으로 확인이 된다.

뇌영상검사로 대표적인 MRI의 경우 검사비가 100만원이 넘는데 올 하반기부터 건보의 보장성강화 방침에 따라 40만 원 정도로 낮추어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치매에 대해 관심도 높아지고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치매를 조기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조건 반갑지만은 않다.

치매라고 진단되는 순간, 사람들은 절망해 버리기 때문이다. 진단기술의 발전은 더 높은 유병률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치매발병률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뇌영상사진은 치매환자를 포괄적으로 분류해버릴 가능성이 높다.

사실 뇌가 위축된 상태에서도 훌륭하게 인지활동을 수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몇년 전 한 의과대학 교수가 90대까지 책도 쓰고 왕성한 지적활동을 해 왔다. 그런데 이 분의 뇌영상사진을 찍었더니 치매가 한창 진행된 뇌의 형태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치매인 줄도 모르고 행복하게 노년의 지적 삶을 영유했던 것이다.

46세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던 엘리자베스 보덴이라는 호주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 역시 신앙심, 주위의 도움, 주위 환경을 잘 조직함으로써 치매라는 질병과 훌륭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글로 적었고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세미나에서 치매환자의 경험을 발표하기도 했다.

뇌에는 망가진 부위를 대신하여 다른 부위가 활성되는 보완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간에게는 뇌주름과 신경전달물질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건강정보를 많이 알고 자신의 신체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치매에 대한 적절한 지식은 필요하지만 치매 자체를 두려워하는 자세는 버려야 할 것이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는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복지 연구에 몰두해 온 노인문제 전문가다. 재가요양보호서비스가 주요 관심사다. 저서로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이 있다. 치매미술전시회(2005년)를 기획하기도 했다. 고령자 연령차별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블로그(blog.naver.com/weeny38)활동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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