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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장준환의 영화, 우리의 영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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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직접 연관 맺는 이야기, 마음 흔들렸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장준환의 영화 세계에 역사의 교훈이나 현실적 재현이 잠입할 틈은 없었다. 그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와 그 안의 영화적 인물들은 직설이 아닌 흥미로운 상징과 은유로 이뤄져 있었다. 세계와 인물이 맺는 관계를 통해, 감독은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를 읽고 해석하고 사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장준환이라는 감독을 설명하는 이 모든 분석들은 그의 새 영화 '1987'(감독 장준환, 제작 우정필름)을 기점으로 모두 과거의 문장들이 됐다. 시대를 잘못 만난 명작으로 회자되는 '지구를 지켜라'(2003), 털에 대한 집착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털'(2004), 범죄자들을 아버지로 둔 소년의 냉혹한 성장기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2013)까지 장준환의 전작들이 그 뚜렷한 창작의 세계 안쪽에 있었다면, '1987'은 명백히 그 바깥의 영화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모티프로 삼았고, 많은 배역들이 실제 역사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을 바탕으로 재창조됐다. 감독의 세계에선 전례없이 현실에 발을 붙인 이야기를 그렸다. 가장 직설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오는 27일 개봉을 앞둔 '1987'은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은폐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 직후, 이를 은폐하려는 세력과 진실을 규명하려는 세력 사이의 줄다리기로 시작한다. 그리고 평범했던 당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6월항쟁이라는 숭고한 움직임에 힘을 보탤 수 있었는지를 비춘다. 한 명의 영웅이 아닌, 거리를 채운 시민들이 함께 일군 민주화의 역사를 그려냈다.

89학번인 장준환 감독은 대학에 입학하기 불과 2년 전인 1987년 6월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겼다. 영화 속 이야기와 자신의 생이 가장 직접적이고도 깊은 공명을 이룬 작품이어서일까. 감독은 영화를 선보인 언론 배급 시사에서도, 이후 진행된 인터뷰 자리에서도 종종 눈물을 보이곤 했다.

예상 밖이었다. 감독은 자신을 "평소 눈물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특별한 것 같다. 나만의 영화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라고 눈물의 이유를 말했다. 이어 "나만의 영화가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직접 연관을 맺고 있는,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더욱 내 마음을 흔든 영화가 됐다"고도 덧붙였다.

이하 '1987' 장준환 감독과 일문일답

-'1987'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많이 긴장한 모습이었다. 감독이 시사에서 우는 일이 드물어 화제가 됐다.

-아직 30년 전 그 때를 생생히 기억하는 분들, 당시 피해를 본 분들, 유족 분들까지 살아 계시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가장 많이 신경쓰였다. 보시고 좋은 말씀들을 해 주셔서 정말 한숨 놨다. 나머지는 관객의 몫인 것 같다."

-그간 감독의 영화들은 말 그대로 '영화적인 영화'였다. 현실과는 별개로 영화적 상상력이 큰 역할을 하는 작품들이었는데, 이번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했을 뿐 아니라 극 중 인물들의 이름까지 실존 인물들의 것을 따왔더라.

"팩트에 기반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자신의 취향이나 의지대로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조금 더 신중하려 했다. 영화적 개입은 아주 중요한 몇 포인트에서만 하자고 생각했다. 최대한 그 당시의 팩트에 기반해 사실을 담되, 인물들의 표정과 마음을 최대한 따라가보자는 것이 기본적 생각이었다."

-극 중 안기부장 역으로 배우 문성근이 출연했다. 영화 속 사건에선 그의 부친인 故문익환 목사의 흔적도 느낄 수 있어 흥미롭더라.

"한 영화 안에 이런 방식으로 부자가 같이 등장하는 것이 오묘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역사의 한 부분을 그린 영화에서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문성근은 부친과 관련해 특별한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다. 극 중 '김정남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명단 등 서류가 깔려있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곳에 문익환 목사의 성함이 적혀 있었다. 그 때 서류를 가리켜 '이거 좀 (이름이) 보이게 놓지?'라고 하시더라.(웃음) 사실 거의 신경을 안 쓰시는 줄 알았는데 마음을 쓰고 계신 모습이 짠하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예뻐보였달까, 아름다워 보였다. 평소엔 일부러라도 그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으셨는데 말이다."

-감독이 겪었던 1987년의 분위기는 어땠나?

"내가 89학번이니 6월항쟁은 내 바로 앞 시대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 때만 해도 학생운동은 온전히 사라지지 않았었다. 치열한 면이 있었고, 나도 그 역사를 이어서 살아 온 사람이었다. 당시는 어떤 식으로든 운동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이 더 드물었다. 나는 1987년의 치열한 세대와 그 뒤 '엑스세대'의 사이에 끼어있는 세대였다."

-당대를 기억하지 못하는 2030 세대에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하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올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386세대도 있었지만 2030 세대도 많지 않았나. 모든 세대가 광장을 채우게 된 것이다. 그런 면이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세대가 영화를 어떻게 볼지 고민했다기보다는, 역사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움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잘 바라보면, 모두 사람의 이야기니까, 사람으로서 느끼는 공통 분모가 있으니 세대를 떠나서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될 것이라 믿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우리 영화가 세대 간 대화의 창구가 되길 바란다."

-6월항쟁의 숭고한 가치와는 별개로, 1987년 6월 광장을 비춘 영화를 386세대의 공적 치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당시 광장에서 헌신한 이들이 지금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권력의 세대가 됐다. 당시의 성취와 이후 이들의 과오는 별개로 평가받아야 하지만, 영화는 그 이후까지 그릴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시각이 제기됐다고 본다. 감독의 생각도 궁금하다.

"그때 그 광장의 사람들 중 아파트값 올린 사람들도 있는 셈이다. '그 광장을 치열하게 채웠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나'라는 안타까움이 당연히 있다. 우리 영화는 그런 부분까지 다 담진 못했다. 우리가 얼마나 뜨겁고 순수하고 힘이 있었는지를 강조해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다른 반성과 사유의 계기를 제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만들며 나 스스로도 여러 생각들을 했다. 그해 12월 누가 대통령이 됐는지까지 그리려면 영화가 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나. 일단 아름다운 부분을 깊이 바라보자고, 그래서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이야기해보자고 생각했다.

-'화이'에 이어 김윤석과는 두 번째 작업했다. 김윤석이라는 배우와 시너지를 느낀다면 어느 지점에서인지 궁금하다.

"서로 존중하는 사이다. 김윤석의 아이디어에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 배우의 가장 좋은 점은 잘 할 수 있는 것, 혹시 뻔히 하던 것을 하고싶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재밌고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한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에너지를 갖기 힘든데, 그런 부분이 김윤석의 큰 힘이 아닐까 싶다. 연극 무대에서 활동했던 김윤석은 연기도, 스태프 일도, 연출도 해 본 경험이 있다. 드라마 이해의 폭도 넓다. 현장에서 뭔가 비어있는 구석이 보이면 그에 대해 의견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화이' 때도 그랬지만 치열하게 함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좋았다."

-감독 장준환의 대표작으로는 여전히 독특한 영화 세계를 보여준 '지구를 지켜라'가 회자된다. 블랙코미디 장르에 대한 관심은 여전한지도 궁금하다.

"나 스스로 '너무 마이너한 감성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내 취향이 거기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마이너하지만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접점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매튜 본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투자한 만큼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와 별개로 내가 만든 작품은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더라. 그에 더해 내가 만든 영화가 관객과 얼만큼 깊이, 넓게 소통하는지가 나에게 큰 위로가 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그렇게 관객과 소통하며 위로 받는다. 사실 감독도 외로워서 이런 작업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마음 속에 있는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다. (나에게 영화는)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예술인 셈이다."

조이뉴스24 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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